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재원 Apr 17. 2025

별이 잠드는 바다(2) 다시 나타난 이름

2

2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지니라고 부른 여성이 실망한 눈빛으로 입술을 비죽 내밀며 볼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얼굴이 마치 샤오룽바오처럼 부풀어 올랐다.

“아이, 쌤. 그 이름 말고요. 쌤까지 저 그렇게 부르는 거 싫어요.”

나는 허둥지둥 수습했다.

“미안, 미안. 알고 있어. 근데 방송이며 신문이며 어디서나 지니, 지니 하니까... 반사적으로 나왔네. 너 카지노 게임잖아? 김예진.”

“지니 먼저 알아보고 예진은 나중에 기억하셨으니까 무효예요. 실망이에요.”

“무슨 소리야. 당연히 기억하지. 내가 어떻게 널 기억 못할 수 있어?”

“증거요.”

“증거? 좋아. 우리 반에 카지노 게임가 세 명이었어. 너, 이예진, 정예진. 네가 우리 반 올라올 때 점수도 기억해. 평균 94점. 2등으로 올라왔고, 우리 반 회장이었고, 학교 댄스 동아리 했고, 노래 엄청 잘하고, 춤 잘 추고, 서울시 학생 댄스 경연대회에서1학년때 부터 내리3연패 했고, S외국어 고등학교 갔고. 다 알잖아? 우리 반 에이스를 내가 어떻게 잊어?”

‘에이스’ 이건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카지노 게임는 아무리 호모 사피엔스의 기억 용량이 150명이 한계라 하더라도 절대 그 자리를 내어 주지 않을 영구 저장장치에 기록된 몇 안되는 제자들 중 하나였으니까.

교사는 학생을 편애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되도 않는 소리다. 교사도 사람이다. 자식도 편애하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학생을 어떻게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학생 중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지,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카지노 게임는 내 교직 경력 33년을 통틀어 가장 많이 사랑했던 아이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2009년, P중학교에서 2학년 8반 담임이던 시절 카지노 게임를 처음 만났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반은 내 교직 인생 최악의 학급이었다.

일단 말썽쟁이들이 그 수로 보나 다양성으로 보다 압도적이었다. 주먹 쓰는 녀석이 둘, 무단 결석 밥 먹듯이 하는 녀석이 둘, 이간질 잘 시켜 걸핏하면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를 오가는 녀석도 있고, 조울증 걸린 아이, 심한 우울증, 심지어 약물 오남용도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소극적이고 수줍었다. 말썽은 부리지 않지만 뭔가 나서서 하지도 않는 그냥 반응 없이 조용히 있는 아이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고, 교사 입장에서는 이런 학급이 가장 힘들다. 말썽쟁이들은 그냥 엎드려 자고, 다른 아이들은 교사를 쳐다는 보는데 아무 대답도 안하고. 이런 반에서 수업하면 마치 40분간 벽에 독백하는 것 같다.

카지노 게임는 그런 반에서 수업 들어오는 교과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그래도 김예진, 얘 보는 맛에 8반 수업 간신히 견뎌요.”라고 말하던 아이였다.

나한테도 그랬다. 학급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믿고 맡기길 아이는 카지노 게임 뿐이었다. 학급에서 뭔가 정하거나 추진할 일이 있을 때 의논할 상대도 카지노 게임 뿐이었다.

카지노 게임는 학교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다. 수업은 물론 학교에서 하는 활동은 거의 모두 참가했다. 해마다 학급 회장을 맡았고,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방과후 수업도 여러 개 수강했는데, 공부 뿐 아니라 댄스, 밴드 이런 것도 열심히 참가했다. 방학때는 늘 학교 도서관에 와서 살다시피 했고, 학교에서 비싼 돈 들여서 만들었지만 정작 학원 다니느라 바쁜 아이들이 쓰지 않는 동아리 활동실(마루 바닥, 거울벽, 조명 등이 있어 댄스, 밴드가 사용하는 방)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성적도 1등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93점에서 96점 사이를 오가며 대체로 95점 정도에서 균형을 맞췄다. 300명 중 10등에서 20등 사이 어딘가, 학급에서는 늘 2등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따라가면 전교권이 될 법도 한데 그 한 걸음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이 카지노 게임가 그 한 걸음을 좁히기를 응원하고 기대했지만 끝내 12등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1등 하는 아이보다 카지노 게임를 높게 평가했다. 저 성적은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올린 것이니까. 다른 아이들이 입시학원 다니는 시간에 카지노 게임는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당연히 그런 학생이 학교에서는 제일 귀염받는다. 공부는 기본 장착, 똑 부러진 예의범절, 그런데 탁월한 예체능 능력.

카지노 게임가 졸업할 때는 내 교직 경력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선생님들이 졸업과 외고 입학을 축하한다며 개인적으로 선물을 한 것이다. 졸업식날 선생님한테 선물 하는 학생은 종종 있어도 선물 받는 학생은 카지노 게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 반 에이스’ 이 말에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카지노 게임에 대한 최상의 기억이 모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는 이 말을 듣고도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슬쩍 보니 여전히 터지기 샤오룽바오 얼굴이 유지되고 있었다.

마침내 카지노 게임가 공기를 뱉아내며 원래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살짝 웃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웃음은 아니었다.

“쌤, 다 잊으셨네요.”

“아니야, 뭘?”

“예니요.”

순간 멈칫했다.

“내 딸 이름을 왜...?”

“그것 봐요. 기억 못하세요.”

나는 말없이 카지노 게임 표정을 살펴 볼 수 밖에 없었다. 살짝 골이 나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는데, 12년 동안 연락도 안 하다 갑자기 나타나 웬 스무고개야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때 카지노 게임 전화기를 꺼내 힐끔 보더니 가볍게 인사했다.

“오늘은 계시는지 확인만 하려던 거예요. 다음 주에 진짜로 시간 괜찮으시면, 시간 좀 내주세요. 상담해요. 쌤. 괜찮으시죠””

“물론이지.”

“번호 그대로시죠?”

“아니, 바꿨어.”

“네에? 왜요? 언제?”

“2018년에. 경찰청에서 내 번호가 해킹되서 스미싱인지 피싱인지에 이용되었다나 뭐라나 그래서.”

“아, 그렇구나. 어쩐지. 하필 2018년에. 하필 그 때.”

“그때 연락했었니?”

“답이 없으시길래 저 버렸나보다 했어요.”

“무슨 말도 안되는.”

“그땐 그랬어요. 제가 좀.”

카지노 게임 휴대폰을 내밀었다.

“번호 넣어주세요.”

나는 조용히 숫자를 눌렀다.

“쌤, 전번 따였네요? 좋으시죠? 미인한테 전번도 따이고?”

“아, 그게 그런 거였어?”

“아이, 또 정색하신다. 농담이에요. 그럼, 안녕히 계셔요.”

카지노 게임 마지막으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공기처럼 가볍게 사라졌다.

카지노 게임 사라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차 한 잔은 커녕,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12년 만에 찾아온 가장 사랑했던 제자에게.

내가 이래가지고 무슨 선생 자격이 있나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손목에서 진동이 울렸다. 카카오톡.

-쌤. 카지노 게임에요. 너무 오래 연락 못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건강하게 계신 거 봐서 너무 좋았어요. 다음 주 언제 시간 괜찮으신지 말씀해 주세요. 오늘은 계시는지 확인차 들렀고요, 다음 주에 좀 제대로 만나요. 쌤, 퇴직 하시기 전에 상담 받고 싶어요. 중학교 때처럼. 꼭요. 해주실 거죠? 예진 올림.

시간 괜찮냐고? 퇴직 날짜 세고 있는 교사에게 바쁠 일이 뭐 있겠는가. 나는 얼른 예진의 번호를 연락처에 저장한 뒤 답장을 보냈다. 마치 예진의 번호가 증발이라도 할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아무 날이나 괜찮아. 너 편한 시간으로 정해줘.

바로 답장이 왔다.

-한 번으로 안 끝날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당연하지

-그럼 부탁 드려요. 참, 저, 쌤이 저 지니라고 부르는 거 싫어요. 지니가 싫은 건 아닌데, 쌤은 안되요 지니는 나중에 소개시켜 드릴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