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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yunseul Apr 09. 2025

고마움에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의 미학

금요일 퇴근 후,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귀가를 했다. 온기 가득한 햇살에 시나브로 온 봄을 한가득 담아내었다. 집으로 와 간단히 정리를 했다. 쓰레기를 한데 모으고 빨래를 돌렸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책상에 앉으니 곧 밀려오는 적적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여덟 식구 한 지붕아래 살던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이 적막함에 그때가 문득 그리워졌다. 그땐 사람 없는 구석을 찾아 몸을 웅크리고는 핸드폰 게임을 했었다. 그러다 누가 나를 찾으면 자는 척했지. 누가 나보고 빨래 널라고, 밥상에 수저 놓으라고 할까 봐.

헛헛한 맘에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큰맘 먹고 카지노 게임를 하나 주문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단백질이 풍부한 무언가가 먹고 싶어서. 아니, 그냥 카지노 게임가 생각나는 날씨라서. 그 정도의 이유였다.

엎드려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20분 후면 빨래가 끝날 것이고, 그거 다 널고 나면 바로 배달이 오겠네. 그러면 20분만 좀 쉬어야겠다. 잠시 주어진 휴식, 남들 보면 비웃을지도 모를 고되지도 않은 살림에 지친 아낙은 곤히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니 1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빨래는 이미 끝나 온 집안은 절간 같았다. 문 앞으로 대령된 카지노 게임를 뜯어 상을 차렸다. 배추 한가득에 여러 가지 싸 먹을 것들과 밑반찬이 함께 왔다. 내가 혼자 먹을지 어떻게 아신건지 딸랑 젓가락 하나 왔다. 밑반찬은 또 용기가 터져라 담아주는 사장님의 인심이 다소 비어보이는 상 한구석을 채운다.


차로 30분, 아빠의 차를 타고 내달리면 바다가 나왔다. 그 바로 옆 시장, 갓 잡은 게, 문어, 갈치, 조개가 널리고 널린 곳에서 할머니와 장을 보기도 했다. 나는 그곳의 카지노 게임와 문어를 참 좋아했다. 집에 한가득 사들고 와 상다리 부러져라 먹던 점심. 가족들끼리 잠시 다녀온 그 바다의 냄새가, 그 정겨움이 밥상 위로 너울너울 떠다녔다.

김 위에 미역, 마늘, 고추, 쌈장, 초장 다 때려 넣고서는 야무지게 씹어먹었다. 처음에 해조류의 감칠맛이 감싸고돌다 마늘 고추를 빻으며 올라오는 매운맛에 이미 혀는 마비되어 버린 상태. 그때 온갖 것들에 버무려진 카지노 게임의 비린내는 후각이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버린다. 지금에야 소주 한잔에 날려버릴 비린내지만 말이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하루. 그러나 당연하지 않았단 모든 순간이 버무려진 한입. 나는 그때가 그리웠나 보다, 사실 오늘 카지노 게임를 시킨 이유는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그날 저녁, 카지노 게임 한 접시에 나는 오래된 계절 하나를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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