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삼총사의 피크닉
살 만하다.
어차피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면 ‘그래도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은 것아닌가. 걸핏하면‘죽겠네’라고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는 죽기 싫으면서 뭐 하러 빈말을 입에 달고 살 필요가 있는가!
그래서 오늘도 카지노 게임는 ‘오매!’를 외치며 활기찬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카지노 게임의 녹즙기는 오늘따라 더욱 힘차게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케일, 적양배추, 사과, 당근에 기타 등등.
녹즙기 안에서 윙윙 한데 섞여버린 재료들처럼 불독할매는 요사이 재우님을 쟁취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만나면 만날 수록 정이 가는 카지노 게임에 대한 우정과, 사랑이라는 트로피를 위한 경쟁심이 한데 윙윙 섞이면서 정체 모를 연대감이 형성된 것이다.아무튼 그 정체미상의 연대감은 지금의 건강녹즙처럼 카지노 게임에게 그 어떤 보약보다도 요사이 활력을 주는 ‘좋은 것’ 임은 확실하다.
카지노 게임의 입에서 이제는 ‘브런치’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처음에 재우님과 카지노 게임가 불독할매에게 브런치 제안을 했을 때 지기 싫은 마음에 빛의 속도로,‘오매 딱 좋아요. 딱 내 스타일인디!’하며 호응을 했었다. 그리고는 혹여나 ‘브런치’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놓칠까 봐, 흥부가에 나오는 놀부의 ‘화초장’ 대목처럼 ‘브런치 브런치 브런치’ 입속에서 되뇌다가 잠시 방심한 차에 ‘브로치’로 변이를 거듭한 나머지, 지방에 사는 아들에게 그 말이 뭐다냐로 물을 때는 ‘브로치’로 확정되면서.
“엄마, 브로치 하나 사서 보내드릴까요? 하긴 우리 엄니 이제껏 브로치 하나 장만하지도 못하고 사셨재. 죄송해요.”라는 효심곡을 듣는 지경으로 흘러갔다.
아무튼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브런치’를 즐길 줄 아는 카지노 게임로 격상되는 호시절을 맞이하게 된 것.오늘은 호수공원에서 각자 나름 준비를 해서 '브런치 피크닉'을 즐기기로 한 날이다.
기분 좋은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이 잔잔한 호수를 살살 간질이고 싱그러운 나뭇잎들은 서로에게 ‘샤샤삭’ 속엣말을 주고받느라 몸놀림이 잔망스럽게 부산하다.
“이 자리가 어떠세요. 숙녀분들?”
언제나 신사다운 재우님은 아름드리 왕벚나무 아래 평평하고 아늑한 자리를 가리켰다.바로 앞에 호수가 일렁이고 근처에 흔들 그네가 운치 있게 놓여있는 딱 좋은 자리를 눈썰미 좋게 찾아냈다. 평일이고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라 조깅하고 산책하는 이들은 꽤 있었지만 피크닉 돗자리 까지 펴고 앉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
겨자 색 모포돗자리 가운데에는 아직도 따끈한 재우표의 크라상과 첫 선을 선보인다며 수줍게 꺼낸 담백한 호박파이가 놓였다. 우리의 카지노 게임가 보온병 뚜껑을 열자,공원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는 듯한 깊고 진한 커피 향이 퍼졌으며 앙증맞은 꽃약밥이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야심 차게 준비한 불독할매의 건강 만점 녹즙과 쑥찰떡이 먹음직스럽게 놓였다.
“뭣이냐, 우리의 즐거운 인생을 위하여!”
인심 좋게 녹즙 뚜껑을 척척 열어서 각자의 손에 쥐어주고는 씩씩한 목소리로 외치는 귀여운 카지노 게임의 ‘녹즙 건배사’에 마주 앉은 친구들은 물론이고 왕벚나무 가지에 앉아있던 이름 모를 새들도 기분 좋게 ‘포르르’ 날아올랐다.
이런 즐거운 자리를 그냥 넘길 수 있냐며, 재우님은 챙겨 온 카메라 렌즈를 살피더니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사실 우리의 포토그래퍼가 렌즈 안의 피사체를 살필 때 누구의 모습에 눈길을 더욱 주며 셔터를 눌렀는지는 굳이 알려하지는 않겠다. 그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아직도 설렘과 싱그러움이 넘치는 우리의 삼총사의 모습은 보기 좋기만 하였던 것이다.
“어제 우리 새미가요. 할아버지가 요즘 자꾸 노래를 부른다면서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실 거냐고 묻더군요. 하하하. 저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나 봅니다.”
“어떤 노래를 부르시는데요?”
카지노 게임가 애정 가득 한 눈길로 물었다.
“모르겠어요. 새미얘기를 듣고 보니 딱히 정해진 노래는 아닌데 흥얼흥얼 콧노래를 자주 부르고 있더라고요. 제가.”
“바람도 나뭇잎도 자기 기분에 따라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은 더욱이 그렇지요. 나도 모르게 나만의 주크박스가 열린다는 것은 내 감정이 온(on) 상태라는 것이겠지요.”
카지노 게임도 기분이 좋아 노래만큼이나 리드미컬하게 대답했다. 불독할매와 함께 있을 때는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오늘 카지노 게임도 분위기에 고무되어 평소 재우님과 대화를 나눌 때의 모드(조금은 현학적인)로 이야기를 풀고 있었다.
‘또 또 잘난 체 나왔네.’
카지노 게임의 전매특허인 우아한 말들의 향연이 펼쳐질 때마다 불독할매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그 범주에 짐짓 부아가 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게 밉지 않다는 것이다. 점점 더 얄미운 경쟁적 감정은 작아지고 우정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마치 때로는 심통스런 욕심쟁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불독할매가 카지노 게임와 재우님에게 밉지 않게 비치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있기는 할까?조금 연차가 높은 귀여운 삼총사도 인간이기에 한쪽 눈으로 찡긋 넘어가 줘야 하는 구석이 어디 없겠는가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규정짓기 어려운 상황, 관계, 감정들이 있다. 어쩌면 애초에 정답이 없는 것들에 우리는 정답을 찾아 헤매느라 얼마나 또 많은 정열을 쏟아내고 있는 건지.
그냥 그렇게, 있는 그대로, 보이는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내 가슴에 담아내면 될 것을.
“호박파이가 참 맛나네요. 빵 같기도 하고 떡 같기도 하고 참 요상하고도 맛난 맛이네요.”
“허허, 맛나다고 해주시니 안심입니다. 사실 처음 해보는 거라 잘 될는지 싶어서 걱정했었거든요.”
먹는 모습도 복스러운 카지노 게임는 진심으로 호박파이가 맛나서 녹즙 한 모금을 꿀꺽 마시고는 호박파이 한 조각을 또 입에 넣으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우리 사이에 이런들 저런들 다 좋지요. 이렇게 애써서 만들어 오신 것만도 감동인걸요.”
우리 사이. 카지노 게임의 말에 재우님은 살짝 볼이 불거지는 것이었다. 마침 시원한 바람이 세 친구의 머릿결을 붕 부풀리듯 지나갔다. 희끗희끗 흰머리가 가볍게 춤을 춘다.
“살다 보니 이렇게 호강하는 날들도 오네요 그려. 오매, 이렇게 좋은 것이 있는 줄 젊은 시절에는 정말 몰랐어요. 이런 호사를 다 누리고잉….”
불독할매는 목이 메는지 두툼한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카지노 게임는 얼른 커피잔을 건넸다. 불독할매는 손등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입가에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카지노 게임도 재우님도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 싶은 기분으로 각자의 감상에 빠져들었다. 조금 더 따사로워진 햇살이 부서지듯 세 친구의 얼굴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는 그 순간 마음으로 외쳤다.
‘사랑이면 어떻고 우정이면 어떠랴. 지금이 딱 좋다. 이렇게 셋이 딱 좋다.’
불독할매는 카지노 게임와 재우님의 손을 뜨겁게 잡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며 크게 기지개를 켜며 상당히 큰 소리로 외쳤다.
“오매 좋은 거!”
카지노 게임와 재우는 불독여사의 귀여움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함께 기지개를 켜보았다.
왕벚나무 틈새에서 엿보던 귀여운 작은 새들이 포로롱 날아올랐다.
*** 지난 가을에 시작되었던 <카지노 게임의 거울가게가 문을 연지, 가을 겨울 그리고 새봄이 되도록 시간이 지났습니다. 꿈결같은 행복한 시간 속에 다음주 마지막 제 26화. 에필로그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제 마음이 아쉬움으로 물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