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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Feb 23. 2023

더 늦어도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을 발견하면 작은 힘이 생긴다

진양기맥은 덕유산에서 진주에 이르는 163km의 산길이다. 마라토너 산악회에서 이를 20킬로미터 정도씩 구간을 나누어서 한 달에 한번 등산한다.


첫 구간에 너무 힘들게 올라가는 분이 있었다. 그분의 닉네임은 산꾼이지만 거침없이 올라가는 선수들 사이에서 자꾸만 삼보일배를 했다.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후미 대표주자인 나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그날은 호남정맥 대장인 공깃밥님이 기다려줘서 완주했지만, 선두보다 두 시간쯤 늦게 도착했고 눈치가 보여서 다음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 늦었던 사람 있잖여. 이번에는 좀 빨라졌어. 한 달 동안 훈련했디야.”


나는 공모전 마감 때문에 두 번째 구간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희남이 삼촌이 말해줬다. 하지만 세 번째 구간 역시 산꾼님은 두 시간이 늦었다. 나와는 한 시간 차이. 그분이 올 때까지 나머지 회원과 기사님은 차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늦는 거 아니야?”

“밤이 돼서나 집에 도착하겠네.”


큰소리는 아니지만 소리 죽여 말하는 분이 있었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분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다.


나는 공깃밥 대장님에게 산꾼님이 한참 등산을 하지 않았지만 고향이 경남 산청이고, 고향인근 산을 밟아보고 싶어서 진양기맥에 참가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산꾼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회원에게 민폐인줄 알고, 몸도 벅차지만 완주하고 싶은 그분만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산맥 중 등뼈에 해당하는 산줄기가 백두대간, 여기서 갈라진 갈비뼈가 정맥, 정맥에서 뻗어 나온 기맥이 있다. 지역에 따라 정맥과 기맥은 각각 9개씩 카지노 게임데, 진양기맥은 9개 기맥 중 하나다.




지난 설 명절에 나는 대구에 가서 앞산에 올랐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빵과 물을 챙겨 부모님 집을 나왔다. 안지랑골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 30분, 그때부터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산은 같아도 고향에 있는 카지노 게임 오르면 기분이 다르다.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면 지난 일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부처님 오신 날 외가 식구들과 만나서 절에서 나눠준 비빔밥을 먹었던 안일사, 20대 여름밤 맥주캔을 홀짝이던 휴게소의 파라솔과 플라스틱 의자 옆을 지나갔다.


안지랑골주차장에서 1.5km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자 전망대가 나왔다. 앞산은 전망대에서 보는 도시 야경이 볼만하다. 앞산처럼 씩씩한 중년으로 우뚝 서고 보니 화려하지만 공허한 네온사인 불빛이 더 이상 부럽지 않았다. 다시 1km를 올라 정상에 도착. 대구 시민이었을 때는 한 번도 가지 않은 앞산 정상을 군산시민이 되고 두 번째 올랐다.

카지노 게임앞산 전망대에서 본 대구 야경

앞산에서 비슬산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는데 이걸 ‘앞비종주’라고 한다. 거리는 25km. 비슬산에 불심이 강한 엄마의 수행처이자 나도 함께 간 적이 있는 대견사가 있는데, 그곳까지 차가 아니라 카지노 게임 넘어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군산으로 돌아가야 하고 오후에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비슬산 가는 길에 있는 청룡산까지 갔다가 원점회귀해서 20킬로미터를 걸었다. 머지않은 시일 안에 앞비종주, 팔공산 종주를 하며 느긋하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을 가져보리라는 야심을 품고 내려왔다.





다시 진양기맥이다. 소룡산을 올라가면서 나 혼자 다음 구간을 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직전에 바랑산에서 회원들이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옆으로 빠지는 길을 내가 놓쳤나 하는 생각에 산악회 카페에 있는 산행지도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5년 된 나의 휴대폰은 기온이 떨어지면 자동취침에 들어가서 그럴 수도 없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심란한 마음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소룡산 정상에 전재산 회장님이 구세주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을 보는 순간 마음속 먹구름이 사라지고 쨍하고 해가 비췄다. 겨울에는 움직이지 않으면 땀이 식어서 한기가 드는데, 아니게 아니라 회장님이 게맛살을 주는데 게맛살이 춤을 추었다.


기맥길은 탐방로가 아니어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헷갈리는 지점에 먼저 간 사람이 달아놓은 카지노 게임을 보고 가다 보면 카지노 게임이 등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등산앱이 있지만 코스에서 500미터를 벗어나야 경고음이 울리기 때문에 잘못 간 걸 알아채고 다시 돌아오면 1km를 알바하는 거다. 1km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거리.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는 가파른 흙길을 오르다가 카지노 게임을 발견하면 작은 힘이 생긴다.

카지노 게임길을 알려주기 위해 달아 놓은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에 쓴 글도 다양한데 “무영객”, “항아”, “유목민”, “귀여운 악마” 같은 닉네임부터 “나는 살려고 걷는다”, “살았으니 다행이야” 하는 재미있는 문장도 있다. 회원들은 “귀여운 악마 요즘은 산에 안 타는 것 같아”하면서 마치 아는 사람처럼 말하기도 한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산길에서 카지노 게임로 자주 마주치다 보니 함께 산을 탄 건 같은 친근함이 생겨서가 아닐까.


오늘도 기적처럼 끝은 있었고 평소와 다르게 식당에서 뒤풀이를 했다. 진양카지노 게임은 신청자가 평균 13명밖에 되지 않아서 50,000원 회비를 걷으면 차량비(600,000)를 내면 남는 게 없다. 보통 차 앞에서 닭강정과 맥주로 간단히 먹는데 이번에는 오리주물럭을 먹었다.


“저 때문에 매번 카지노 게임서 죄송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산을 좀 탔는데 요즘 건전하지 않는 생활을 하다 보니 몸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제 고향이 경남 산청입니다. 저희 동네에 온 김에 대접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산꾼님이 말했다. 뒤풀이 비용을 산꾼님이 낸 거였다.


“더 늦어도 카지노 게임.”


언제 집에 가냐고 투덜대던 분, 속으로 구시렁거렸던 분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여기까지 혼자 힘으로 온 사람이 있을까. 산우가 기다려주고 낯 모르는 사람이 달아놓은 카지노 게임을 보고 왔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무엇보다 각자 마음속에 불가능할 것 같지만, 어떻게든 완주하고 싶은 산이 있고 그 산을 넘어왔거나 넘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일 거다.


산꾼님은 다섯 번째 구간도 참가했고, 오르막이 별로 없는 코스 덕분에 다수의 회원들과 도착시간을 30분 차이로 줄이는 기록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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