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다시 고향으로
응급차에 실려 간 영무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영무의 코와 입을 덮은 산소마스크에 연신 가뿐 김이 차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병상 주위로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혼수상태인 영무를 관찰하고 있었다.
“환자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습니다. 가끔이지만 동공 반응이 있고 손끝과 발끝 신경이 자극에 반응합니다.”
깊은 무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듯 영무는 의식의 끈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몸이 영혼과 분리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정신은 어슴푸레 지금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 어떤 몸의 부위도 느낄 수가 없었다. 영무는 자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 어디쯤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영주가 마지막 남긴 책 <티벳 사자의 서의 문장이 떠올랐다.
“이것은 ‘듣는 것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다섯 가지 큰 죄를 지은 자들조차도 귀로 이것을 들으면 반드시 대자유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모인 데서 이것을 읽으라. 이것을 전파하라.”
영무는 의료진이 자신을 둘러싼 지금, 무언가를 읽고 전파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을 읽고 전파하라는 건지 영무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점점 커져만 가는 어두운 그림자가 영무의 영혼을 세차게 흔들 뿐이었다. 의식의 빛과 어둠의 그림자 사이에서 영무의 절박감은 극에 달했다. 작은 의식의 빛마저도 사라지려는 순간, 영주가 건넸던 책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책장이 스르르 넘어가더니 영무가 보지 못했던 페이지가 펼쳐졌다. 거기에는 비밀의 주문처럼 보이는 문장이 나열되어 있었다. 영무는 큰 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는 의료진을 향해 영혼이 떠나갈 듯 온 힘을 다해 주문을 전파했다.
모여있는 신들에게
수호신들에게
이 세상 구루들에게
마음을 다해 절을 올리노라
사후세계의 중간 상태에 있는 동안에
그들에 의해
영원한 자유에 이르게 되기를
<티벳 사자의 서, 중
하지만 노력과는 달리 영무는 그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영무는 문득 자신이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반복하고 반복해도 목소리는 밖으로 뱉어지지 않았고 극도의 공포와 갑갑함을 느끼며 영무는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길이를 알 수 없는 시간, 공간을 느낄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되어 미지의 세계에 머무를 때 어디선가 희미하게 영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카지노 게임 오빠, 정신이 들어? 내가 누군지 알겠어?”
모두가 잠든 중환자실, 카지노 게임의 병상을 지키던 영주가 놀라 소리치며 복도로 뛰어나와 의료진을 불렀다.
“선생님, 여기요. 오빠가 깨어났어요. 환자가 눈을 떴다고요. 여기 좀 와 보세요. 어서요.”
잠시 후 달려온 의사와 간호사가 영무의 상태를 살폈다. 말을 하진 못했지만, 영무의 의식은 확실히 돌아와 있었다. 영무의 상태를 살피던 의사가 영주에게 말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 밤이 고비였는데 다행히 위기는 넘긴 거 같습니다. 의식이 돌아온 걸로 봐서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 같습니다. 이건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에요. 교통사고가 난 지 딱 49일 만이네요. 이게 다 영주 씨가 포기하지 않고 환자 곁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무슨 책인지는 몰라도 영주 씨가 하루도 빼지 않고 열심히 주문을 외운 보람이 있군요. 일단 환자가 최대한 안정을 취하게 해 주세요. 추후 치료 일정은 내일 말씀드리죠.”
영무는 자신의 의식이 점점 또렷해져 옴을 느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영주를 바라봤다. 영주는 스물두 살의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게 꿈이라고 생각했다. 꿈이 아니라면 사후세계의 어느 지점에서 잠깐 과거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영무가 발아래쪽으로 눈을 돌리자 자신의 환자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주카지노 게임, 25세, 교통사고(오토바이)로 인한 두부 외상”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자 벽에 걸린 달력은 현재가 2006년 11월이라는 걸 증명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카지노 게임의 기억이 서서히 돌아왔다. 그때 영주가 다가와 카지노 게임에게 말했다.
“오빠,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오빠가 이대로 나만 두고 죽는 줄만 알았다고. 오빠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도 오빠 따라서 같이 죽으려고 했어. 뱃속에 우리 아가도 같이. 나 오빠 살아서 돌아오라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어. 이제 주문을 줄줄 외울 정도라고. 오늘이 딱 49일 째야. 이건 정말 기적이라고.”
2006년 11월 영주와 헤어지던 날, 카지노 게임 친구와 술을 마시고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상태였다. 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막무가내로 오토바이에 올랐던 순간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리고 마주 오던 대형트럭의 불빛이 영무의 마지막 기억을 관통하듯 스쳐 갔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영무가 깨어났을 땐 분명 영주와 같이 첫날밤을 보냈던 모텔방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어진 고통의 나날들, 카지노 게임 깊은 의심에 빠져들었다.
‘믿을 수 없어. 내가 18년간 겪은 모든 일이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49일간의 꿈이었다고? 꿈이라면 이렇게 생생할 순 없어. 나는 분명 생생하게 살아있었다고. 이건 온전한 하나의 삶이었어. 지금도 나의 온 세포는 그 모든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아니야, 이 또한 꿈일 거야. 꿈이 아니고서야 어찌!’
카지노 게임 설명되지 않는 깊은 혼돈 속에서 다시 잠이 들었다. 잠시 후, 웅성거림에 카지노 게임 눈을 떴고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의 부모님이었다. 아들의 생환에 그저 눈물만 짓는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가 영무에게 말했다.
“지난밤 꿈에 돌아가신 네 할아버지가 나타나 널 다시 데려가라고 그렇게 간곡하게 말씀하시더니, 이게 다 네가 깨어날 꿈이었구나. 다행히 다른 외상이 없어서 의식만 돌아오면 금방 회복될 거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새 삶을 준비해라. 그날 사고로 네 오토바이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어. 이 모든 게 하늘이 도운 결과다. 영주도 너 살리겠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 이번 기회에 사람 목숨이 얼마나 귀한 건지 가슴에 똑똑히 새기거라.”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인 채 카지노 게임가 고개를 끄덕였다. 벅차오르는 생명의 에너지가 카지노 게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
“아버님,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영주와 이 아이 포기 못 합니다. 사람 목숨이 얼마나 귀한 건지 아십니까? 지금은 보잘것없는 저지만 그 누구보다 영주와 이 아이를 사랑할 자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이미 한 번 죽은 몸입니다. 아버님이 아무리 협박하신다 해도 이제 죽음 따윈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두려운 건 사랑을 포기하는 겁니다. 제가 진정 두려운 건 생명을 포기하는 겁니다.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꼭 허락해 주십시오. 장인어른!”
막무가내인 카지노 게임를 보며 영주 아버지도 혀를 내둘렀다. 저돌적으로 영주 아버지에게 호소하는 카지노 게임를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던 영주 엄마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20년 후,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카지노 게임에게 미국 최대의 독립 서점인 포틀랜드 파웰북스(Powell’s Books)에서 저자 강연 초청장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