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나?'
'저 사람들은 날 싫어하나?'
'내가 뭘 잘못했나?'
한 때는 이랬다. 사람들 속에서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면 난 그렇게 모든 탓을 내게서 찾으려 했다. 어떻게든 그 못난 구석을 찾아내서 고치든 숨기든 그들 속에서 어우러져야 '성격좋고 포용력있는'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내 못난 구석이 발견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했고 기어이 뭐라도 끄집어내면 오히려 속이 편한, 이상한 방향으로 나를 몰아갔었다.
하지만,난 성격적인 결함도 없고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긴 시간... 서서히... 알아가면서 난 나를 찾아낸 것 같다.
성격적인 결함이 아니라 나는 혼자일 때 더 편하게 안정감을 느끼고
사람들이 날 싫어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라 내가 날 좋아해주지 않았으며
내가 그들에게 뭘 잘못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라사람들 눈치를 보며 잘못하지 않으려는 조심과 겁,
그리고 잘못한 것을 기어이 찾아내서 고쳐야 하는 결벽으로 내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날 좋아하지도, 보듬지도 못한 상태로 긴 시간, 아니 세월을 보내고서야
나는'고독'이야말로 진정한 내 친구인것을 알게 되었고
이 친구를 곁에 두니 사유와 침묵이 길어졌고
이 길어진 시간의 어느 지점에서내게 외면당하던 심연속의 자아와 소통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이 감미를 음미하는 재미는 지금 나의 최고의 쾌락이다.
아무나하고 잘 어울리는 것이 과연 사회성이 좋은걸까?
물론그렇다.사회성은 좋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뜯어보기로 했다.'어떤 환경에도적응을 잘 하고 타인의 성향에 잘 맞추는 성향.'보편적인 성향이라해도 무방할 수 있을 듯하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러니까 자기 성향은 항상 뒷전에 두는 면도 있을 듯하다. '배려와 희생과 인내'라는 포장에 가려진 채로....
그래서 나는 한번 더 사회성이라는 단어를 깊이 파보기로 했다.
개인에게 어떤 특질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그 면이 유달리 자신이 사는 데에 유리했고 또 그 면을 자주 사용했기에 익숙해진 것일테다. 그렇다면 자신을 표현하는 것보다 타인을 수용 나아가 포용하는 것에 더 길들여져자기보다 타인을 내면에 품고 사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더 편안해졌다고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회성'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면을 들추는 못된 심보나
내게 부족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포장, 치장, 분장시키거나
게다가 사회성의 학문적 이론적 배경을 무시하려는 의도는결코 없다.
단지,
'카지노 게임 사이트 부족',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자발적 사회부적응자'라고 스스로를 낙인찍으며괴롭혔던 나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나는
'진정한 나'와의 조우가 시작되었고
'자발적 고립'이라는 선택의 힘이 생겼고
이어
'고독'이라는 위대한 친구를 곁에 두게 되어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정신을 단단하게 소유하는 사람으로,
그렇게 내 주위는 깨끗해지고 내면은 나로서 세워지는나만의 자유를 누릴 줄 알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나를 발견하고 나서부터는 더 끊임없이 고독에 대한 욕구를 갈구하고 있다.
내게 고독은 호흡과 같다.
살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밥과 잠과 동격이다.
이 고독이 내게 호흡만큼 필수적이 된 연유가 '사회성 부족'으로부터의 갈등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 내 지성의 얕은 수준과 존재감의 텅빈 구멍이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여태 남의 집에 걸어놓은 내 옷을 이제서야 내 옷걸이로 옮긴느낌이랄까...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수일까?
적어도 나는 빵과 이부자리만으로는 부족한 사람이었나보다.
내 심연에선 항상무언가가 아우성쳤고
내 머리는 항상 어떤신호로부터 들썩였으며
내 신체는 항상 저기로 가야 할 걸음이 여기로 향하는 불안감에 걸음을 멈추곤 했다.
그 정체를 모르니 내 앞에는 항상 공허가 놓여 있었다.
이런 나였기에 뒤늦게라도 맞이한 친구,
'고독'이야말로
내 심연의 자극과 머리의 해석과 신체의 갈길을 알려주는 진실한 친구였던 것이다.
이제 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내가 나를 오해했었고 남들도 왜 먼저 일어나냐고, 왜 어울리지 않냐고 오해했지만
오해받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과연 나쁜 것인가?
한번에 한세상.
'카지노 게임 사이트 부족'이라는 오해는
내게 주어진 한번밖에 없는세상을
나답게, 가장 내게 어울리는, 그리고 세상이 바라는 내 모습대로 살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든 에너지를 나의 길위에 뿌리고 있다.
허투루도 허튼 길도 헛된 망상도 아닌
현실에 까치발을 뜨고라도 당당하게 서서
저어기 멀리로 내던져버린 내 꿈을 두 눈으로 바라보며
내 길을 걷고 있음을 충만하게 느끼고 있다.
난 사회성이 부족했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라
보편적으로, 남들이 사는대로, 좋은 게 좋은 것으로 보이며 살기를 거부한 선택을 한 것이다.
우주가 하는 유일한 일은다양성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결국,
다양성의 하나가 되기 위해 나를, 나로서 세우라는 지독한 내면의 아우성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나를 오해했던 것이지 사회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다.
고독은 인간의 내부에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표시이자 그 정신을 재는 척도(주1)다.
어떤 계량기여야 이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정신의부피와 밀도를 측정할 수 있을까.
스스로'사회성 부족'으로 날 오해하며 감금한죄를 내 충분히 인정하지만
결코 측정할 수 없는 정신의 깊이를 추구하는 길로 날 데려다 놓았다면 면죄받아도 되지않을까.
나는 나의 본성대로 살고자 한다.
나는 나만의 생명력으로 주위의 그늘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나만의 천재(天在, 하늘이 내려준 재주)성으로 세상에 당당하려 한다.
거울속의 나는 내가 아니며
메아리로 들리는 목소리도 내 것이 아니다.
나는, 현실의 나로서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갈 선택을 한 것이다.
이렇게도 많은 퇴비가 꽃 하나 피게 하지 않고 벼이삭 하나 패이게 하지 않고 사상 하나 낳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영혼은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정신, 이지는 더 좋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주2).
박사까지 공부하고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독하게 책을 파고든 내가 나의사상의 꽃 하나 피우지 못한 채 남들처럼 그 자리에서 만족하고 그럭저럭 자족하며 인생을 흘려보낸다면이카지노 게임 사이트 진정 나를 무시하는 비겁한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카지노 게임 사이트야말로 우주의 조화를 거스리는 대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발적 사회부적응자'로 날 오해한 내게 미안하다.
'자발적 고립'을 택한 내게 칭찬한다.
'고독'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는 나를 사랑한다.
주1 키에르케고르선집, 키에르케고르, 집문당
주2 아미엘일기, 아미엘, 범우사
[지담연재]
월 5:00a.m.[감정의 반전]
화5:00a.m.[엄마의 유산]
수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금 5:00a.m.[엄마의 유산]
토 5:00a.m.[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나는 시골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