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
어려운 숙제를 좋아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편이라 기본을 스킵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사랑도 그런 것 같다. 또래에서 어른이나 연예인으로 확장되기보다는 반대 방향으로 축소됐다. 아니, 그보다는 원래 목표를 계속 추구하기 위해 내가 성덕이 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이상형 1호는 원가족인 아이돌 그룹에서 탈퇴했고, 나는 그를 따라나서기보다는 원가족에 남았으며 나의 이상형 2호는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결혼했는데 아직 마흔 살도 되지 않았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타고난 남자 복은 없을 것 같다.
이상형은 아니었으되, 현실 세계의 어른들조차 실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끌렸던' 남자 연예인들이 있었다. 초경을 하기는커녕, 초경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때부터 내가 반응했던(?) 남자 연예인의 타입은 굳이 말하자면 색기가 흐르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나이 차가 적은 사람이 나보다 10살 많았는데, 당시에는 이십 대 초반이었음에도 꽤나 아저씨 같은 타입이었다. 나중에 내가 이십 대가 되었을 때, 내가 아저씨들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다. 아저씨라서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좋아했던 타입이 약간 조숙한 스타일이었다. 또는 조숙할 필요가 없는, 예쁘게 늙은 오빠들이었다.
연예인을 좋아해 봐야 앞에 두고 볼 수 없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현실 세계의 남자사람 어른들과 종종 뜻이 통했다. 내 쪽에서 연심을 품어봐야 상대방에게는 내가 미성년자 정도가 아니라 어린이였다.
관련 에피소드를 들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성도착자라는 의심을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조혼이 자연스러웠던 중세시대에 나이차가 많이 나는 커플이 몽땅 그런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가, 남자사람 어른을 탐낼 만큼 포부가 컸을 뿐이다. 결과는 실연이다. 헤어짐이 아닌, 애초에 선택지 아님이 어떤 식으로든 드러났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은 대부분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이제 나는 오빠들과 약간 오빠 같은 남자사람친구에게 반하기 시작한다. 초경 직후, 졸업을 앞둔 오빠에게 고백편지를 줬고 방학 내내 편지를 주고받으며 데이트도 했다. 그 용기 때문인지 그 해에는 여학생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었다. 언젠가 본격적으로 회상하겠지만, 그 해에 이상형 1호가 데뷔했다.
오빠가 좋아하는 언니가 생겼다며 양다리를 걸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우리 사이는 끝났다. 나도 좋아하는 남사친 S가 생겼지만 그의 허세와 나의 허세가 콜라보를 해서, 우리는 썸을 타보기도 전에 공식적인 썸타는 커플(?)이 되었다. 게다가 내 주위에 여사친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모여서 연예인 얘기하느라 바빴고, 밤마다 편지로 각자의 짝사랑남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 대각선 뒤에 앉는, 친구 R의 짝인 S와는 시시한 대화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S를 보느라 사시(?)가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타고나기도 했지만, 그때는 필사적으로 대각선 뒤를 훔쳐봤다. 하필 내가 1등을 못했을 때 성적순으로 제비뽑기를 해서 짝을 정했던 선생님과 하필 그 타이밍에 나를 제끼고 1등을 해서 S를 먼저 뽑아버린 R을 남몰래 원망하면서.
특히 R이 내 친구였기 때문에 그들의 자리 바로 앞에 앉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나의 센터병과 학업성취도를 위해 나와 내 짝은 그들의 뒤가 아닌 앞에 앉았다. 내 자리에 여학생 열한 명이 모여서 도시락을 먹었다. 언젠가 본격적으로 회상하겠지만, 그 해에 도시락 반찬을 뺏기지 않기 위해 폭식을 하기 시작했고 10 킬로그램이나 살이 쪘다.
남사친 S의 친구이자, 다른 여사친 J가 짝사랑했던 다른 친구 K는 다음 해에 내 짝이 됐다. 이미 픽션으로 박제한 이야기를 굳이 논픽션으로 또 하고 있다. 이번에도 온 우주가 방해를 했다. 새로운 반에는 원래 친했던 여사친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새로 사귄 친구가 있긴 했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 자유로운 타입이라 둘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그렇지 않았다. 그녀 외에도 꽤 쿨한 여사친들과 느슨하게 지냈다.
그래서오히려나를구속한(?) 친구들이죄다남사친들이었다. 이무리에K는속하지않았다. 카지노 쿠폰애들이무리를형성한것도, 그무리에나는속하고정작내가진심으로좋아했던K는속하지않았다는것도 특이하지만 속상한일이었다. 자세한이야기는사생활보호차원에서생략하겠다. 나는멋지게고백하는방법을연구하는동안정작고백을했어야했던친구를놓치고다른아이들의고백을받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고백, 그것도 '사귀자!'가 아니라 그냥 '좋아해!'만 포함된 편지는 응답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 자체는 끊임없이 응답하고 있다. 심지어 드라마도 있지 않나.
나 역시 '사귀자!' 또는 '사귈래?'가 포함된 고백을 끝끝내 하지 못했다. 대신 이런 말을 해주는 오빠나 동생들을 만났다. 애정표현을 하다가 걸려서(?) 멋지게 고백할 기회를 놓치고 상대방의 그물에 나도 모르게(?) 낚였다. 갓 성인이 된 20대 초반에는 또래인 남자들에게만 집중했던 편이다. 어르신(?)들과의 이상한 기류는 어차피 금방 사라질 종류의 그런 것들이니 얘깃거리도 안 된다.
대략 슈퍼 인싸였다고 요약하지만 당시에는 가뜩이나 수줍음이 많은 범생이들, 특히 동기 남사친들이 과감하게 고백하기엔 내가 너무 날아다녔다. 게다가 꽤 날아다니는 오빠들을 몰래몰래 좋아하느라 바빴다. 졸업 전, 처음으로 알바를 했고 마음에 드는 학교 밖 오빠를 알게 됐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대신 그 오빠의 친구 D가 내게 번호를 주고 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D에게 연락을 했고 굳이 그의 친구를 캐지 않았다. 서로에게 전혀 충실하지 않은 버전(?)으로 만나다가 흐지부지 됐다.
그는 헤어지자는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시작도 끝도 분명하지 않은 사랑에 익숙해져 갔다. 알아서 먼저 사귀자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사귀자는 말을 연습할 기회도 없었다. 그다음에는 사귀자는 말보다 행동이 빠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도 꽤 행동이 빠르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면 서로의 행동반경이 겹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특히 한참 관심을 주고받는 사건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는....
(그렇다. 이 시기에 춤바람이 났거든.)
불쾌한(?) 신체접촉(?)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불쾌할 수도 불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 있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런데 그 상대가 나와 충분히 친하거나 썸을 타고 있는 게 아닐 때는....
혹시 오해할까 봐 부연설명을 하자면, 꼭 춤을 추거나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1. 추파를 보내거나, 2. 귀엽다고 헤드락을 건다거나, 3. 나는 왜 안 되냐고 따지는, 남자사람동료들이 있었다. 다만 내가 회사 자체를 많이(?)는 다녔어도 오래는 안 다녔기 때문에 사례가 충분하지 않다.
내가 그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되는데 그건 아주아주 기나긴 싸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 그냥 상황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다른 여성들이 상담이나 제보를 하면 최선을 다해 응답하지만 내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이 아닌 경우도 않았다.
어쨌든 벌떼(?)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나름대로 터득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고백이나 애정표현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이루어질 가망이 사라질 무렵,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엘레나 페란테가 이런 심리를 파헤친 적이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굳이 거절할 사람이면 같이 커피를 마시거나 놀지 않지 않았을까....
특별히 (오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망이 점점 없어지길래 그 대신 만만하고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와 이루어질 가망은 1.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고, 2. 리부트가 되지도 않았고, 3. 어떤 일정한 수치(?)로 고정되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그냥....
나의 히스클리프라고 하자. 만날 수 없지만 사라지지는 않는 유령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방해할 정도로 나를 사로잡은 건 아니다. 이미 그의 존재는 친오빠나 먼 친척과 같은 작고 확고하고 우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혹시 당신과 내가 반려자가 된다고 해도 유령이나 먼 친척을 질투할 필요는 없다. 이건 분명하다.
그를 사랑하는 동안 나는 나의 보잘것없음에 많이 힘들었다. 그는 나를 모차르트(어디까지나 비유적으로)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모차르트보다는 차라리 에미넴(역시 비유적으로)이었다.
근데 에미넴이 누구지?
나의 마술적 사실주의(같은 허풍)에 많은 사람이 낚였다. 그에 더해 나를 과대평가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그에 못 미칠 것 같은 예감이 나를 점점 더 불안하게 했다. 그는 내게 인정욕구와 불안장애를 동시에 주었고....
사랑을 줬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모차르트가 아니면 실망시키게 될까 봐 모차르트인 척하느라 정작 애정표현을 했어야 할 타이밍을 놓쳤다.
앞으로도 평생 '사귀는' 사이가 되지 못할 게 뻔했다고 해도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해봤어야 했다. 꼭 그 말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말을.
인정욕구가 과한 나머지 인정을 잃느니 사랑을 포기했다. 더 이상 모차르트가 아니게 되었을 때...
이전에 포기했던 사랑이 역풍을 맞게 된다. 어차피 모차르트는 아닌데 여친이라도 될 걸 그랬어.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잊히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이 마냥 어려워졌다.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했던 사람도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사랑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끌려오게 하는 능력이 생겼다. 어쩌다 보니 (연습을 많이 해서) 그렇게 됐다.
나는 인정욕구를 전제로 해야 온전히 사랑받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그 사람이 집중하는 '능력'과 그 사람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외모'로 인정을 받지 않으면 '사랑한다'는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들은 지는 엄청 오래됐지만....
현재 시점에서 마지막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외모와 모든 능력을 사랑했기 때문에 완벽했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 자체가 내 이상형이었다.
그런데도 함께 할 수 없는 거라면, 그만큼 높은 장벽이 있는 것이다. 세월이 필요한 문제기도 하다.
문제는 그 세월이 많이 필요하다. 그 세월이...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려야 하는 세월의 삼분의 일이 지나갔고, 그러는 동안 감정이 희석됐다. 그렇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기간의 형기를 받고 수감된 상태라면 그냥 기다리겠는데...
내게도 새로운 사랑이 오지 않을까?
굳이 사랑을 찾아 떠나진 않았지만 점점 반로맨스주의자가 되는 것 같았다. 다시 연예인, 보다 정확하게는 외국 배우들을 좋아해 본다.
쉬는 시간(?)에는 캘리포니아 해변의 통유리창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는 나와 어떤 오빠를 상상하는 취미가 생겼다. 그 오빠들 중에는 확고부동할지는 모르겠지만 비혼을 선언한 사람도 있고(일과 결혼한 케이스) 이미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는 사람도 있다. 남몰래 미워해야 할 여자가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 질투를 품고 어떻게 살아가나.
뒷목 잡을 일이지만 이 나이에도 오빠가 더 좋다. 대신 그 오빠들은 반드시 '뱀파이어'야 한다. 나도 조숙해 봤고, 조숙한 사람들을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래도 내 카지노 쿠폰형은 '30대처럼 보이는 잘생긴 오빠'인 것 같다. 실제로는 오빠였으면 좋겠다.
본인이 오빠임을 즐기는 카지노 쿠폰은 말고.
그런 카지노 쿠폰은 말싸움에서 져서 나가떨어지는 게 느린 화면으로 상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