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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초 Feb 24. 2025

무료 카지노 게임 바로 여기서 행복해지기

100억 부자도 퇴사도 아닌 이대로 무료 카지노 게임는 법


나는 오랫동안 불안을 애착인형처럼 끌어안고 살아 왔다. 선천적인 기질과 함께 성장과정에서 겪은 여러 개인적인 요인도 있다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부모 세대가 살았던 방식을 따라 산다고 해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으며, 지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봤자 SNS와 미디어에서는 서로를 줄세우면서 '연봉 얼마 이하, 학벌 어디 이하, 강남에 등기 못 치면 너는 루저'라고 평가하기 일쑤다. 전문직과 대기업, SKY, 강남 자가 30평대 브랜드 아파트라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어려운 조건을 만족해야만 그럭저럭 잘 사는 것처럼 취급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진 채 서로가 서로의 삶을 평가하기 바쁘다.

이렇게 높아진 행복의 조건만큼 미래는 불안하다. 사회에서 정해진 틀대로 무사히 모든 것들이 이뤄지지 않으면 바로 낙오자가 되고, 패자부활전 따위는 없다. 오히려 사지 멀쩡한 사람들에게 왜 퍼주냐며 지금 주고 있는 것도 깎아버려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서로가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피해 보는 것에 한껏 민감해져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대안적인 삶을 추진한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서울 집을 팔고 한적한 시골로 귀촌을 한다. 최근 서점에서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책도, 구독자가 많은 유튜브 채널도, 이런 내용을 주로 하고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퇴사하고 원하는 일 하기, <리틀 포레스트 같은 농촌에서의 한적한 삶이 아니면, 100억 부자 되기, 강남에 등기 치기 같은 지극히 세속적인 목표만을 정답으로 삼고 가르치는 콘텐츠라는 극과 극으로 양분된 분위기다.


그러나 양쪽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100억 부자야 말 할 것도 없고, 생업을 무작정 때려치거나 시골로 낙향하는 삶 또한 누구나 쉬이 따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나도 홀가분하게 도시와 일터를 벗어나버린 사람들을 책과 유튜브 등을 통해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만큼 또 박탈감도 느꼈다. 이런 콘텐츠들은 대개 도시에서 생업을 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욕심을 버리면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가르친다. 하지만 내가 비록 도시에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일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고 해서, 엄청난 욕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사람마다 가정 사정이 다 다르고, 생업을 버리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하지만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특수한 사례가 더욱 이목을 잘 끌고 재미있기에, 소수의 이야기가 과대표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코로나19 전후 불어닥친 '파이어족' 열풍을 타고 그런 이야기들은 더욱 각광받았다. 하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결국 이런저런 현실적 여건을 이기지 못해 도시로 돌아오거나 재취업을 하는 경우도적지 않은 현실이다. 떠남과 퇴사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다. 나는 그것을 공황장애 진단을 계기로 알게 됐다. 나만의 속도로,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내 마음이 원치 않는 것은 꼭 필요한 게 아닌 이상 되도록 하지 않는 것. 그렇게 점점 진짜 나라는 존재와 친해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니 번잡한 도시의 아파트촌에서도, 수시로 서로를 비교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평온함을 느끼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내가 갖지 못한 걸 추구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로 했다. 대신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특별할 것 없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우리 가정의 일상을 위해 헌신하는 남편, 소위 영재는 아니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밝게 잘 웃는 아이, 눈보라 몰아치는 날에 마시는 따뜻한 핫초코,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먹는 따끈한 식사, 내가 아직 사회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쓰며 만난 수많은 독자들의 따듯한 사연...


이미 지금 여기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바라보면서, 욕심을 내고, 그걸 가진 이들을 질시하고, 혹은 추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부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억지로 껴입고 있던 맞지 않는 속옷을 벗어버린 양 홀가분해졌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입고 내 속도로 나아간다. 이는 결코 주저앉아 세상을 외면하겠다는 게 아니다. 내 몸이 편한 선택만 하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플러스 알파'를 추구해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사회에 대해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내게 내가 말해주는 것뿐이다.



지속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고 싶었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더라도 꾸준히 행복하고 만족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공황장애 증상은 이제 많이 좋아져 일상을 힘들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가 됐다. 물론 나에게 맞는 좋은 약을 조기에 처방받은 덕택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나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고 수정하고자 했던 노력 덕분이기도 한 듯하다.


최근 나의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떠남'을동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매일 밤아무도 없는 고요한 자연 속 외딴 마을에서, 오로지 우리 가족과 나만 존재하는 집에서 세상의 속도와 멀어져 살아가는 삶을 상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눈을 뜨면 여전히 도시의 번잡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단 생각에 좌절했다. 심지어 노후 대비와 자녀 교육을 생긱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서울로 얼른 입성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해야 하는 삶이라니. 스스로가 서글프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내게 실행한 몇 달간의 '도시에서 여유롭게 살기 실험'의 결과,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와 무관하게, 바로 지금 여기서 여유롭고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미래가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다. 더 복잡하고 바쁜 곳에 내 몸이 머물더라도 마음을 내 안의 행복으로 주의를 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100억 부자와 퇴사는 모두 내 자신의 내면이 아닌 외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바뀌어야만 내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내 내면이 바뀌지 않는 한 외부 환경이 아무리 좋은 쪽으로 바뀌더라도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어렵다.

오늘도 이 도시에서 지치고 힘든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 대신 내 마음 속을 둘러보길 권한다. 언제 정말로 만족했는지, 언제 행복했는지.






<도시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습니다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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