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에게 주어진 계절 속에
느리게 가는 시계
한국에 막 ‘한달살이’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한 달을 사는 걸 보니 난 세 달은 살아야겠네’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어느 날, 한 항공사가 할인행사를 시작했고, 별 근거도 없이 계산해둔 ‘세달’에 맞춰서 덜컥 비행기표를 구매하면서 몇 년 동안 마음에만 고이 품고 있었던 ‘치앙마이 세달살이’의 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
이전에는 나름 ‘난 바쁘게 돌아다니는 건 싫으니까 좀 길게 다녀와야지’ 하면서 보통은 열흘, 길면 한 달 정도의 여행을 하곤 했었는데, 치앙마이에서 세 달의 현지생활을 하면서 돌아보니, 예전에 내가 했던 여행들은 여전히 ‘장기’의 느긋함과는 거리가 먼 ‘바쁘디 바쁜’ 여행이었던 것 같다.
한 달 정도의 기간은 아무리 길다 해도 ‘끝’이 눈앞에 훤히 보이기 때문일까? 떠나기 전엔 늘 ‘한 달이면 시간은 넉넉하니까 느긋하게 동네산책도 하고 햇볕 아래서 광합성도 하고 여유롭게 쉬다 와야지’ 카지노 쿠폰 생각으로 여행을 계획하곤,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엑셀에 미리 빽빽하게 작성해둔 목록을 보면서 ‘한 달이나 머무는데 이 정도는 다 하고 가야지!’하면서 매일매일 운동화가 닳도록 바쁘게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어쩌면 그 시절은, 느릿느릿 걸으며 천천히 세상을 관조카지노 쿠폰 것보다는 바삐 뛰어다니며 새로운 것들과 매일 치열하게 부딪쳐보는 일이 더 중요한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나이 앞자리가 또 한 번 바뀌고, 난생처음으로 혼자서 세 달이나 되는 긴 여행을 떠나오고 나니, 그새 내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낯선 공간에 홀로 뚝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나와 만나게 된 것인지, 이제야 내 시계가 내가 원했던 만큼의 속도로 느리게 돌아가는 것 같다.
‘이 여행은 곧 끝날 것’이라는 압박감에서 이제야 진정으로 해방된 걸까? 치앙마이 세달살이가 중반에 접어든 뒤로는 ‘떠나기 전에 여긴 꼭 가야지’하고 스스로 지운 의무감에서도 한 발자국 벗어나, 아침에 집을 나서면 걸음이 그저 유유자적 그날그날 마음이 가는 동네식당들로 향한다.
오늘 걸음한 곳에 내일 또 가는 이유
가벼운 발걸음으로 큰 고민하지 않고 어느 날이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단골식당이 있다는 것만으로, 일상엔 큰 안정감이 생긴다.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그 따스한 안정감엔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에서 느끼는 익숙한 관성과는 또 다른 포근함이 있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훌쩍 여행을 떠나갔지만, 결국엔 그 낯선 땅에서 ‘단골식당’, ‘단골카페’, ‘단골슈퍼’ 따위를 잔뜩 만들면서 행복해하고 있으니, 인간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카지노 쿠폰 건 결국 내일에도 변함없이 보장될, 안전하고도 안정적인 긍정의 감각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치앙마이는 ‘미슐랭투어’를 하기에도 제법 괜찮은 도시로 잘 알려져 있는데 –대도시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카지노 쿠폰, 예약경쟁도 대도시만큼 치열하지 않기 때문-여행을 떠나오기 전엔 ‘격주에 한 번씩 금요일엔 잘 차려입고 고급식당엘 가야지, 테마는 프렌치!’ 카지노 쿠폰 야무지게 계획하곤 옷가지도 잔뜩 챙겨왔건만, 그 옷들은 세달살이가 중반을 훌쩍 지난 지금까지 여행가방 밑바닥에서 쿨쿨 잠만 자고 있다.
소박한 일상의 음식들엔 그것들만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값비싼 다이닝에도 그에 걸맞은 아름다움이 있어, 무엇이 더 나은지 비교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지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이 작은 도시를 두 발로 뚜벅뚜벅 거닐수록,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있는 소소한 것들이 훨씬 더 반짝여 보인다.
카지노 쿠폰울 땐 더 뜨겁게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이 오픈키친에서 요리해주는 단골식당에 왔다. 태국은 날씨 특성상 주방이 뻥 뚫려있는 곳들이 많아서 요리카지노 쿠폰 모습을 구경하길 좋아카지노 쿠폰 나 같은 사람들에겐 참 재미있는 여행지다.
오늘은 이번 치앙마이여행에서 새롭게 ‘내 영혼의 태국음식’으로 등극한 ‘랏나’를 주문했다. 넓적한 쌀국수를 해산물과 함께 겉면이 갈색이 되도록 화끈하게 볶아낸 후에 전분을 섞은 걸쭉한 국물을 부어서 주는 요리인데, 중국요리 중에 ‘해물누룽지’와 맛이 비슷하다.
국물도 맛있지만, ‘랏나’의 진짜 매력은 속에 숨겨져 있는 면! 쫀득쫀득하게 불린 넓적한 쌀국수에 불향을 살짝 입혀서 노릇노릇하게 볶아내서 걸쭉한 국물과도 아주 잘 어우러진다.
어릴 때는 뜨거운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먹어서 몸을 보한다는 개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후로 수십 번의 여름을 보내고, 일년 내내 태양이 위엄을 뽐내는 낯선 나라에 와서, 땡볕 아래 활짝 열린 주방에서 치이익- 불길 치솟는 소리를 내며 신명나게 재료들을 지지고 볶는 사장님의 요리솜씨를 구경하고 있자니, 비로소 ‘이열치열’이 무엇인지 깨달아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일 년 내내 축축한 날씨가 이어지는 북유럽에서는 겨울에도 차가운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먹는 ‘이한치한’에 익숙하지 않은가? 주어진 계절을 가장 그 계절답게 보내는 방법은 그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순응’이었던 것 같다. 냉장고나 에어컨이 발명된 역사가 불과 백 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한 일. 한국사람들이 겨울이 되면 으레 뜨끈뜨끈한 음식들을 찾는 건, 언뜻 보면 그 순응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난 일 같지만, 그것 역시도 그 해의 여름이 선사했던 뜨거운 열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테니, 인간이 계절을 극복해내는 힘은 결국 그 땅에 주어진 계절 속에 있나 보다.
뜨거운 여름날, 불꽃 위에서 뜨겁게 끓어오른 음식을 한 그릇 가득 해치우고 나니, 땅 밑에서 부글부글 끓던 용암이 마침내 시원하게 터져 나온 것처럼 무언가 해갈된 느낌이다.
뿌듯한 걸음으로 식당을 나오자마자 마주한 건, 끄트머리에 한낮의 태양으로 연지곤지를 찍은 듯한 푸르른 잎사귀들. 식물들이 화려한 색을 지닌 건 천적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병법이라는데, 이 식물은 무슨 연유로 잎사귀 끝을 붉게 물들였을까?
폭염을 삼켜낸 맛
‘이열치열’하면 음식의 온도 말고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땀이 삐질삐질 나고 혀가 얼얼해지는 ‘매운맛’이다.
태국사람들도 한국사람들 못지않게 매운 맛을 좋아카지노 쿠폰데, 자그마한 태국고추가 선사카지노 쿠폰 매콤함은 한국청양고추와는 또 다르다. 한국식 매운맛이 칼칼하거나 얼큰하다면,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태국고추가 선사카지노 쿠폰 매운맛은 통각을 자극카지노 쿠폰 맛에 좀 더 가깝달까?
‘불닭볶음면’의 등장 이후 전반적으로 한국음식의 맵기가 상승한 덕분인지, 이젠 다른 문화권에서 맵다고 하는 음식들은 웬만해서는 별로 맵게 느껴지지 않게 된 것 같지만, 치앙마이와 빠이에서 세달살이를 하면서 지역식당들을 두루 돌아다니다 보니 ‘어서와, 이게 진정한 태국식 매운맛이야!’라고 외치는 화끈한 음식들과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아직 태양이 기세등등한 시간, 구글지도에 현지인들이 남긴 리뷰를 보고 동네어귀의 작은 식당을 찾았다. 아무래도 내 단골식당이 될 집들의 법칙인지, 이 집도 주방이 뻥 뚫려있어 요리하는 모습을 훤히 지켜볼 수 있었다. 실은 파아란 벽에 걸린 노오란 메뉴판에서 쌀국수를 넣은 똠얌수프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래, 오랜만에 똠얌을 한 번 먹어줘야지!’ 싶어 반가웠을 뿐, 이 아담한 주방에서 요리한 음식이 태국식 매운맛의 지평을 내가 그간 알고 있던 곳에서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려줄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똠얌누들을 주문하고 길가에 오붓하게 마련된 좌석에 앉으니, 마주보고 있는 주방에서 곧 화끈하게 연기가 피어오른다. 바짝 말린 태국식 고추를 볶아서 기름을 내는 모양인데, 매운 냄새가 풍겨오자마자 반사적으로 기침이 터져 나와서 ‘어? 이 집 똠얌 제대로 맵겠는데?’ 카지노 쿠폰 확신에 찬 기대감이 차올랐다.
똠얌은 한국에서 태국식당을 찾으면 즐겨먹는 메뉴인데, 대부분 ‘맵다’고 표기되어있어도 그간은 ‘한국인에게 이 정도쯤이야’ 하는 수준의 맵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 방콕여행에서 똠얌소스를 사서 직접 요리해보았더니, 소스를 넣은 물이 팔팔 끓는 동안 연신 기침이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매웠다. 이 매운맛을 중화하기 위해 똠얌소스에 코코넛을 섞어서 요리하거나 하는 등, 태국에서도 지역별로 ‘똠얌수프’를 요리하는 방법이 가지각색인 것 같은데, 여태까지 내가 구입했던 똠얌소스와 비슷한 매운맛이 나는 똠얌은 방콕의 국수집에서 먹었던 똠얌비빔국수가 유일했었다.
그런데, ‘똠얌수프는 그렇게까지 맵게는 안 끓이나? 내가 산 소스만큼 화끈하게 매운 똠얌은 어딜 가면 먹을 수 있지?’하고 궁금하던 차에, 치앙마이에서 마침내 그 매운맛을 만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국물색깔에 아까 화끈하게 타오른 매운 고추의 빛깔이 진하게 남아있다. 갓 나온 그릇에서 모락모락 맵싸하게 피어오르는 냄새에 기침이 또 터졌다. 국물부터 한 모금 맛을 보니, 역시나 예상했던 딱 그대로! 땀이 쭉 흐를 정도로 매운맛이다!
매콤한 국물에 오징어, 숙주, 해산물완자, 얇은 쌀국수.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마른 고추를 아주 화끈하게 태우듯이 기름을 내서 약간 매캐한 느낌이 있는지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반대로 취향에 맞는다면 아주 좋아할 개성 강한 매운맛! 쏨땀이나 팟타이는 깔끔하게 요리한 쪽이 더 마음에 들지만, 이왕 매운 똠얌을 먹을 거라면, 이렇게 강렬하게 불타는 맛이 제격인 것 같다. 가끔 한 번씩 꼭 생각날 것 같은, 카지노 쿠폰 여름의 태양을 닮은 폭염적인 매운맛이었다!
다 먹고 난 소감은요…
너, 내 단골식당이 되어라...!!!
한낮을 남김없이 불태운 뒤엔,
얼큰한 똠얌국수 한 그릇 해치우고 나니 사우나라도 하고 나온 것처럼 온몸이 땀에 푹 젖었다. 태국날씨는 그리 습하지 않기 때문인지 식당을 나와 걷다 보니 금세 뽀송하게 말라서 개운해졌다. 카지노 쿠폰 여름의 한낮을 강렬한 매운맛으로 불태웠으니, 후식은 달콤하면 좋겠다. 생각하자마자 마법처럼 눈앞에 도너츠가게가 나타났다.
무려 쌀로 만든 도너츠! 게다가 비건이다!
우유와 밀가루를 먹지 못카지노 쿠폰 내겐 구원과도 같은 디저트다. 앞서 무얼 먹었건 아묻따 구입했을 테지만, 마침 얼큰한 똠얌국수를 먹은 덕분에 달콤한 설탕소스가 글레이즈 된 도넛이 더욱 반갑다.
좋았어, 너도 내 단골이 되어라...!!!
도너츠 한 봉지를 들고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거리를 걸었다. 단골식당과 단골도너츠가게를 야무지게 수집카지노 쿠폰, 이번엔 단골카지노 쿠폰 싶은 동네슈퍼가 나타나서,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간식거리와 가지, 오이 같은 늘 먹는 야채를 샀다. 길에서 무심코 마주치는 슈퍼마켓 풍경들을 보면, 태국사람들은 성격이 참 깔끔카지노 쿠폰 손끝도 야무진 것 같다.
숙소 근처 카페에서 일을 좀 하다 보니 어느덧 야식 먹기 딱 좋은 시간! 서둘러 귀가한 뒤 종이봉투를 열어보니 낮에 산 도너츠가 아직도 말랑말랑하다. 쌀로 만든 도우는 담백카지노 쿠폰 쫄깃쫄깃한데, 위에 악마의 달콤함으로 글레이즈를 해서, 머리를 한참 쓰고 난 뒤에 먹으니 머릿속에 먼지처럼 지저분하게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단번에 확 날아갔다.
잉여의 성찰
인간이 불을 발견한 뒤, 그 전까지는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만을 겨우 섭취하다가 불에 익힌 꿀맛의 고칼로리 음식들을 몸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먹어치우게 되면서 남는 잉여의 에너지가 두뇌로 가서 지금의 문명이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데.
바쁜 도시의 생활과 멀어져 본연의 자연스러움과 가까워질수록 인간이 온힘을 다해 이룩해온 문명과 그 문명을 부추겨온 온갖 잉여의 욕망들에 대해 자문카지노 쿠폰 회의하게 되지만. 이미 우리는 생존의 단계를 넘어서서 스스로를 인간이라 정의카지노 쿠폰 인간다움에 대하여 역사 내내 성찰해왔기에. 이 모든 것에 불을 붙인 ‘잉여의
칼로리’ 역시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나 보다.
육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루 세 끼를 두둑히 먹은 뒤 깊은밤이 되어 급작스레 일어난 해일처럼 와장창 쓸어넣은 지나치게 달콤한 도넛은 오히려 신체의 건강을 위협카지노 쿠폰 잉여의 쓸모없는 연료인지도 모르겠으나. 영혼이 인간의 형상으로 살 찌워지는 건 어쩌면 바로 그 순간부터일 터.
고요한 밤 한가운데 오도카니 앉아 두둑해진 마음으로 지나간 오늘 하루와 다가올 내일을 성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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