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이바시, 아메리카 무라.
식사를 하고 나와보니 이미 밤이 늦었다.
다들 지쳤지만, 도톤보리 조금 위로 걸어가면 바로 신사이바시라는 상점가 거리가 있다.
"우리 신사이바시도 가봐야지, 여기까지 왔는데. 또 언제 갈 줄 알고."
상점가 거리의 길이는 가볍게 한번 둘러보고 돌아갈만했기에, 강행하자고 졸랐다.
배부른 탓인 건지, 잠시 들른 도톤보리 가차샵+오락실 덕분인 건지, 아이들은 흔쾌히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간과한 것은 지난밤 남편과의 대화였다. 나는 그 대화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기에, 남편이 그 대화를 통해 어떤 일을 마음속 메모지에 적어두고 옆에 체크를 위한 빈 네모 박스를 하나를 그려두고 있었다는 것을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화려한 도톤보리의 밤풍경을 구경하며, 신사이바시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난바, 신사이바시 쪽에는 백화점들도 몇 군데 있고, 명품 빈티지 샵들도 있다. 남편과 카지노 게임들을 잠시 쉬게 둔 뒤, 빠르게 들어갔다 나올까 고민하고 있었다. 일본 하면 또 특이한 디자인들의 옷과 신발, 가방, 액세서리들이 유명하지 않은가! 길가의 여러 가게들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밤이 너무 늦었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고민할 틈도 없이 남편의 발걸음은 너무 빨랐다. 마라톤을 하는 것인지, 산책을 하는 것인지... 두루두루 둘러보면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쫓아가기 급급했고, 어느 순간부터 지쳐버린 사춘기 소녀는 아빠와 같이 묵묵히 앞에 서서 걸어가기에 바빴다.
'아니 뭘, 시간을 줘야 보든지 말든지 하지.'
마음이 급해졌다. 빈티지 샵은커녕, 길거리 좌판조차 훑어볼 틈을 주지 않았다. 신사이바시 상점가 거리가 다 끝나가자, 이렇게 걷기만 할 거면 대체 여길 왜 왔나 하는 생각에 성질이 났다.
"아, 쫌 구경 좀 하자!"
참다못해 한마디를 저질렀다.
"아니, 우리가 여길 또 언제 온다고!"
씩씩거리며 아무 가게나 들어갔지만, 그 기분으로 물건들이 눈에 보일리가. 눈치가 너무 보이고, 뭘 사려고 해도 심사숙고할 시간은 내게 조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와의 여행에서는 작은 사치조차도 욕심인가 싶어 서럽고 속상했다. 입을 쭈욱 내밀고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신사이바시 거리의 끝.
하지만 카지노 게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아메리카 무라'야, 여보! 당신이가보고 싶다던 말이야!"
'엥??'
문득 스쳐가는 어젯밤의 대화.
사춘기 소녀와 한바탕 투닥거린 뒤, 카지노 게임과 잠들기 전 한 대화가 떠올랐다. 아, 내가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왜, 우리 20년 전에도 나는 아메리카 무라 가고 싶었는데, 결국 못 갔잖아. 너무 궁금했는데."
아 이거였... 이거였구나.
하지만 여보.. 지금은 너무 늦은 밤이고.. 어차피 상점들은 문을 닫을 거고.. 아메리카 무라거리는 너무 넓고.. 지금 거기를 다 돌아보면 카지노 게임들과 나는 모조리 지칠 텐데, 그곳을 가고 싶다는 건... 천천히 구경하고 싶다는 말이지... 거기만 찍으면 된다는 말이 아닌데...
'나 잘했지'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카지노 게임 옆으로 걸어가는 사춘기 소녀의 상태가 영 별로다.
-아.. 이건 아닌데 정말 아닌데...
카지노 게임은 왔으니 맘껏 구경하라는 표정이다.. 한껏 뿌듯함을 뒤에 업은..
하지만 그러기에 당신은 너무 직진하고 있는 걸..
이 넓은 데서 뭘 어떻게 찾아보라는 말이야..
난 하나도 신이 나질 않고 좀비걸음으로 걷고 있는 애들 눈치만 엄청나게 보이는 걸...
아메리카 무라 거리는 스트릿 브랜드들이 잠식하고 있었는데, 딱 봐도 힙해 보이는 언니와 힙해 보이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태원이나 홍대스타일이라고 할까. 전혀 정보가 없는 나로서는 뭐가 있는지 잘 모르니까 무턱대고 들어가려니 겁이 났고, 지친 나머지 이제는 다크서클까지 내려앉아 보이는 아이들도 너무 신경 쓰였다. 역시나 명품 빈티지 가게들이 보였지만,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그곳에 들어가자고는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와서라는 생각이 들어 '에잇!' 하고 눈에 보이는 몇몇 가게로 들어가서 급하게 구경을 했고, 그게 그냥 그날의 한계였던 것 같다.
신사이바시 상점가만 돌아보더라도 무리한 일정에, 아메리카 무라까지 '한. 바. 퀴. 돌. 아. 보. 니' 아이들은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 남편의 저 뿌듯해 보이는 뒤통수에 초를 치는 한마디를 할 수도 없고...
직진본능... 길을 찾아야 한다... 챗쥐피티가 되어버린 내 카지노 게임..
'그래, 뭐 드디어 와봤네 아메리카 무라. 소원 풀었다 내가. 당신 덕에... 고맙다. 기억해 줘서.'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애써 긍정을 끄집어내어 생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머리는어질어질하고 입에서는단내가 났다. 하염없이 걸은 탓에종아리도찢어질 듯 아파오고, 발바닥에는 감각이 없었다.
'어디 커피숍이라도 좀 찾아서 잠시 카지노 게임들을 앉혀두었으면. 나도 어디를 둘러볼지정해보고 잠시라도 마음 편하게 구경했을 텐데.'
애써 좋은 생각을 하려는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육체의 절대적인 피곤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부정적인 생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군대가 행군을 하듯, 아메리카 무라 행군산책을 마치고 다시 신사이바시 상점가로 들어섰다.
둘째도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었는데, 한정 없이 걷기만 하니 아쉬운 마음이 컸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와 같이 유튜브로 오사카 브이로그를 보곤 했는데, 유독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가, 지나가다가 영상에 자주 나오던 만두 가게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엄마, 저기 엄마랑 본 만두가게다!나 저 만두. 만두 먹고 싶어요."
둘째는 다급히 내 손을 잡고 흔들며 애절하게 쳐다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아마도 그 만두집도 지나쳐버릴 것 같았나 보다.뒤돌아보니 551호라이 만두가보였다. 오사카 오기 전 같이 영상에서 봤던 바로 그 유명한 만두집이었다. 둘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기 때문에, 나는 모두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만두 좀 사가지고 올게."
"아, 꼭 넌 이걸 먹어야겠냐?"
볼멘소리로 사춘기 카지노 게임 둘째한테 타박을 한다. 나는 놀라 당황하는 둘째의 등을 토닥이면서 고개를 돌려 큰애를 향해 말했다.
"금방 사. 기다려. 맛있대."
사춘기 소녀의 눈빛이 지치고 점점 사나워지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만두가게에 줄을 섰다.
난바역으로 가는 길에 사춘기 소녀의 눈이 잠시 반짝였다.
이런저런 관광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좋아하는 젤리브랜드의 못 보던 맛을 발견한 것이다.
"어! 이거 딸기맛은 처음 보는 건데!"
자연스럽게 모두의 발길이 멈추어 세워졌다.
"그럼, 우리 이 가게 조금 구경하고 갈까?"
"어, 그래도 돼요??"
사춘기 카지노 게임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럼! 엄마도 사고 싶은 거 있었어! 마침 잘 됐어!"
속으로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이 가는 물건이 있으면 소녀는 그래도 마음이 스르륵풀리곤 했으니까. 지친 행군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았으니, 이제 사나워지는 눈빛이 좀 사그라들겠지. 예상대로 구경하고 있는 큰 아이는 즐거워 보였고, 나도 힘들지만 작은 틈의 쇼핑을 또 즐겼다. 그렇게 다시 우리 가족의 마음은 피곤하지만 평화로워져 갔다. 그러나, 곧이어 들린 둘째의 작은 비명소리에, 나의 평화는 또다시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져야 했다.
"아야"
중국인 관광객 아줌마가 둘째를 밀친 것이다. 그것도 계단에서! 아주 세게 밀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어쨌든 아이는 조금 휘청거렸다. 오사카에 도착했을 때 일본 아줌마가 둘째를 밀쳤는데, 이번에는 중국인 아줌마라니!
이번에도 저번처럼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는 멀리서 그걸 봤고. 여기는 외국이고 쫓아가서 화낼 수는 없고. 어떡하지 하는 순간 시간은 지나가버렸고.
아니 대체 왜 자꾸 작은 카지노 게임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그 중국인 관광객 아줌마의 카지노 게임들도 가관이었다.
물건 담는 바구니를 입에 물고 계단을 우당탕 거리며 뛰어다니며 다른 손님의 진로를 방해했다.
그리고 그 아줌마는 그걸 제지하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들이 내 앞에서 이번에는 나를 본체만 체 하며 돌진을 해 오자, 짜증이 팍 났다.
"Don't touch me, Don't touch me!"
짜증스럽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순간 나도 확 밀쳐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 아이들도 너무 어렸고, 나는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어린아이를 밀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대신에 둘째를 꼬옥 껴안고 다시 한번 물었다.
"괜찮니?"
"응. 엄마 난 괜찮아요, 엄마는 괜찮아요? 화가 많이 나 보여요..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전 괜찮으니까요."
지금 내 얼굴 표정이 어떻길래... 딱딱하고 굳어진 표정이려나. 다시 한번 둘째를 꼬옥 껴안았다.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불쾌감이 역시 나를 감싸고 있는 작은 손의 토닥임에서 사라져 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장면은 또다시,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도, 또.
"그런데... 엄마... 나, 나 화장실..."
"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또다시 시작된 미션. 한 가지 상황이 끝나면 바로 연이어 발생하는 다음 상황. 내가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눈앞에 작은 카지노 게임는 생전 처음 와 보는 장소에서 믿을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으니, 평화 따위를 느끼는 시간 같은 것은툭 끊어버려야 했다. 두리번거리며화장실을 찾았고..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스타벅스에는 늘 화장실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 냈다. 서둘러카지노 게임에게 고지를 한 뒤, 쇼핑한 물건들을 넘겨주며,둘째를 데리고 스타벅스로 향했고, 카페내부에 화장실이 없어 다시 이 건물 저 건물 헤매이게 되었다. 급하다며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는 둘째를 다독거리며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두리번거리며 안간힘을 쓴 덕에 화장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시 환하게 웃으며 시원한 표정으로 나오는 둘째를 데리고한숨을 돌리며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긴장감이 타악 풀렸다.갑자기 급격하게몸과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쳐감을 느꼈다.
'잠시라도 쉬었다가 나왔으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텐데. 어쩌면 화장실도 미리 다녀올 수 있지 않았을까?'
또다시 아까 들었던 부정적인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가게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면세를 받겠다며, 사용하지도 않는 동전파스로 면세받을 수 있는 금액을 채워서 계산하고 있는 남편과 큰 아이를 발견... 삼만 원어치 동전 파스.. 그럴 거면 면세를 그냥 안 받는 게 나은데...
아아, 정말 몰아친다. 작고 큰 여러 가지 스트레스들이 숨 쉴 틈 없이 자잘하게도 몰아치네.
또 긍정을 끌올 한다. 깊은 우물에서 퍼올리듯이. 마음속에 또다시 두레박을 던진다. 퍼올려라, 긍정.. 긍정.
'에고, 됐다. 그래 뭐 여기까지 와서 그걸 따지냐... 돈을 공중에 날려 버린 것도 아니고.. 그깟 삼만 원... '
"동전파스, 쓰지 뭐! 양가 부모님께도 좀 드리고, 그러면 돼. 다 사두면 쓸데가 있어. 쓸데가."
그렇게 말하며 애써 웃어 보이는 내 왼쪽 손은 둘째의 작고 여린 손을 잡고 있었고,오른쪽 손에는 비닐봉지에 싸늘히 식어가는 호라이 만두가 들려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엉켜버린 마음과 모래주머니 같이 무거워진 두 발을 질질 끌고, 난바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말 좀처럼 쉽게 지나가는 법이 없다. 얼기설기 얽힌 길을 구글맵에 의지해 찾아가다 보니, 엇갈리기 일쑤였고, 지하도로 들어갔다가 다시 올라갔다가. 정말이지 헛웃음이 나올 지경으로 헤메이게 되었다. 이제 다리의 감각도 느껴지지 앉았다. 모두의 웃음기가 점점 사라져 갔다.
우메다로 돌아와서도 구글맵은 우리의 의지가 되어주지 못했다. 역시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고 지하도를 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우리의 대장님인 카지노 게임도 왔다 갔다, 우리도 같이 왔다 갔다.
드디어 사춘기 카지노 게임 말이 없어졌다. 입을 꾹 다문 그 아이는 갑자기 앞으로 혼자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춥고, 지치고 화가 난 카지노 게임는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졌고, 놀란 우리가 아무리 아이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낯선 해외에서 갑자기 눈앞에서 멀어져 가는 카지노 게임를 보면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맹랑하고 괘씸했다.
'저게 무슨 태도지..?'
소녀가 한 발 한 발 떼어가는 발걸음마다, 짜증과 신경질이 배어 있었다. 그 기분 나쁜 기운은 곧바로 내게 전염이 되었다. 그리고, 직진본능으로 길을 찾기만 하고 쉴틈을 주지 않은 카지노 게임에게로 이내 내 원망이 옮겨갔다. 나는 괜스레 남편한테 시비를 걸어 툴툴거렸다.
"그러게, 왜 애들 쉴 시간도 안 주고 그렇게 혼자서 길만 찾아서 들소처럼 직진을 한 거야!"
카지노 게임은 쩝,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이내 굳어진 표정으로 내 투정에 아무런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큰 아이의 발자취를 따라, 마음이 상해버린 우리 부부도, 엄마아빠의 다툼에 눈치가 보이고, 역시나 지친 둘째도 말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사춘기 카지노 게임는 보이지 않고,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소리만 들렸다.
피곤해서 화낼 힘도 남아있지 않아, 그대로 침대에 잠시 엎어져있었다. 물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욕실에서나오면 화를 낼까, 그게 무슨 태도냐고 엄하게 꾸짖을까, 아니면 왜 그랬냐고 물어볼까.'
카지노 게임 다 씻고 나왔다.
카지노 게임의 표정이 한껏 후련해 보였다.
"나, 씻으니까 기분이 훨씬 나아졌어. 엄마 미안해요. 말없이 나 혼자 와서. 너무 피곤했어요."
내가 물어볼 틈도 없이 말을 해주는 사춘기 소녀. 한 마디로 모든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네가 먼저 가버리니까, 엄마 아빠가 네 걱정을 했잖아. 아무리 화가 나도 다시는 그러지 말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으로는 남편이 데워 온 만두를 테이블에 펼치고 있었다. 한껏 힘을 주었던 미간도 이미 펴지고 있었다. 잠시 하루를 되짚어보니, 아. 정말 피곤해서 짜증이 날만도 한 하루였다.
다 같이 앉아서 만두를 한 입씩 맛보았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사춘기 소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만두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만두는 뭔 만두냐고 타박을 부리더니, 지가 제일 맛있게 먹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았다. 남편 딴에는 그래도 스치듯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해 주고 경로를 찾아본 것일 텐데, 돌아온 것은 타박이니 섭섭했겠다 싶었다.
"여보, 미안해. 내가 괜스레. 내 말을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데."
"아냐, 내가 너무 요령이 없었네."
고마웠다. 내가 건넨 그 말 한마디로 바로 마음의 안개를 걷어줘서.
그리고 이내 하루 종일 피곤했을 텐데도 같이 걸어준 아이들 모습이 떠올랐다. 고맙고 미안했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하루의 긴장이 풀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 같이 다리에 휴족시간을 붙였다. 이내 모두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둘째가 환하게 웃으면서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만두 정말 맛있어요. 또 사주세요!"
그렇게 만두와 함께 셋째 날 밤이 저물었다.
피곤한 만큼 정말 푹 잘 수 있었다. 아아, 오늘도 정말이지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그래도 역시나, 좋았다.
정말 좋았다.
교훈 : 모두의 니즈를 맞추는 계획을 미리 촘촘하게 세워두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