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2
떠내려온 고래는 죽어있었다. 청회색 몸통은 코끼리처럼 육중했고, 몸길이는 50자는 족히 돼 보였다. 빗살을 그은 듯한 잔무늬가 몸 전체에 흩어져 있고, 검은색 수염이 길게 났다. 널찍한 주둥이 사이사이 뱃속에서 올라온 죽은 새우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상처가 없는 걸로 봐선 그물에 걸리거나 포경꾼들에게 당한 건 아닌 듯했다. 일본군은 고래를 해체할 인부를 찾았다. 순천에서 어부를 했다는 이가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조선인 세 명과 함께 칼과 낫을 들고 죽은 고래고기를 해체했다. 일본군이든, 끌려온 조선인이든, 굶주림에 지쳐있던 환초의 사람들은 고기를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떴다. 해체 작업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살코기는 먹기 좋게 잘라 한쪽에 쌓아놓고, 부산물과 내장도 따로 모았다. 아낙들은 고래고기 해체가 끝나는 동시에 불을 피웠다. 사카이는 이토에게 조선인들에게도 적당한 양의 고래고기를 배급하라고 지시했다. 이토는 이틀 치를 뺀 나머지를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동굴 한쪽에 보관하도록 다른 부하 군인에게 명령했다. 조선인 두 명이 부하 군인을 따라 고기를 들고 동굴로 이동했다. 아낙들은 큰 솥단지에 토막 난 고기를 뭉텅이 째 넣고 푹 삶았다. 환초의 사람들은 모처럼 배를 채웠다. 사카이는 자신의 방에서 이토와 얇게 썬 육회를 먹었다. 사케를 곁들이니 기분이 좋아졌다. 육회를 먹던 이토가 사카이에게 무심코 말을 던졌다.
“그런데 대좌님, 카지노 가입 쿠폰가 어떻게 여기까지 떠내려왔을까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나.”
“이 근처에 고래 서식지가 있다면, 식량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먹을 것도 없어서 조센징도 그렇고 영 힘을 쓰지 못하고 있어서….”
“설령 고래 서식지가 있다고 해도 그 엄청난 녀석들을 무슨 수로 잡을까?”
사카이는 말끝을 흐리는 이토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물을 치면 어떻겠습니까?”
“그물? 무슨 수로? 그물을 만들어도 저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친단 말인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사카이는 몇 점 남은 육회를 이토에게 양보한 뒤 보급용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토는 남은 육회를 먹어 치운 뒤 빈 접시를 들고 방을 나왔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그물을 칠지 고민하면서.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입맛만 다셨다.
그 시간, 동영도 조선인들이 묵고 있는 동굴에서 삶은 고기를 먹고 있었다.
“아따, 시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구먼. 목심이 안직은 붙어있으라는 건가베.”
동영의 옆에서 게걸스럽게 고기를 집어 먹던 순팔이 말했다.
“순팔아. 츤츤히 먹어라. 그래 먹다가 설사하겄어.”
담양 댁이 걱정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순팔은 쉴 새 없이 고기를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설사 좀 하면 어떻소. 은제 또 이런 걸 먹어볼랑가.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지.”
동영은 순팔의 전투적인 식성 앞에 실소를 지었다. 그 역시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다 기름기가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그날, 조선인 노역자들은 오랜만에 주린 배를 채웠고, 비쩍 마른 순자의 가슴에도 젖이 돌았다. 환초의 사람들은 약 일주일 정도 고래고기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또다시 배를 곯아야 했다. 언제 떠내려올지 모를 고래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