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식기세척기님 이야기
뜬금없지만 저, 자랑 좀 해도 될까요?
우리 집엔 식세기가 무려 두 대 있답니다. 한 대는 주방 아일랜드 식탁 아래 빌트인으로 심어 놓은 핑크색 비스포크. 크기 587 x 815 x 570mm. 작은 사이즈는 아니어서 집에서 네 식구 다 같이 모여 식사할 일 거의 없는 평소엔 주로 손설거지를 하고, 집에 손님이 다녀갔거나 너무 바쁘고 피곤한 날, 가끔씩 이용합니다. 첫 번째 식세기 보다 훨씬 자주 활동 중인 두 번째 식세기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전자동으로 작동하는 스마트한 최고사양의 19년 차 식세기......... 바로 저희 카지노 게임입니다. 하하. 제품 크기 187cm에 빛나는 대문짝만 한 이동식 식기 세척기랄까요. 19년째 고장이나 에러 한 번 없이 열일 중이랍니다.
특히 공휴일이나 주말에 더욱 바쁘게 일하는 이 최고사양 식세기님은 꼼꼼한 데다 깔끔하기까지 합니다. 그가 씻어놓은 접시와 냄비들은 새것처럼 광이 나고, 그가 설거지하고 난 뒤 건조대에는 각종 그릇들이 크기 별, 종류 별로 오와 열 맞춰 착착착 줄 세워져 있습니다. 싱크대는 또 얼마나 반짝이게 정리해 놓는지, 싱크대에 새로운 설거지 감을 가져다 놓기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시댁에 가면 주로 제가 설거지를 하는 편이지만 어쩌다 아들이 설거지해 놓은 걸 보신 어머님께서 설거지를 이렇게 깔끔하게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도 감탄을 하시길래 그때부터는 어머님께 기쁨도 드릴 겸, 시댁에서도 카지노 게임 찬스를 종종 쓰고 있습니다. 하하하.
어제는 크리스마스이브. 아무리 바빠도 온 가족 함께 모여 집에서 만찬을 즐기고 싶은 그런 날이었죠. 저는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8시 반까지 서재에서 줌으로 수업을 하고 한창 파티 준비 중인 주방에 합류했습니다. 수업 사이사이에 장을 보고, 파스타 소스를 만들고, 샐러드 감을 손질해 놓고 퇴근한 카지노 게임과 바통 터치. 요리 완성을 위해 카지노 게임에게 몇 가지 미션을 주고 수업에 다녀온 참이었죠.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세 가지였습니다. 샐러드 크리스마스 리스 모양으로 세팅하기, 훈제 연어 접시에 덜어놓기 그리고 오리고기 시금치와 볶아놓기. 식탁 위를 살펴보니 메인 미션 외에 번외 미션으로 호밀빵 예쁘게 썰어 굽기와 수프 데워서 덜어놓기까지 완벽하게 마쳐놓은 상태였습니다. 브라보! 식세기 생활 19년 정도 되니 이제 요리 기능까지 탑재되었네요. “언제 이렇게 다 했어? 너무 예쁘게 잘했다~!” 폭풍 칭찬하며 분주히 파스타 면을 삶고 만찬 준비를 마무리합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와인 서, 너 잔 마시다 보니 하루의 피로가 해일처럼 몰려옵니다. 배도 부르겠다, 잠시 티브이 좀 보고 쉬었다 올까? 라며 소파에 기대어 앉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레드썬. 눈 떠보니 아침입니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주 개운하고, 상쾌합니다! 아직 가족들 모두 자고 있는지 온 집안이 조용하네요. 어젯밤 파티의 흔적이 남겨져 있을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런데, 식탁은 깔끔 그 자체. 접시 하나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밤새 우렁 카지노 게임이 다녀간 겁니다. 늘 그렇듯이 말이죠. 카지노 게임도 피곤했을 텐데 언제 이렇게 깔끔하게 치우고 들어간 걸까요. 저는 치우는 소리는 1도 듣지 못한 채 쿨쿨 신나게 잠만 자고 있었나 봅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구 몰려옵니다. 나 결혼 잘했네, 잘했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어김없이 다녀간 우렁 카지노 게임 덕분에 크리스마스날 아침, 집안일로부터 해방되어 편안한 시간을 만끽했습니다. 여유 있게 아침 차려먹으며 영화도 한 편 보고, 영화 후반부에는 꾸벅꾸벅 졸면서 밀린 잠도 보충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는데 사실 마무리는 어두울 뻔했습니다. 사춘기 폭군이 이젠 다 사라졌나 싶다가도 가끔씩 돌아오는 큰 딸의 성질머리에 제 뚜껑이 열려 날아갈 뻔한 일이 있었거든요. 여기에 시시콜콜 쓰다 보면 또 열받고 혈압 상승할 것 같아 “이 나아쁜 지지배야, 정신 차려라!!!” 정도로 그 일은 묻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아, 생각하니까 또 화가 올라오네요. 잠시 심호흡 좀 하겠습니다. 씁씁후후.
애들 때문에 열받아 단전에서부터 걸쭉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래, 다 필요 없어. 너희들 인생 너희가 알아서 살아라. 난 내 남편이나 잘 챙기련다!!! 흥!!!!“
사실 워낙 뭐든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라 제가 챙겨준다는 표현은 맞지 않지만…. 오늘은 새삼 카지노 게임한테 잘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이젠 둘째도 중학생이 되어 올해는 처음으로 산타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아이들은 내심 서운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산타가 뭣이 중허겠습니까? 이 녀석들아, 엄마의 크리스마스엔 산타 보다 우렁 카지노 게임이 최고다!
여보, 오늘도 고마웠어요.
역시 내 맘 알아주는 건 당신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