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무게
성현의 꿈은 특별했다. 처음이었다. 꿈에서 내가 정말 성현이 된 것 같은 꿈이. 이전 꿈은 같이 꾸긴 했어도, 감정적 동요가 미세했는데, 어제는 그 먼지들이 온몸에 달라붙어 내 감정을 자극하는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했다. 온몸으로 꿈을 꾼 느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에너지의 방전이 되었다. 어떤 것에도 쉬이 집중하지 못해서 다른 직원들에게 볼멘 소리를 듣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도 초점을 흐린 채 앉아 있기 일 수였다. 먼지들의 대화 소리에 묻혀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 희미하게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사미가 나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나를 몇 번이나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머리를 손에 괴고 어제 꿨던 꿈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툭' 꿈에서 어깨에 내려앉았던 무게와 같은 무언가가 올려졌다.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갑자기 시야가 암막커튼을 친 듯 어두워졌다. 이건 꿈이 아니다. 나는 수차례 되뇌었다. 순식간에 정수리부터 폭발한 식은땀이 내 이마를 타고 뺨까지 흘렀다.
"어머! 정윤 언니, 얼굴에 땀 좀 봐."
내 볼에 닿은 차가운 감촉에 순간 나갔던 정신이 딸칵하고 다시 돌아왔다. 내 눈앞에 서 있던 건 김병장이 아닌 사미였다. 하지만 아직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아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툭하고 거친 말이 나왔다.
"아씨... 치워."
화들짝 놀란 사미가 내 얼굴에서 손을 뗐지만 어깨에 내려앉지 못했던 나머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이 이번엔 뺨에 고인땀에 달라붙었다. 레몬 향이 나는 샛노란 온라인 카지노 게임였다.
성현에게 받은 보랏빛 먼지들이 내 머리 위에서 전기를 찌릿 거리며 반짝이고 있었다. 성현에게 빠져나온 감정의 먼지가 돌아가지 못한 채 나에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정의 전이였다. 사미 또한 내 이런 반응에 놀란 듯, 표정이 잔뜩 굳은 채 나를 빤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사미의 얼굴에 금세 눈물이 글썽였다.
"언니, 내 손 닿는 것도 싫어? 나는 분명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사미야, 그게 아니라..."
설명하고 싶었다. 내 이런 상태에 대해서, 하지만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나도 믿기지 않는데 누구한테 믿으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이미 토라져 얼굴이 단풍잎처럼 물든 사미에게 어떤 말을 해봤자 구질 구질한 변명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나는 대충 악몽을 꾸고 있었다고 얼버부리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순진한 사미는 나의 그 말에 금세 방긋 웃으며, 그럴 줄 알았다며 해맑게 대출을 하려던 책을 나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어떤 사이인지 한참을 떠들었는데, 사실 잘 들리지 않았다. 내 귓전엔 이미 사미의 반짝이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이 몸을 부스스 떠들고 있었다. 오늘이 자신의 제삿날이 될 것 같다며 내 어깨 위로 뺨에 돌아다니며, 정신없게 만들었다. 나는 사미의 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도파민이라고 부른다. 사미가 매일 달고 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이었다.
그렇다고 같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은 아니었다. 노란빛이 점점 짙어졌다.
'사미는 이미 도파민에 중독된 게 아닐까?'
생각도 잠시 사미는 고맙다며 대출한 책을 들고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 모습이 앞으로 내가 꾸게 될 바이킹 3번, 번지점프 2번을 다시 한번 떠오르게 만들었다. 너는 그렇게 오늘도 좋아하겠지. 도파민이 팡팡 터진다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화장실 변기 예약은 불 보듯 뻔했으므로. 이상하게 사미는 연약하고 겁이 많아 보이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스릴 넘치고 위험한 것들을 좋아했다. 번지점프도 거의 코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떨어졌으니까. 그래서 매번 사미의 꿈을 꾸고 나면 새벽마다 화장실로 향해야 했다. 타인의 감정을 꿈으로 닿는 건, 어떤 때는 악몽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다.
내 감정이 아니니까, 거부감이 들다가도. 또 어느새 내 감정처럼 익숙해진다. 종이에 묻은 물감이 서서히 그 종이를 물들듯이. 하지만 사미의 감정은 늘 잠이 들 때마다 새것 같다. 몸이 체했던 음식이 들어가면 기억하고 체하듯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또 하나 이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미의 꿈을 꿀 때마다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종종 나타나곤 했는데, 검은 인주를 묻히고 손가락으로 짓누른 것처럼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저게 뭐지? 라며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면 꿈에서 깨기 일 수였다. 하지만 굳이 사미에게 물어보진 않았다. 내가 자신의 꿈을 같이 꾸고 있다는 걸 알면 불편해 할 수도 있고, 남의 사생활이라는 게 알면 더 골치 아파지기 마련이니까.
안 그래도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꿈까지 내 마음대로 꿀 수 없다니. 미친 듯이 바이킹을 타느라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내 모습이 모니터에 비치는 것 같았다. 에잇, 고개를 휙 하고 돌리니 네모난 휴지 박스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제거 퍼펙트라고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제거는 무슨. 억울했다. 그럼 내 몸에 붙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제거해 보라지. 애꿎은 휴지를 뽑아서 어깨를 쓸었다. 하지만 역시 노란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하나도 묻어 나오지 않았다. 뽑은 휴지를 책상 위에 던졌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제거 같은 소리. 공중에 나풀거리던 휴지는 책상 위에 스르륵 놓였다. 내가 쓰는 검정 모나미펜 옆에 사뿐히.
처음엔, 어차피 버릴 휴지 아무거나 끄적여보자는 심산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제거를 퍼펙트하게 하지 못했으니, 내 안의 걱정거리나 지워달라는 심산으로, 내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 같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하얀 휴지에 빼곡히 내가 알게 된 것들이 적혔다.
감정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뿌리는 그 사람의 기억이다.
하루 종일 그 사람이 생각한 감정들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로 발현된다.
만약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아무 감정 없이 지냈다면, 그 사람의 머리 위엔 하얀 먼지가 자가분열하며 유영한다.
꿈을 꾸기 위해선 가장 많이 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이 뭉쳐서 그 사람에게 내려앉는데, 내가 그들을 만나면 적은 개체수도 뭉치게 하는 특정 주파수가 흐르는 것 같다.
내가 먼지꿈을 꾸게 되면 며칠간 그 감정이 나에게 머무르는 것 같다. 감정 전이는 분자꿈의 부작용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들이 내려앉기 전에 먼저 잠이 들어버리는 사람들은, 보통 꿈을 꾸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하나씩 나열하니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모여 꿈이 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꿈'
감정이 먼지가 되고, 다른 먼지들과 섞여 있다가, 나에게 닿아 다시 점이 되는 곳. 이건 가게도 아니고, 상담소도 아니고, 점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지만,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감정이 모이고, 기억이 흘러나가고, 다시 꿈을 꾸고 살아가는 곳.
더 이상 내가 원하지 않는 꿈을 꾸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성현처럼 누군가가 내 이 능력으로 자유로워지거나, 그리운 상대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나는 그 꿈을 통해, 잃어버린 내 기억만 찾으면 되니까.
며칠 후, 나는 ‘먼지꿈’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내가 꾼 꿈이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 꿔주는 일이 될 수 있다면,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구독자 수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 채널을 통해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꾸고, 나온 감정들은 나에게 버리면 된다. 의뢰 방식은 단순하다. 사람들은 내가 만든 커뮤니티 페이지에, 꾸고 싶은 꿈을 떠올리며 자신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낸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듣고 싶은 노래나 잊고 있던 장소일 수도 있다. 사진에는 그 감정을 품고 있었던 순간의 여운이 남아 있다.
그 사진 위에 드리워진 감정의 먼지들, 그중 어떤 감정을 가장 강하게 꿔보고 싶은지 짧은 문장으로 적는다. 나는 사진을 보고, 감정의 입자 중 원하는 감정을 무겁게 만든다. 그래야 그 감정이 상대의 꿈에 가장 먼저, 가장 오래, 내려앉게 된다. 그 감정은 때로는 미안함이고, 때로는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꿈을 꿔주며, 그들이 말하지 못한 마음을 감정으로 번역해 준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이 내게 남긴 문장을, 짧게 봉투에 담아 다시 보낸다.
“하루에 하나, 한 사람에게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의 물건이나 사진을 보내주세요. 원하는 꿈을 꾸게 해 드립니다. 미래에 대한 꿈은 어렵습니다. 당신의 기억을 통과해 꿈이 발현됩니다.”
며칠 후, 커뮤니티 페이지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정확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는 살고자 하는 사람을 죽였어요. 염치없다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다시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꿈에서라도."
-정세-
그가 올린 사진엔 죄책감에 울고 있는 듯, 잔뜩 굽은 어깨가 부서질 듯 흔들리고 있었고, 그의 머리 위로 짙은 회녹색 먼지들이 흔들리며 부유하고 있었다. 곰팡이가 핀 먼지 같아 보였다. 상당히 많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뭉치지도 대화를 하지도 못한 채 다른 감정 먼지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그 모습이 의뢰인과 같게 느껴졌다. 나는 모니터 속 사진에 손을 올렸다. 손가락을 통해서 부유하는 여러 먼지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 숨어 있는 회녹색 먼지들에게 속삭였다.
"이제 그만 나와.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손을 쓰윽 모니터에 쓸었다. 손 끝에 정전기가 나는 듯, 파팟 소리가 났다. 분명 모니터에 사진 속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가 한 말을 듣기라도 한 듯, 회녹색 먼지들은 너울너울 움직이기 시작했다. 곰팡이처럼 보였던 먼지들이 모이니 먹구름 같이 변했다. 곧 비라도 쏟아질 듯, 초록빛이 빛나서 꼭 오로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꿈으로 초대하는 댓글을 남겼다.
안녕하세요? 정세님,
온라인 카지노 게임꿈에 당신의 사연이 접수되어 안내드립니다.
오늘 밤, 당신의 꿈을 꾸어야 하는 시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4월 15일* 00시 30분
그때, 눈을 감아 주세요. 감정의 먼지가 우리 사이에 머물 수 있도록, 주파수를 맞춰야 합니다.
– 당신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꿈사-
댓글을 올리자, 바로 짧은 감사의 글이 올라왔다. 네,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이었다. 공지 글을 올리긴 했지만 정말 그를 도와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나의 첫 의뢰인이었다. 나는 그가 없애고 싶은 죄책감이라는 먼지를 사라지게 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꿈을 꾸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