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 잡고 카지노 게임 중입니다.
애초에 카지노 게임식도 팔짱 끼고 하잖아요?
재작년 즈음부터였나 브런치 어플을 켜면 한 작가님의 글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바로 조니워커님의 <손 꼭 잡고 카지노 게임 중입니다라는 브런치북이었는데, 제목부터 눈에 확 끌려서 휘리릭 읽었던 기억이 있다.
브런치북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이혼을 결정하고 이혼해 가는 과정을 담은 한 여성의 이야기다. 같은 여자와 세 번의 바람을 핀 남편이지만 그 외에는 잘 맞아 제목처럼 손을 잘 잡고 순탄하게 이혼 한 이야기랄까.
그간 브런치에 올라오는 이혼 이야기는 무게감이 있어 읽기 어려웠는데, 유쾌한 문체로 남 이야기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며 여성의 독립이라는 주제로 확장하는 흐름까지 인상적이었다. 나만 인상적인 건 아니었는지 조니워커님은 브런치북 대상을 받아 출간도 하시고 구독자도 1.5만을 달성하셨다.
그녀의 문장 중에 가장 인상적인 건 이거였다.
"그 모든 변수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내 삶이 오직 내 결정 속에서 흘러가게 될 거라는 거다.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나답게 선택하자. 설령 그게 나를 조금 덜 행복하게 할지라도."
조니워커 <손 꼭 잡고 이혼하는 중입니다 15화
자유로운 듯 하지만 심지가 곧고 단호한 그녀. 어떻게 보면 나랑 비슷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녀는 이혼했고 나는 카지노 게임을 유지 중이다.
손 꼭 붙잡고 이혼한 조니워커님과 반대로 손 안 잡고 카지노 게임을 유지 중인 사람들이 많다. 남편과 나도 손을 잘 잡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카지노 게임 전 남자친구 시절에도 손을 잘 잡지 않았다. 뭔가 목적지가 보이면 혼자 다다다 빠른 걸음으로 돌진하는 남자.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는 여자. 데이트를 하러 나왔으면서 혼자 앞서가는 그를 보며 허탈감을 느낀 적도 많았다.
그런 불편함 감정을 간간이 느꼈음에도 그와 카지노 게임까지 간 이유는 별거 없다. 그 사람이 나를 너무 좋아해 줘서. 빨리 혼자 가지 말라고 소리치면 금세 돌아와서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슬쩍 손을 잡아주는 남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면 전승절 붉은 광장에서 행진하는 러시아 군인처럼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카지노 게임하고 나서 보니 시아버지도 가족들과 이동할 때 혼자 앞서 가신다. 유전의 무서움이란...
습관이 먼저인지 유전자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카지노 게임 IN연차인 지금도 남편은 나와 따로 걸어간다. 남처럼 멀리 떨어져 걷는 건 아닌데 우리 둘 사이에 사람이 한 명 정도 있는 듯 떨어져 걸어간다. 회사동료보단 가깝지만 커플보다는 먼 정도랄까.
그런데 남편과 오래 붙어살다 보니 굳이 손을 잡을 필요를 못 느끼고 있긴 하다. 예전에는 손을 잡아야 애정을 느꼈지만 오랜 시간 그와 있다 보니 대충 숨 쉬는 속도만 들어도 이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하기 때문. 오히려 손을 잡고 촉촉한 눈으로 쳐다보면 무서워진다. 무슨 잘못을 한거니.
집 청소를 하다 빛바랜 카지노 게임 앨범을 발견했다. 카지노 게임사진을 쭉 넘겨보니 손을 잡은 사진이 별로 없다. 서로를 바라보며 뭔가 어색하면서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다. 아마도 안면경련이 일어난 상태로 사진기사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겠지. 한두장 넘기다보니 카지노 게임식 행진 때 찍힌 사진이 보인다.
수줍은 얼굴은 오글거려 시선을 피하고 아가씨 적 몸매를 보니 과거가 그리워진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건 내가 남편의 양복을 꼬집듯 살짝 잡고 행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애초에 카지노 게임이란 손을 굳이 잡을 필요 없는 게 아니었을까? 신체적 접촉이 없어도 유지할 수 있는 것. 몸보다는 마음이 통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이 카지노 게임이라는 걸 신랑신부 입장하는 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혼하신 분들이 서로 마음이 통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브런치북의 서두에서도 말해뒀지만, 이혼과 카지노 게임은 정말 한 끗 차이다. 두 사람으로 맺어지는 것이 카지노 게임이고, 배경과 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이혼이니까. 카지노 게임이든 이혼이든 어떤 것도 흠이 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으로 인정받는 열린 세상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