by 달콤말랑떡 작가
난 이혼 가정 막내딸이다. 요즘은 이혼 가정이 흔하고 흔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뭔가 쉬쉬 숨겨야 하는, 들키면 안되는 비밀 같은 일이었다. 더구나 부모님은 직접적으로 이혼에 대해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고 카지노 게임의 부재를 자연스레 경험하면서 '이게 이혼인 건가? ' 하고 홀로 짐작해야만 했다. 누가 카지노 게임의 부재에 대해 묻기라고 하면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매일이 눈칫밥의 연속이었다. 이후, 부모의 이혼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듣는다는 것은 아픈 상처를 더 깊이 파헤치는 확인사살과 같았다. 그 상처의 흔적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내 깊은 곳 어딘가에 남아 있다.
아들에게는 아빠의 부재가, 여자에게는 카지노 게임의 부재가 크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는 그 결핍이 크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그날도 여김 없이 정글짐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며 놀고 있었다. 순간, 오른발이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넘어졌는데 갑자기 다리 사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픔을 무릅쓰고 급히 화장실을 가서 살펴봤다. 이게 웬 걸, 팬티에 피가 조금 묻어 나왔다. 피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당혹감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이거 어떻하지? 병원에 가야하나?' 민감한 부위라 병원에 가기도, 선생님께 말씀드리기도 꺼림칙했다.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고 결국 도망쳤다.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학교에서 2차 성장에 대해 배웠지만 정작 몸의 변화들이 나타나자 어려운 수학문제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말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1초도 안되어 스스로 포기했다. 성별이 다른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합죽이 입이 되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용히 지냈다. 다행히 그 피는 생리가 아닌 단순한 상처였고 시간을 약 삼아 상처도 서서히 아물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중학생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누워서 티비를 보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아파왔다. 많이 먹어서 체했나? 근데 기분 나쁘게 아프다. 내 배를 행주 짜듯 꽉 비틀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팬티에도 이상한 느낌이라 화장실에 가서 급히 확인해 본다. 새빨간 피다. 선홍색 피가 물든 것처럼 묻어있다. 당황했지만 두 번째 피를 보니 처음보다는 조금 더 침착해졌다. 내가 알고 있던 생리가 맞는 건가? 하고 긴가민가 했다. 집에 어른은 아무도 없었고 3살 터울인 오빠만 있었다.
"오빠...있잖아.나... 팬티에 빨간 게 나왔어."
조심스레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는 놀란 눈으로 3초간 나를 바라보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적을 깨듯 갑자기 일어서서 책장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교과서를 꺼내 뒤적거리더니 손가락으로 밑줄을 긋고는 큰소리로 외친다.
"너 그거 월경이야! 여기 적혀있잖아"
"아니야! 그거 아니야"
낯선 나의 모습에 일단 부정해 본다.
"맞다니까. 있어봐. 슈퍼 갔다 올게" 오빠가 외투를 걸치고 뛰쳐나간다.
몇 분 후 오빠는 두툼하고 폭신한 생리대를 내 손에 건네준다.
"그거 해야 해"
한 마디 건네고선 방으로 들어간다.
처음 보는 생리대를 뜯어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다 설명서를 보고 어떻게 마무리했다. 지금이야 생리대를 사고 사용하는 게 일상이지만 처음 생리를 겪게 되었을 땐 내 몸의 변화를 숨겨야 할 일처럼 느껴졌다. 몸에 일어나는 당연한 순리이며 어른이 되어가는 몸의 변화를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숨박꼭질마냥 꽁꽁 숨기기에 바빴다.
그 순간, 카지노 게임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진 카지노 게임의 존재가 극도로 미웠다. 아니, 카지노 게임라는 이름을 입에 담기도, 부르기도 싫었다.
그건 카지노 게임가 아니야. 왜 나는 이런 일을 혼자 겪어야 해?
나에게 남아있는 모든 나쁜 것들의 화살이 무섭고 빠르게 카지노 게임에게로 향했다.
나의 신체변화를 숨겨야 하는 것도 싫었고 카지노 게임가 없어 말할 대상이 없다는 것도 싫었다. 평범한 가정이 아닌 것도 남과 다른 생활도 모두 카지노 게임 탓이었다. 나를 버리고 갔다는 카지노 게임에 대한 증오심만 가진 채, 그렇게 난 성인 여자의 몸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숱한 사건들을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카지노 게임는 지금 내 옆에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카지노 게임의 부재로 생긴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는 그동안의 부재를 만회하려는 듯, 딸에게 혼신의 힘을 쏟았다. 신혼여행에서 밤늦게 돌아온 딸을 위해 고생했다며 정성껏 한 상을 차려주셨고, 남편 없이 홀로 있는 딸이 밥 굶을까 반찬을 정성스럽게 나르기 바쁘셨다. 출산 후에는 당당히 사회생활을 하라고 손녀를 봐주겠다고 자처하시기도 했다.
살림과 육아에 카지노 게임의 손길이 군데군데 묻어있지만 반갑지 않다. 카지노 게임에 대한 크고 작은 고마움에도 내 마음속에는 어릴 적 내가 있다. 그때 '왜 내 옆에 없었어'라고 원망했던 13살 딸이 있다.
카지노 게임의 나이는 일흔여섯.
카지노 게임가 거울을 보다 사탕 뺏긴 아이의 얼굴로 묻는다.
"은지야, 카지노 게임 늙어 보이나? 저번에 아는 여자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전에 안 그렇더니 왜 이리 팍 늙었노 하는 거 있제? 카지노 게임 진짜 그렇게 늙어비나? "
평소 동안소리를 듣는 카지노 게임여서 더 충격이 크셨나 보다.
문득 카지노 게임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내 기억 속 카지노 게임의 탱탱했던 살들은 증발하고 사막의 한가운데처럼 메마르고 주름진 피부가 보인다.
나만 나이를 먹은 게 아니구나. 카지노 게임의 얼굴에 세월의 때가 잔뜩 묻어있는 게 새삼 느껴졌다. 카지노 게임의 인생도 막바지에 접어들었구나. 이제 작은 불씨만 남았구나. 카지노 게임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하루가 아깝다. 한 시간이 아깝다. 일분일초도 아깝다.
시간이 멈출 수 있다면 혹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카지노 게임와 함께 한 시간 속에 행복했던 기억만 가진 카지노 게임와 딸이 되고 싶다.
사실 이 글을 써야 할지 망설였다.
내 안의 치부를 드러내는 게 망설였다.
하지만 상처는 드러내야만 치유된다는 것을 알기에 글을 쓴다.
상처는 누구나 있다. 나와 같은 딸을 낳고 살아보니 카지노 게임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아픔만 오로지 생각했던 철없고 이기적인 딸이라는 것만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을 뿐이다.
카지노 게임는 카지노 게임다.
미워도 카지노 게임다.
죽기보다 싫어도 카지노 게임다.
나를 세상과 만나게 해 주신 분,
입원 한번 없이 건강하고 예쁘게 키워주신 분,
어릴 적 빨래집게로 쌍꺼풀 만들어주신 분,
딸이 아플 때는 자신보다 더 아파하신 분,
자신은 굶어도 딸 밥은 꼭 챙겨주시던 분,
재미없어도 딸의 이야기에 평생 귀 기울이신 분,
언제나 우리 딸이 최고다 엄지 척해주신 분.
그게 바로 우리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의 불씨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불씨가 꺼지기 전에 고백해야 한다.
카지노 게임, 죽도록 이기적인 딸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내 상처만 보여 카지노 게임의 상처 따위는 묻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아니 몰랐었길 바랐는지도 몰라요.
여자는 여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 말을 카지노 게임는 카지노 게임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바꿀게요.
카지노 게임가 되니 알겠어요. 카지노 게임에게 자식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요. 카지노 게임의 자리를 잠시 비웠을 때 뼈아픈 고통이었을 것을 이제야 알겠어요.
문득 카지노 게임의 불씨가 희미해져 감을 종종 느낄 때 지난 세월이 야속해 미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먼 훗날 카지노 게임의 불씨가 꺼지는 날이 오는 날이 오더라도
제 마음속에는 미움이 재가 되어 불씨가 더 뜨겁게 불타오를 거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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