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날, 의사 선생님의한 마디를 계속 되새기고있다.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다 잘 해내려고 카지노 게임 않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모습을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대략 저렇지 않을까 싶다.
정말로 나는 열심히 살아 왔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로든. 열심히가 과해서 아둥바둥이 될 때도 많았다.
한때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으니 지금 누리는 것이라도 얻게 됐다 믿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열심히 사는 것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해진다.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돌발상황 앞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자책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노력 만능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노력할 상황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야 할 때도 억지를 쓰다가 더 큰 문제를 불러 버리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계기로 한껏 힘이 들어가 있던 내 삶에서 조금씩 힘을 빼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와 함께 지난날을 돌아봤다. 열심히를 넘어 무리한 적이 꽤 많았다는 걸 알았다. 스스로를 다그치다 못해 학대할 때도 있었다. 내 마음이 그만하고 싶다는데도 무리해서 일을 강행해 결국 몸과 마음이 다 상해버리기도 했다. 그런 마음은 보상심리로 비뚤어져서 어려움 앞에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들을 보며 나약하다고 판단하는 못난 마음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인간관계를 넓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불편한 자리에도 꾸역꾸역 참석했고, 나를 원치 않는 게 분명한 사람들에게도-사실 나도 별로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억지로 연락하며 관계를 유지하려 애를 썼다. 직장에서 대놓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단지 무직 상태가 되는 게 두려워서 억지로 출근을 했다. 날씬하다 못해 말라야 세상에서 가치 있는 상품이 될 것 같아서 단식에 가까운 절식을 하며 몸을 혹사시킨 적도 있었다. 막연한 의무감에, 남들도 다 하니까, 왠지 해야만 할 것 같아서,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많은 일들을 해냈다. 그러고는 내가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런 애씀의 결과는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노력과는 결과가 많이 달랐다. 딱히 스스로를 성장시키지도 못했고 남는 건 그냥 상처와 트라우마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경험들이 내게 남긴 건 하나였다. 억지로 해서 되는 건 없다는 것 뿐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 표정을 지을 것인가. 내 아이가 본인을 거부하는 것이 분명한 이들에게 억지로 다가가려고 애쓰면서 상처를 받고 있다면, 내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저항하지도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있다면, 내 아이가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실체 없는 두려움에 쫓기며 스스로를 더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다. 내 자신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너를 함부로 대해서 미안해, 훼손해서 미안해.
요양보호사로 수 년째 근무중인 우리 엄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이 끝나는 순간을 거의 매일같이 목격하신다. 엄마는 "노인들 죽는 걸 보니 인생이 참 허무하더라. 아득바득 돈 많이 벌어라, 가족 챙겨라,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고들 하는데 죽을 때 되면 아무 의미 없거든. 다 똑같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가 돼서 떠나는거야"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우리가 허무주의에 빠져야 한다는 결론은 아니다. 결국 삶을 마치는 순간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기에, 그저 순간에 충실하게 살다가 순리에 따라 세상살이를 마칠 때가 되면 편안하게 떠날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카지노 게임 훼손시키지 않기로 했다.순리에 맞지 카지노 게임, 나답지 않은 것을 하는, 노력 아닌 애씀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부터다.
이를테면 상대방의 의사로 갑작스럽게 만남이 취소됐을 때, 이유를 캐묻지 않고 구태여 약속을 새로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을 존중해준다.
또한 나 역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존중하기로 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경조사를 단지 의무감에 억지로 참석하지 않는다(다행히도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되다 보니, 왠만한 사람들의 경조사는 장례 빼고는 거의 다 끝났다!). 불편하고 흥미 없는 모임에 굳이 나가지 않는다.
체질상 소주 두 잔만 마셔도 오심이 느껴지는 나는 술자리에서 억지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음주를 하기도 했다. 이젠 술이 맞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음료수를 시키려고 한다.
관심 없는 분야를 상식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공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만 배우기에도 인생은 짧다.
직장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당함과 괴롭힘이 이어질 때는 퇴사라는 선택지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는 대신 더 필요한 데 쓰기로 했다. 내가 정말 함께하고 싶고, 나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쓰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알고 싶은 것을 배우기로 했다. 내가 기분좋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일에 쓰기로 했다.
내 앞에 놓여진 장벽들을 애써 밀어넘겨야만 하는 줄로 알았다. 그 장벽들이 너무 공고해서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든 법칙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내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를 밀면서 왜 이렇게 넘어가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꼴이었다.
세상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고 부추겼지만, 내가 먼저 기꺼이 싸움을 포기하고, 항복하면 된다. 그럼 또 다른 나는 저절로 승자가 된다. 부전승하는 인생이다.
삶의 거대한 흐름에 나를 맡기고 편안하게 흘러가고자 한다. 애쓰지 않고, 누구도 훼손하지 않고, 유수풀에 떠다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