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따라 세계여행, 호주 워킹 홀리데이 간 동생이 쓴 우리 남매 이야기
2년 전 세계여행 중 배낭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파키스탄 훈자 마을에서였다. 파키스탄은다른 여행지보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오기 쉬운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파키스탄 훈자 마을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대부분 장기 여행자이거나 이미 장기 여행을 여러 번 다녀온 베테랑 여행자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소에서 우연히 만난 여러 한국인 여행자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여행과 삶', '장기 여행 후의 삶'등 여행 중인 우리 모두가 고민하며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나보다 세계여행을 먼저 다녀온 친오빠의 이야기를 했다.
"친오빠는 나보다 2년 전에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그다음에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다시 세계여행을 했어. 그런데 갑자기 대학교에서 한번 더 휴학하면 퇴학 처리된다면서 경고장이 날아온 거야. 그때 오빠는 여행을 더 하고 싶었는데 졸업까지 2학기가 남아있었거든. 엄청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들어갔어. 그리고 심적으로 엄청 힘들어해. 단지 장기여행의 후유증이 아니라 자신의 뜻에 의해 여행의 마무리를 짓지 않아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즘 난그런 오빠를 보면 나는 벌써부터 이 장기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삶이 겁나기도 해.."
나의 이야기를 듣던 동갑내기 한 친구는 무척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슬기야. 그러니까 너보다 친오빠가 먼저 세계 여행하신 거라고?
그러면 남매가 둘 다 세계여행을 한 거네?"
"응. 오빠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2개월 이따가 내가 바로 출국했어. 특이하지?"라며 나는 민망한 듯 대답했다.
그동안 우리 남매가 세계 여행을 가기로 결심하고 그 과정을봤던 주변 사람들 80% 이상은 격려보다는 '걱정'을 앞세워서 했다. 나를, 오빠를 생각해서 걱정해 주는 마음은 이해가지만 이렇게 큰 결정을 내렸을 때는 일단 '응원'을 받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우리 부모님을 걱정하며"한 명이면 충분하지. 두 명 다 그러면 부모님은 어떡하고.. 너라도 자리 잡아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무조건적인 응원을 바라지는 않지만 무조건적인 걱정을 가장해자기 생각만을 이야기하는 것은자기 의견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을 때마다 나와 오빠는 오히려 즐기기도 했다. 결국 그 말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니까.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무료 카지노 게임는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친구의 놀란 반응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왠지 주변에서 익히 들어온 걱정 어린 이야기를 들을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의 대답을 듣고 한번 더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와... 대단하다.. 뭐 이렇게 남매가 멋있냐.."
'응? 무료 카지노 게임 남매가 멋있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나는 놀랐다. 우리 남매를 보고 이렇게 진심으로'멋있다..'라고 감탄한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우리 남매를 떠올려보았다. 우리 남매는 늘 스스로 '멋지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는 아직이야. 모자라'라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멋있다'라는 말이 낯설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은 좋았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오빠와 내가 자주 들었던 말은 '멋지다'라는 말보다는'특이하다'라는 말이었다.
오빠랑 나는 세 살 차이가 나는, 둘 다 뛰어난 거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못 하는 것도 별로 없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남매이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던 한 마디가 있다.
"너네 오빠랑 너 진짜특이한 것 같아.이렇게 사이좋은 남매는 처음 봐. 오빠랑 어떻게 저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지?"
나는 어렸을 때 모든 남매, 형제, 자매가 우리 같이 대화도 많이 나누고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을 보니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점점 오빠나 언니, 형, 동생과 사이가 멀어져 갔다. 특히 성별이 다른 경우는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더욱 대화도 잘 나누지 않고, 한 마디로 어색해 보였다. 그런데 다들 그게 진짜 '현실 남매'라고 했다. 우리 남매가 특이한 거라고.
그게 특이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특이한 남매'이긴 했다. 이사를 가기 전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오빠랑 나는 공부방을 같이 썼었다.책상에 앉아 둘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주구장창 떠들어댔다.나는 학교에서 혹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고민이 있으면 오빠에게 털어놨다. 만약에 그때 오빠의 반응이 "그래서 뭐. 네가 알아서 해야지." 이랬다면 내 성격에 분명 상처받고 다시는 내 이야기를 하지않았을 거다. 그런데 오빠는 그때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고민에 대한 답도 잘해주었다. 나도 오빠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최선을 다 해 공감하려 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도 '말'을 잘 들어주고, '말'을 잘하는 우리 남매는 그때부터 서로의 재능을 잘 알았고, 그 재능을 그때 더 발전시켰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20대에 접어들어서도 우리 남매 사이는늘 맑았지만 개개인의 인생사를 보면 구름이 잔뜩 끼거나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스무 살 이후의 서른이 넘은 오빠의 삶의 그래프와 내 인생 그래프를 그리면 소름 돋는 평행이론이 그려진다. 지금까지 우리 인생에서 공통되는 키워드 몇 개만 보자면'재수, 실패, 콤플렉스, 자책, 꿈,세계여행, 호주 워킹홀리데이, 방황, 노력, 극복'등이 있다. 아마 우리 남매가 더 가까워지고 깊은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 건 비슷한 도전의 과정과 잔인하게도 비슷한 도전의 결말이 한몫한다. 그래서였을까. 서로가 힘들어할 때 그 누구보다 그 감정을 잘 이해했고 공감했다.
특히 '세계여행과 워킹 홀리데이'는 우리 남매한테 단순히 '외국 여행과 생활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는 일'은 아니었다.'도전'이었고, '생존'이었고, '과정'이었고, '극복'이었다.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간다는 '세계여행', '워킹 홀리데이'라고 하지만, 가봤던 사람들 혹은 정말 가려고 진지하게 고민했던사람들은 안다. 지겹지만 익숙한 이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선택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보다 먼저 호주 워홀을 했던 오빠가 내게 워홀을 꼭 가라며 강력 추천을 했고, 나는 세계여행 도중 통장에 마이너스를 찍고 어쩔 수 없이호주로 가게 된다. 그때 인종차별, 임금 문제, 성희롱 등 별에 별 일을 겪으면서 나는 오빠에게 전화해 원망 섞인 목소리로 물어봤다.
"이렇게 힘든데 나보고 왜 호주 워홀 하라고 한 거야?"
그때 오빠가 말했다.
"너 알잖아. 무료 카지노 게임가 어렸을 때부터 조금 힘들고 귀찮을 것 같으면 요리조리 피해왔잖아. 근데 지금 보면 그런 습관들이 쌓여서 무료 카지노 게임가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얻었고, 우린 그걸 바꾸고 싶잖아. 근데 워홀 가면 피할 수가 없어. 결국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싸우든 버티든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야 하거든. 그러면서 무료 카지노 게임가 그동안 고치고 싶었던 그런 습관 같은 것들이 더 잘 보이고 많이변할 거야. 너도 분명히 조금 지나고 나면 내가 왜 워홀 가라고 했는지 이해할 거야. 지금 힘든 거 조금만 버텨봐."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10개월이 된 요즘, 오빠가 그때 해줬던 말이 더욱 또렷하게 떠오른다. 돌아보면 그때 워홀을 할 때처럼 치열하게 독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얻고 돌아왔다.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용기,'나는 마음먹으면 언제가 해낸 다는 것과 그렇게 약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느꼈다.사실 그때 느낀 용기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워킹 홀리데이는 여행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오기와 끈기,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단지 워킹 홀리데이를 '돈', 영어'라는 목표를 뒀기보다 그 생활 속에서 매번 크고 작게 다가오는 장애물들을 피하지 않고 극복해 가는 그 '과정'에 의의를 뒀다. 누군가는 고작 1년 동안 돈도 잘 못 벌고 영어도 안 늘고, 개고생만 하다 오는 거라면 절대 안 간다고 할 수 있지만 나와 오빠는 이것 하나는 확신한다. 1년 동안 한국에서는 겪지 않을 경험과 그에 따른 색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것, 그 후 아주 조금은 더 단단해지는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둘이 언젠가 한 번은 외국에서 한 번은 만났겠지. 아니, 같이 여행을 일부분 했다거나 워홀을 같이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각자 약 2년 동안 세계여행과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이 남매는 단 한 번도 같이 외국을 나가본 적도, 심지어 둘 다 다른 나라라도 동시에 외국에 있던 적도 없다. 무슨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 나가면 한 명은 한국에 있게 된다.이런 비슷한 남매를 두신 부모님의 곁을 한 명은 지키라는 뜻일까.
그렇다. 지금 내가 한국에 있으니 오빠는 당연히 외국에 나가 있다. 오빠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파라과이에서 지내고 있다. 여전히 나는 답답하거나 어떤 문제로 고민이 될 때늘 그렇듯 오빠를 찾는다. 항상 오빠가 뾰족한 수를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오빠만큼 나를 잘 알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요즘도 가끔 끊어져가는 와이파이 위에서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 생각해 보면 무료 카지노 게임도 많이 바뀌었다. 늘 자책과 반성으로 끝났던 대화는 어느새 반성 뒤 서로 지금까지 잘해왔다는칭찬과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대화의 마침표를 찍는다.
현재 우리 남매는 어떤 '직업'과 같은명사적인 꿈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는 '어떻게 살고 싶다.'와 같은 동사의 꿈은 갖고 있다. 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 둘은 그 동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 작은 것들을 실천하고, 극복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료 카지노 게임가 했던도전과 그에 따른 결과가 비슷하듯 이제는 좋은 과정과 그에 따른 좋은 결과가 무료 카지노 게임 둘에게 함께 찾아왔으면 좋겠다.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는 믿는다. 무료 카지노 게임 내면에 있는 깊은 긍정적인 희망의 뿌리가 결국은 무료 카지노 게임를 버티게 해 줄 것이고, 무료 카지노 게임는 결국 꿈꾸는 대로 그렇게 움직이는 삶을살 것이라고.
돌아보니 2년 전그 친구가 무료 카지노 게임 남매에게 했던 말,"와... 대단하다.. 뭐 이렇게 남매가 멋있냐.."는 말에 어렵지 않게 고개가 끄덕여진다.우리 남매가 멋진 이유는 대단한 커리어가 있지 않아도, 어느 분야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하다. 쓰디쓴 실패와 자꾸만 나타나는 장애물이 우리의 삶이라는 긴 과정 속에 찾아와도 피해 가지 않고 결국 그것마저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인생을 살 것이라는 것,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 무료 카지노 게임 남매는 충분히 멋지다.
지금까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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