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심, 범죄자의 심리
몇년 전
봉준호 감독님의 ‘무료 카지노 게임'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스포 있음
필자는
범죄를 저지른 수천 명의 피고인들을 변론했기 때문인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범죄가 등장하면,
변론할 사건을 파악하는 것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을 분석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시건을 분석하다가
어느 순간 현실과는 다른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그때서야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화에서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데 위 ’ 무료 카지노 게임‘라는 영화는
영화가 너무나 사실적이었고, 배우들이 마치 등장인물 자체인 것처럼 느껴져서
마치 필자가 형사변호사로서 실제 사건을 파악하는 것처럼 영화에 빠져들었다.
극 중에서 ‘바보’로 나오는 스물여덟의 도준(원빈 분)은 어느 날 여고생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으로 지목되어 수사를 받는다((피해자의 시신 옆에 '윤도준' 이름이 기재된 골프공이 놓여 있었다.).
도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평범한 '바보' 도준은
우연히 피해자를 만나 따라가다가 피해자에게
남자가 싫으니?
라는 말을 했고,
피해자는 그 말에 가던 길을 멈췄다.
여고생이었던 피해자는 양육해 줄 부모 없이 치매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생계유지를 위해 성매매를 하고 있었다. 치매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야 하니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방법이 성매매였을 것이다.
아마도 피해자는 남자가 진심으로 싫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쩌면 도준으로서는 큰 의미 없이 했을 수 있는) “남자가 싫으니?"라는 말에
피해자는 멈춰 섰고
도준을 향해 그 커다란 돌덩이를 던졌다.
다행히 돌덩이는 도준이 바로 앞에 떨어졌다.
피해자는 도준에게 말한다.
너 나 알아?
도준은 모른다고 한다.
피해자는
근데 왜… 난 남자가 싫어.
그러니까 말 함부로 하지 마,
“이 바보 같은 새끼야"
라는 말을 한다.
도준이 피해자에게 했던, “남자가 싫으니?”라는 말도,
피해자가 도준에게 했던, “바보 같은 새끼야”라는 말도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가던 피해자는
자신에게 상처인 "남자가 싫으니?"라는
도준의 말에 반응했고,
도준 역시 자신의 상처인 "바보"라는 말에 반응했다.
도준은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행동으로 응징한다..
“무시하는 놈들 반드시 족치라”
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바보"라는 말에 반응하게 된 도준은,
피해자가 도준에게 던졌던 그 커다란 돌덩이를 다시 피해자를 향해 던진다.
피해자가 도준에게 던진 그 커다란 돌덩이는 다행히 도준을 피해 갔지만,
안타깝게도 도준이 피해자에게 던진 그 커다란 돌덩이에 피해자는 제대로 맞아 사망한다.
평범한 도준이 우연히 피해자를 만나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는 말인
남자가 싫으니?
라는 말을 하고,
그 말을 듣고 상처받은 피해자가 도준을 향해 그 커다란 돌덩이를 던지게 되고,
피해자 역시 도준에게 민감한 말인
바보
라는 말을 하자,
도준이 그 커다란 돌덩이를 다시 피해자를 향해 던져서 피해자가 사망한 것처럼,
실제 형사법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범죄들은
계획적인 경우보다는,
영화에서 도준이 범죄자가 된 이유와 같이
여러 가지 우연이 겹치고, 그 순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여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영화 속에서 도준은 ‘바보’로 나온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바보'역할이었던 도준이 하는 말과 행동은
보통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하는 말이나 행동과 다를 바 없었다.
수사를 받으면서 자백을 하게 될 질문을 받자,
기억나지 않는다
고 말하는 장면,
모친이 “네가 그랬어?”라고 물어보자,
내가 당연히 안 그랬지
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너무나 현실적인 그 모습에 마치 필자가 변론했던 피고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도준이 ‘바보’가 아닌 보통 사람이었다면,
관객이 도준에게 공감하기 어려울까 봐 도준의 캐릭터를 ‘바보’로 설정한 것일까?
도준은 겉모습은 “바보’였지만,
사실 평범한 범죄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누구라도 실제 도준과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면 자신이 한 행동 그 자체도 무서울 것이고,
그 행동이 발각되어 처벌을 받는 것도 무서울 것이다.
따라서 수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한, 실제 타인을 살해했더라도, 가족에게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릴 수 있는 사람 역시 극히 드물 것이다.
(도준 역시 수사를 받고 있는 도준을 만나러 유치장으로 온 어머니께 자신이 여고생을 살해했다고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제목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무료 카지노 게임’였다.
무료 카지노 게임(김혜자 분)는 도준이 누명을 썼다고 확신하고,
없는 돈에 어렵게 변호사를 샀지만,
변호사는 도준의 무죄를 밝혀줄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경찰서 유치장으로 도준을 찾아가 물어본다.
“네가 죽였어?”
도준은
‘당연히 안 그랬지 “
라고 대답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도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발로 뛰면서 증거를 찾는다.
도준도 사건당시의 기억을 꺼내려 노력한다.
현장검증을 진행하는 모습도,
무료 카지노 게임가 발로 뛰면서 증거를 찾는 모습도
마치 진범이 따로 있는데, 돈 없고 힘없는 ‘바보’ 도준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잡혀 들어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피해자의 주변인물들을 만나면서, 피해자가 성매매를 해서 생계를 유지해 온 사실을 알게 된다.
“피해자가 성매매한 남자들을 핸드폰에 사진을 찍어 보관했는데,
아마도 피해자의 핸드폰에 남겨진 사진들 속 남자들 중 1명이 범인일 것이다”
라는 그럴듯한 말을 듣게 된 ‘무료 카지노 게임’는
어렵게 피해자의 핸드폰을 찾아 ‘바보’ 도준이 수감 중인 구치소로 향한다.
무료 카지노 게임가 찾은 결정적 증거인 피해자의 핸드폰과 도준의 기억이 합쳐져서 고물상 할아버지를 결정적인 증인 또는 범인으로 의심하게 된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도준의 결백을 밝히기 위하여
고물상 할아버지가 있는 고물상으로 찾아간다.
고물상 할아버지는
사건당일 사건현장에 자신이 있었음을 실토한다.
그런데,
도준이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 무료 카지노 게임의 바람과 달리
고물상 할아버지는 사건현장을 모두 목격하였고,
고물상 할아버지의 진술을 들을수록
도준이 범인임이 확실해졌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도준이 진범이 아니라면서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말을 하며 도준이 범인이 아니라고 항변해 보지만,
고물상 할아버지는
“도준이 범인이 확실하다"
면서 경찰서에 신고하겠다며 전화하려 한다.
그 모습을 본 '무료 카지노 게임'는 광기를 표출하며 둔기로 고물상 할아버지의 뒤통수를 여러 번 내리쳐 살해한다.
그리고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또는 아들인 도준을 위해) 또는 광기가 표출되어 고물상에 불까지 지르는 용서받기 어려운 중범죄를 저지른다.
고물상 할아버지를 살해하고 고물상에 불까지 지른 무료 카지노 게임는
숲 속을 정처 없이 걸어 다니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잠에서 깨어난다.
사람도 살해하고 불도 지르고 도준이 범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목을 졸라 피해자를 살해한 피고인들이 공통적으로 필자에게 한 말이 기억났다.
필자가 위 피고인들과의 접견과정에서
살해한 과정에 대해 물어보면,
그 피고인들은 공통적으로
목을 조른 기억이 있고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피해자가 죽어있었습니다.
고 말했다.
실제로 목을 졸라 사람을 살해한다고 생각하면,
그 과정에 엄청난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감당하기 힘들기에 목을 조른 순간만 기억하고 살해 후 바로 잠이든 것이 아니었나’ 하고 추측해 본 적이 있었다.
필자는 수천 건의 형사사건을 변론하면서
‘내가 살기 위해, 내 가족이 살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범죄가 아닐까 ‘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의 주인공 ‘무료 카지노 게임’는
내가 살기 위해, 내 가족이 살기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범죄자에 가장 가까웠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범죄행위를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시킬 수는 없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고달팠던 무료 카지노 게임의 삶과 심리상태를 추측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도준이 5살 때 박카스에 농약을 타서 도준이에게 먹인 사실이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도준이와 함께 동반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농약을 치사량보다 적게 타서 죽지 않았고 아마도 도준이는 그때부터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인생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고 싶었을 만큼 힘들었던 것 같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이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침술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무료 카지노 게임는 이때부터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돌덩이처럼 가슴에 안고 살아왔을 것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아들이 누명을 썼다고 확신하고는 증거를 찾기 위해 발로 뛰다가 골프채에 묻어있는 립스틱 자국을 핏자국이라 오해해서 도준의 친구가 경찰조사를 받게 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자식이 살인죄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어머니의 애타는 모정이라고,
아들을 믿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선해하여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목격자인 고물상 할아버지가 도준이 범인이라면서 경찰서에 신고하려고 하자, 둔기로 고물상 할아버지를 내리쳐 살해하고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하여 또는 광기로 불까지 지르는 행동은,
모정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잔인한 범죄일 뿐이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스스로 살기 위하여, 내 가족이 살기 위하여
고물상 할이버지를 살해했고,
도와줄 부모도 없고 장애가 있어 스스로 의사표현도 하기 어려운 (진범으로 몰리면 누명을 쓸 확률이 높은) 종팔이가 진범으로 처벌받는 것을 묵인한
범죄자였다.
위 ‘무료 카지노 게임’라는 영화에는
인간의 이기심,
범죄자의 심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이처럼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 때문인지
현실과 다른 부분을 느끼고 영화 중간에 영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위 ‘무료 카지노 게임’는 영화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영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