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어요. 열다섯 살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족들과 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어요. 아빠가 운전하고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죠. 1박 2일 캠핑을 끝내고 돌아가던 길이었답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우가 내려 비상등을 켜고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희수가 잠꼬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어느 순간 잠들었는데요. 꿈속에서 엄청난 굉음이 나더니 차가 몇 바퀴나 굴렀어요. 깨어보니 병원이었죠. 꿈이 아니라 사고였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경찰 아저씨의 설명을 들었어요. 반대편에서 오던 5톤 트럭과 정면충돌해 아빠, 엄마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이야기였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거짓말하지 말라며 소리 질렀지만, 경찰 아저씨는 한숨만 쉬더라고요. 희수는? 사고 당시 차 밖으로 튕겨 나갔던 희수는 의식이 없었는데요. 희철이 회복해 보육원에 들어갈 때까지도 병원에 누워 있었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한 달에 한 번 정도 소아병동에 들러 희수를 지켜보다 돌아갔어요.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첫눈이 내린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죠. 급한 일이니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오래요. 의사 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말했어요.
“아무래도 희수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네? 괜찮아질 거라고 했잖아요. 선생님.”
“애써봤지만, 그렇게 됐어.”
“희수가 죽는다는 거예요? 네?”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울먹이는 희철의 손을 잡고 등을 토닥여 줬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이제 정말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울었어요. 겨우 울음을 그친 희철에게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아, 선생님이 할 말이 있는데….”
“네.”
“지금 이런 이야기 괴롭겠지만.”
“무슨?”
“부모님이 오래전에 가족 모두를 장기 기증 희망자로 등록하셨어.”
“장기 기증이요?”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은 희수의 장기를 아픈 아이들에게 기증해도 괜찮겠냐고 물었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펄쩍 뛰며 화를 냈어요. 의사 선생님은 희철을 데리고 소아병동을 돌며 아픈 아이들을 보여줬어요.
“다들 기증자가 나타나길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어.”
“…….”
“물론, 네가 동의해도 법원에 승인도 얻어야 하고 복잡하긴 해. 그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희수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픈 아이들을 보니 아빠, 엄마 그리고 희수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결국 희수는 소아병동에 있던 아이 중 세 명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고 세상을 떠났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성인이 되고부터 매년 그 소아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했어요. 힘들 때마다 희수를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어요.
오랜만에 봉사활동을 했어요. 인형탈을 쓰고 아이들과 놀았죠. 끝나고 병원 카페에 앉아 한숨 돌렸어요. 더치 커피를 마시며 창밖에 맑은 하늘을 보니 한 달 전 일이 떠올랐어요. 병원 앞 공원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던 그날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생각했어요. 한 번 더 그녀를 만난다면, 어떻게든 용기 내겠다고.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켰어요. 밀린 문자와 카톡이 들어오고, 부재중 전화의 흔적이 알림으로 왔죠. 뭐 역시나 그녀는 없어요. 하긴 휴대폰을 꺼놓고 연락을 기다리는 이상한 놈에게 연락할까, 싶긴 해요.
팔짱을 끼고 멍하니 창밖을 봤어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네요. 갑자기 경적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휠체어 탄 남자가 병원 앞 도로를 건너다 흰색 트럭에 치일 뻔했어요. 트럭 운전자가 내려 휠체어 탄 남자에게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어요. 뒤이어 어떤 여자가 달려와 그 운전자에게 머리를 숙였어요. 꽤 먼 거리인데도 여자가 눈에 들어오네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벌떡 일어나 병원 앞마당으로 달려 나갔어요. 막 주차하고 내리는 트럭 운전자에게 아까 그 사람들 어디로 갔냐고 물었더니 뒤뜰로 갔다고 해요. 병원 뒤뜰에서 그와 그녀를 만났어요. 그는 이상하게 말이 어눌했어요. 그녀는 놀란 표정이었죠. 그녀는 그를 병실에 데려다 놓고, 병원 카페로 왔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기다리는 동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하지만 그녀가 앞에 앉으니 아무 소용 없었어요. 머릿속이 하얗게 됐어요. 더치 커피만 홀짝이다 겨우 입을 열었죠.
“잘 지내셨어요?”
“신기하네요. 이렇게 또 보다니.”
“그러게요. 이 병원엔 언제 오셨어요?”
“일주일쯤 됐어요. 아빠, 수술 기다리고 있어요.”
“수술이요?”
“뇌혈관 수술이요.”
“아직 많이 편찮으신가 봐요.”
“네.”
“수술 잘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수술 잘해요.”
“제발 잘 됐으면 좋겠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어요.
“두 번째군요.”
“네?”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요?”
세아는 아빠를 간호하면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간병인에게 맡기는 건 어떠냐고 했지만, 세아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빠는 뇌경색 증상이 심해져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담당 의사는 합병증까지 있어 치료가 쉽지 않다고 했어요. 세아는 거의 병원에서만 지냈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세아는 주로 병원 카페에서 만났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이야기 나누는 정도였지만 그 시간만큼은 즐거웠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을 쟁반에 담아 테이블로 왔어요.
“오늘은 특별히 트러플 치즈 케이크를 준비했습니다. 손님.”
“와, 이거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손님, 제가 모르는 거 빼고 다 아는 사람입니다.”
세아는 포크로 케이크 모서리를 폭 찍었어요. 그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입으로 가져가며 나직이 말했어요.
“미안해요.”
“네? 뭐가요?”
“이렇게 병원에서만 보게 해서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케이크를 입에 넣고 맛을 음미했어요. 트러플의 향이 감도는 달콤한 치즈 케이크가 혀에서 기분 좋게 녹았어요. 희철도 세아의 입에 케이크를 가져다주며 말했어요.
“여긴 카페잖아요. 그리고 저도 어차피 봉사활동 때문에 오는데요. 뭘.”
“그래도.”
“그렇게 미안하면, 오늘 밤에 나들이 갈래요?”
“네? 어디로요?”
“지난번에 일출 제대로 못 봤죠?”
“안반데기까지요?”
“여기서 두세 시간이면 가요.”
“혹시 아빠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제가 잘 아는 간병인께 부탁드릴게요. 잠시만 봐달라고요.”
희철의 설득에 세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러기로 했어요. 간병인과 인사를 나눈 후 병원을 나왔죠.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안반데기로 출발했어요. 가는 동안 해가 기울면서 세상의 윤곽이 천천히 지워졌어요. 어둠에 잠긴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지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자 익숙한 이정표들이 보이네요.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 멍에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웠어요. 세아는 차에서 내려 숨을 한 번 크게 쉬었어요. 역시 공기부터 달라요. 온종일 병원 냄새를 맡으며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가, 맑은 공기를 마시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니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처럼 속이 뜨거워졌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차에서 꽤 큰 가방을 꺼내 어깨에 멨어요. 세아의 손을 잡고 전망대로 올라갔는데요. 하늘엔 이미 믿을 수 없을 만큼 별이 넘쳐흘렀고, 모든 게 은하수가 되어 멀리 지평선으로 떠내려가고 있었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평평하고 푹신한 자리를 찾아 원터치 텐트를 펼쳤어요. 그 안에 매트와 담요를 깔고 캠핑 랜턴도 켰죠. 두 사람은 텐트 안에 들어가 앉았어요. 희철이 작은 갈색 가방을 세아에게 내밀며 말했어요.
“짜잔!”
“이게 뭐예요?”
“열어봐요. 끝내주는 게 들어 있어요.”
세아가 가방을 여니 민트색 보온병과 컵라면 두 개가 나왔어요.
“컵라면이네요?”
“별 보면서 컵라면 먹어봤어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어 세아에게 건넸어요. 라면 냄새가 텐트 안을 가득 채웠어요. 라면이 익는 동안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방을 뒤적여 젓가락을 꺼내고, 유튜브 앱으로 음악을 켰어요. 세아가 물었어요.
“이렇게 라면 먹는 거 좋아해요?”
“어렸을 때 가족들이랑 캠핑만 하면 라면 먹었어요.”
“부모님이 캠핑하는 걸 좋아하셨나 봐요.”
“네. 좋아하셨죠.”
“가족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존 메이어의 그래비티를 들으며 라면을 먹었어요. 다 먹고 나니 찬 바람이 불어와 별들을 북쪽으로 몰고 갔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세아의 어깨에 덮어줬어요.
“지금은 아무도 없어요.”
“네?”
“어렸을 때 전부 교통사고로.”
“아….”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음악만 들었어요. 에드 시런의 퍼펙트가 끝날 때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커피믹스를 꺼내 종이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어요. 세아가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들고 조심스레 말했죠.
“힘들었겠네요.”
“그땐…, 외로웠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캠핑 랜턴과 음악을 껐어요. 사방이 어둠이에요. 어둠은 두려움을 데려왔어요. 우주에 홀로 놓여 겨우 숨만 쉬는 것 같았어요. 살아서 꿈틀거리는 별빛들은 허공을 가르는 바람에 실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있었어요. 이 외롭고 차가운 우주선에서 누군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손을 잡았어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 손의 주인이 조용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어요.
일주일 후, 온라인 카지노 게임과 세아는 병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봉사활동으로 지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표정을 살피며 세아가 물었죠.
“근데, 봉사활동은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예요?”
“동생 때문에요.”
“동생이 있었어요?”
“의식불명이었다가 떠났어요. 제가 열다섯 살 때. 이 병원에서.”
세아는 손에 들고 있던 머그잔을 내려놓았어요.
“네….”
“오래전 일이죠. 뭐.”
“저도 여기 소아 병동에 입원한 적 있는데.”
“세아 씨도요?”
“네. 어렸을 때 심장병을 앓았거든요.”
“심장병이요?”
“완치된 줄 알았는데 재발해서…, 이식받았어요. 여기서.”
“…….”
“운이 좋았죠.”
온라인 카지노 게임도 세아의 말에 머그잔을 내려놓았어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다음 한숨을 쉬었죠. 갑자기 귀에 심장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누군가 서서히 볼륨을 높이는 것처럼 점점 더 소리가 커졌어요.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죠. 세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았어요.
“괜찮아요?”
그때 세아에게 전화가 왔어요. 간호사가 급히 찾았어요. 아빠의 병실로 뛰어갔어요. 희철도 뒤따라갔죠. 먼저 달려온 의사가 아빠 옆에 붙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어쩔 줄 몰라 하는 세아를 병실에서 데리고 나왔어요. 그녀를 안고 등을 토닥여 줬어요. 괜찮을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병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다급했어요. 불길한 기계음이 들리고 소란스러움이 극에 달하더니 병실 전체가 바닷속 깊은 곳으로 침몰한 듯 고요해졌어요. 간호사가 나와서 그들을 불렀어요.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렸어요. 불과 몇 분 사이에 모든 게 끝나 버렸어요. 세아는 병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녀를 안고 다독였어요. 울음을 멈출 때까지.
장례식 이후, 온라인 카지노 게임 한동안 세아를 만날 수 없었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자만 받았죠. 온라인 카지노 게임 가족의 죽음이 얼마나 큰 충격인지 알기에 기다리기로 했어요. 한 달 후 드디어 연락이 왔어요. 만나기로 했어요. 근데, 왜 하필 여길까요? 배기구에 구멍 뚫은 차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는, 철없이 자란 부잣집 아이들이 외제 차를 몰고 오는, 끝없는 욕설과 담배 연기로 젊은 영혼을 탕진하는 번화가의 술집에서 세아를 기다렸어요. 세아가 카톡으로 보내준 주소는 틀림없이 여기였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비좁은 주차장에 겨우 주차하고 건물 2층으로 올라갔죠. 밤 11시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정신없는 와중에도 어떻게 빈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하필 화장실 옆자리네요. 락스 냄새에 현기증이 나요. 어떤 여자가 나타나 맞은편 자리에 앉았어요. 짧게 커트하고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 커다란 귀걸이와 목걸이, 입가에 피어싱, 한쪽 팔에 타투, 몸에 딱 붙는 가죽 바지, 번들거리는 가죽 재킷 차림의 여자였어요. 짙은 눈화장 때문에 낯설긴 했지만, 그녀는 세아였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어요.
“많이, 달라졌네요.”
“네. 뭐, 그렇게 됐어요.”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이해하지 마요.”
“괜찮은 거예요?”
세아는 건조한 얼굴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바라보다 말했어요.
“그만 헤어져요. 우리.”
헤어지자는 말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눈을 감았어요. 오랜 시간이 침묵이 흘렀어요. 서빙 직원이 버번위스키와 마른안주를 세팅하고 갔어요. 세아는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셨어요.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 모습을 바라만 보다 힘겹게 입을 열었어요.
“난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세아가 길게 한숨을 쉬었어요. 위스키를 한 잔 더 마신 후 고개를 흔들었어요.
“안 될 것 같아요.”
“…….”
“못 견딜 것 같아요.”
“뭘 못 견딘다는 거예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어요.
“그냥 좀, 헤어지면 안 돼요?”
“이유는 알아야죠. 저도.”
“죽을 때까지, 생각날 것 같다고요.”
세아는 갑자기 심장이 아팠어요. 쥐어짜듯 아파 견딜 수 없었어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술집 앞 도로에 서 있는 택시에 올라탔어요.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일단 출발해 주세요. 어디로든.”
택시는 번화가를 벗어나 강변도로를 달렸어요. 차창 밖으로 도로의 가로등 불빛이 스쳐 지나는 게 보였어요. 세아는 귀걸이, 목걸이, 피어싱 그리고 가발을 벗었어요.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내는데 자꾸 눈가가 번져 관뒀어요. 길게 숨을 내쉬고 창문을 여니 찬바람이 밀고 들어왔어요. 열이 나고 으슬으슬 추워졌어요. 머리 어딘가가 꽉 막힌 듯 아프고 어지러웠어요. 핸드백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어요. 아빠가 남긴 유언장 같은 그 편지를 갈가리 찢어 창밖으로 날렸어요. 그리곤 해열제를 꺼내 억지로 삼켰죠. 택시는 어느 낯선 동네의 지하도에서 세아를 내려줬어요. 걷기 시작했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 뒤늦게 술집을 빠져나왔어요. 사라진 세아를 찾아 주변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죠. 아렸던 마음 한구석이, 이제 썩어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주저앉았어요. 그냥 다 관두기로 했어요. 어떻게든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나밖에 모르는 비겁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마냥 걸었어요. 집이 어딜까요? 그딴 게 중요할 리 없죠. 길이 난 곳이고 이어만 진다면 끝없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걷고 또 걸어도, 집은 나오지 않았어요. 나왔다고 해도 몰랐을 거예요. 몇 시간을 걸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 보는 낯선 동네의 지하도에 서 있었어요. 택시가 다가와 앞에 섰어요. 아무 말 없이 탔어요. 택시 기사가 입을 뻐끔대는데 소리가 안 들려요.
그는 집에 돌아와, 텅 빈 거실 바닥에 누웠어요. 차갑네요. 차갑다는 게 느껴진다니 신기해요. 그 차가운 바닥이 점점 꺼지는 것 같더니 빙빙 돌아요. 회전하는 방 안에 담긴 존재로부터 또 다른 존재가 추출되어 나왔어요. 그는 무중력 상태인 듯 천장에 붙어 허둥대고 있어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미 더 말이 안 되는 일을 겪어선지 그저 그래요. 자기밖에 모르는 그 존재는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할 말이 뭐냐고 물었지만, 대답을 들을 순 없었어요. 여기까지예요.
다 식어버린 커피를 앞에 두고 창문 밖을 보니 밤이더라고요. 사진 액자로 가득 찬 거실 진열장에서 DSLR 카메라를 꺼내왔어요. 여기저기 흠집 난 카메라를 충전하고 전원을 켰답니다. 용케 살아있었네요. 그걸 둘러매고 차에 탔어요. 안반데기로 향했죠. 멍에 전망대의 하늘과 별과 은하수는 여전했어요. 그 아래 홀로 서서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하나씩 삭제하기 시작했어요. 삭제하고, 삭제하고, 삭제하다 보니 카메라에 저장된 제일 첫 번째 사진으로 돌아왔어요. 첫 번째 사진은 당연히 여기서 찍은 일출 사진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걸까요? 일출 사진 대신 새벽녘, 커피를 마시는 어떤 여자의 사진이 눈을 뜨겁게 해요. 투명하게 어른거리는 사진 속 여자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차가운 바람에 익숙한 향기가 실려 왔어요. 어둠 속에 실루엣이 다가왔어요. 삭제가, 삭제되지, 않았나 봐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