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존재하는 것들 (2)
상교는 카지노 쿠폰 엄마가 그렇게 되고, 한동안 택시 일을 관뒀다. 도저히 운전할 수 없었다. 피 흘리며 비틀거리는 카지노 쿠폰 엄마가 밤마다 꿈에 나왔다. 상교는 카지노 쿠폰 엄마를 향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카지노 쿠폰 엄마!”
“여보, 도와줘.”
“내가 갈게, 금방 갈게.”
“도와줘. 나 이상해.”
“조금만 기다려. 제발.”
몸을 움직이려고 발버둥 치다가 꿈에서 깼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오한이 났다. 이어서 열이 났다. 며칠을 계속 앓았다. 카지노 쿠폰의 전화를 받은 세아가 상교를 병원으로 옮겼다. 상교는 일주일 동안 입원했다가 겨우 퇴원할 수 있었다. 세아는 상교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오면서 말했다.
“오빠, 괜찮아?”
“그래. 이제 괜찮아.”
“힘든 건 알겠는데 카지노 쿠폰 생각도 해야지.”
“미안하다.”
“나한테 미안할 건 없는데 카지노 쿠폰 좀 챙겨. 아빠잖아.”
상교는 집으로 돌아와 청소부터 했다. 카지노 쿠폰 엄마의 흔적을 정리하고 미뤄뒀던 집안일도 처리했다. 한동안 쉬면서 운동도 하고 책도 읽었다. 지역 복지관에서 상담 센터와 연계해 운영하는 트라우마 치료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겨우 무감각해져 갈 때쯤 상교는 다시 병원 냄새를 맡아야 했다. 카지노 쿠폰가 요즘 들어 빈혈이 심해지더니 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점점 주기가 짧아졌다. 나중엔 거의 매일 토했다. 그는 카지노 쿠폰를 데리고 동네 병원으로 갔다. 검사 결과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사가 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종합 병원에서 받으라는 검사는 다 받았다. 상담을 위해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렸다. 의사를 만났다. 상교는 급한 마음에 다짜고짜 질문을 해댔다.
“어디가 아픈가요? 왜 자꾸 토하죠?”
“혈액암입니다.”
“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입니다.”
“백혈병이요?”
“항암 치료를 하면….”
암이라니? 상교는 비틀거리며 병원을 나왔다. 믿을 수 없었다. 대체 왜? 친구를 통해 다른 병원을 소개받았다. 한 번 더 검사했다. 결과는 같았다. 상교는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 카지노 쿠폰 엄마의 죽음도 모자라서 이제는 카지노 쿠폰까지 암이라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뭐 하나 이룬 것도, 제대로 누린 것도 없이 가족을 한순간에 잃게 생겼다. 신이 있다면 왜 이러냐고 따지고 싶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병원에 입원한 카지노 쿠폰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졌다. 항암 치료를 하고부터는 얼굴색이 창백해지고 눈동자도 흐려졌다. 머리카락까지 빠져 늘 모자를 써야 했다. 속에서 메스꺼움이 올라와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상교는 카지노 쿠폰가 좋아했던 초코 우유를 사 왔다.
“카지노 쿠폰야, 오늘은 이거 한 모금 마셔볼래?”
카지노 쿠폰는 고개를 저었다.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침대에 누워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이어폰에서는 세븐틴의 ‘울고 싶지 않아’가 흘러나왔다. 상교는 돌아누운 지수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병실을 나왔다.
상교는 택시 일을 다시 시작했다. 지수 엄마 보험금으로 치료비를 한동안 충당할 수 있겠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혈액암 환우 카페를 찾아 들어가 보니 무엇보다 오래 버틸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글이 많았다. 상교가 지수의 상태를 자세히 써서 올리니 여러 가지 조언과 응원 댓글도 달렸다. 그는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한동안 세아가 병원에서 카지노 쿠폰를 봐주기로 했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세아는 마침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세아는 말수가 적어진 카지노 쿠폰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카지노 쿠폰야, 고모가 진짜 재밌는 소설책 가져왔는데 읽어볼래?”
카지노 쿠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림 그리기는 어때? 영화 봐도 되고. 하고 싶은 거 없어?”
역시나 카지노 쿠폰는 고개만 저었다.
“음, 할 수 없네. 고모가 세븐틴 한정판 포토카드 사 왔는데. 이것도 그럼, 그냥 가져가야겠다. 누구 줘야 하나?”
“포토카드?”
카지노 쿠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세아는 카지노 쿠폰가 세븐틴이라면 죽고 못 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븐틴 공식 팬클럽에 가입해서 받은 멤버십 키트와 한정판 포토카드를 꺼냈다. 카지노 쿠폰의 눈이 커졌다. 포토카드를 보며 웃음 짓는 카지노 쿠폰에게 세아는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카지노 쿠폰는 자기 방에 있던 세븐틴 사진과 굿즈를 모조리 병원으로 가져와 달라고 했다. 세아는 카지노 쿠폰가 부탁한 대로 그것들을 전부 가져와 병실을 꾸몄다. 그 덕인지 카지노 쿠폰는 예전보다 조금 기운을 차렸고, 말도 곧잘 했다. 열심히 치료받았다. 보름 후 세아가 상교에게 전화했다.
“오빠, 통화 괜찮아?”
“어, 그래. 말해.”
“미안한데, 내일은 카지노 쿠폰 못 봐줄 것 같아.”
상교는 어쩔 수 없이 김 씨에게 뒤처리를 부탁하고 일을 하루 쉬었다. 오랜만에 상교와 시간을 갖게 된 카지노 쿠폰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상교는 양손으로 카지노 쿠폰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
“우리 딸, 많이 좋아졌네? 표정이 달라졌어.”
“정말?”
“그래, 조금만 더 치료하면 학교도 가겠는데?”
“나을 수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아빠 그럼, 다 나으면 별 보러 가도 돼?”
“…….”
“별 보러 가고 싶어.”
“별? 갑자기?”
“응. 보고 싶어.”
“그래, 다 나으면 꼭 가자. 아빠가 약속할게.”
카지노 쿠폰는 주머니에서 세븐틴 포토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근데 고모는?”
“아, 고모 오늘 볼 일 있어서. 내일 올 거야.”
“에이, 고모랑 세븐틴 신곡 뮤직비디오 보기로 했는데.”
“세븐틴?”
“응. 세븐틴. 설마, 아빠 몰라?”
상교는 병실에 붙어 있는 사진들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니. 저 친구들?”
“어허, 친구라니. 오빠들 들으면 기분 나빠해.”
카지노 쿠폰는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끝없이 꺼내놓았다. 물론 대부분은 세븐틴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상교는 관심도 없는 아이돌 이야기를 한참 들어야 했지만, 왠지 마음이 놓였다.
상교는 다음 날부터 다시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지막 손님을 태웠다.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아이 엄마였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세종 병원이요.”
“아, 마침 저도 그 병원으로 가는 길인데.”
“정말요? 병원엔 왜?”
“아이가 입원해 있거든요. 그 병원에.”
“그러시구나. 우리 민재도 그 병원에 있었는데, 얼마 전에 퇴원했어요.”
“아, 잘됐네요. 축하드려요.”
“아니에요. 다 나은 건 아니고 그냥 퇴원했어요.”
“그냥이요?”
“네, 그냥.”
“아, 예. 아이는 괜찮나요?”
“네, 지금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가 토하기 시작했다. 상교는 급히 차를 길가에 세웠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가로수 옆으로 갔다. 마저 토했다. 그는 뒷자리 토사물을 정리하며 카지노 쿠폰를 생각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카지노 쿠폰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건 지옥 같았다. 대신 아플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을 것이다. 세아에게 카지노 쿠폰의 간병을 부탁한 것도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세아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교는 아이 엄마에게 물티슈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아이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겠어요?”
“죄송해요. 병원에 가면 괜찮을 거예요.”
갑작스러운 일로 분위기가 묘해졌다. 아이 엄마는 아까와는 달리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다. 상교는 괜히 유쾌한 척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민재라 그랬지? 오늘 엄마랑 뭐 했어?”
아이는 상교의 질문에 눈을 반짝이더니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하고요. 맛있는 거 먹고, 케이블카 타고, 장난감 사고, 영화도 보고 했어요. 진짜 좋았어요.”
아이 엄마의 표정이 풀렸다. 아이 이마에 뽀뽀하며 꼭 껴안았다. 상교는 카지노 쿠폰 엄마가 떠올랐다. 카지노 쿠폰가 어렸을 때부터 카지노 쿠폰 엄마는 틈만 나면 이마에 뽀뽀하고 꼭 껴안았다. 상교는 그런 카지노 쿠폰 엄마의 애정 표현을 질투하곤 했다. 남편은 이제 안중에도 없다며. 상교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다정했던 사람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없어 난감했다. 잠시 후 병원에 도착했다. 상교는 택시비를 받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지….”
“어차피 저도 병원 오는 거였는데요. 뭘.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지갑을 꺼내는 아이 엄마를 겨우 만류했다. 손잡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세아에게 전화했다.
“세아야.”
“어. 오빠.”
“카지노 쿠폰랑 밑에 내려와. 카지노 쿠폰 외투도 하나 챙기고.”
“왜? 어디, 가려고?”
“일단 내려와 봐.”
세아는 갑자기 바빠졌다. 카지노 쿠폰 머리에 까만 털모자를 씌우고, 두꺼운 패딩도 하나 챙겼다. 간호사를 찾아가 외출한다고 말하니 난처해했다. 담당 의사에게 전화해서 어렵게 허락받았다. 주의 사항을 십 분 넘게 들었다. 병원 로비로 내려가니 상교가 편의점에서 뭔가를 샀는지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갑자기 어디 가려고?”
“가보면 알지.”
상교는 카지노 쿠폰 모자를 벗겨 다시 단정하게 씌워줬다. 그리곤 병원 문 앞에 세워 둔 택시 문을 열었다. 카지노 쿠폰와 세아를 태웠다. 출발했다. 카지노 쿠폰는 오랜만에 외출이 설레는지 기분 좋아 보였다. 시외로 나가니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씌며 웃었다.
“카지노 쿠폰야, 기분 좋아?”
“응, 고모. 아빠 차, 오랜만에 탄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상교가 세븐틴 노래를 틀어준 덕분에 카지노 쿠폰는 지겨워하진 않았지만 이내 잠들었다.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 때쯤 세아도 깜빡 잠이 들었다. 그녀가 눈 떴을 땐 대관령 나들목에서 내려 요금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카지노 쿠폰는 여전히 아기처럼 자고 있었다. 상교는 연신 하품했다.
“오빠, 피곤하지?”
“괜찮아.”
“근데, 여기 강원도야?”
“평창쯤.”
거기서도 삼십 분 정도 더 달려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랐다. 중간에 카지노 쿠폰가 잠꼬대로 ‘세븐틴 포에버’라고 소리 지르며 깼다.
“오잉? 여긴 어디지?”
카지노 쿠폰의 말에 상교도 세아도 한바탕 크게 웃었다. 카지노 쿠폰는 ‘왜 웃는데?’라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차가 마침내 안반데기에 도착했다.
십오 년 전 상교와 카지노 쿠폰 엄마 그리고 세아는 안반데기에 별을 보러 왔다. 상교는 세아의 친구였던 카지노 쿠폰 엄마와 오 년째 연애 중이었다. 이제는 프러포즈해야겠다는 생각에 반지까지 준비했다. 상교와 카지노 쿠폰 엄마가 멍에 전망대에서 별을 보고 있을 때 계획대로 세아가 촛불을 켠 케이크를 들고 등장했다.
“짜잔! 오빠 빨리!”
카지노 쿠폰 엄마가 놀라며 말했다.
“이게 뭐야? 오늘 무슨 날이야?”
세아가 케이크를 가져오면 상교는 프러포즈 노래를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상교는 갑자기 심장이 뛰어 입을 열 수 없었다. 손에 쥔 반지 케이스가 땀에 젖고 있었다. 카지노 쿠폰 엄마와 세아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상교를 바라봤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상교는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미안, 내가 원래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데.”
두 여자가 동시에 말했다.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노래는.”
그 말에 세아가 나섰다.
“아이고, 답답해 죽겠네! 이럴 줄 알고 준비했다.”
세아는 휴대폰으로 프러포즈 송을 재생했다. 귀에 익은 익숙한 노래였다. 상교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겨우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꺼냈다. 그날 이후로 세아는 항상 상교에게 자기가 프러포즈까지 대신해 줬다며 생색을 냈다.
그 장소에 다시 왔다. 차에서 내리니 공기가 싸늘했다. 세아는 카지노 쿠폰에게 패딩을 입혔다. 마스크와 장갑도 끼게 했다.
“여길, 또 올 줄이야.”
“고모 여기 와 봤어?”
“그래, 그게 벌써 십오 년 전이네.”
“누구랑?”
“몰라도 돼요. 꼬마는.”
“꼬마 아니거든요. 아줌마!”
카지노 쿠폰는 세아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폭탄처럼 던지고 상교에게 달려갔다. 상교는 차에서 원터치 텐트와 몇 가지 잡동사니를 꺼내 어깨에 멨다. 카지노 쿠폰와 손잡고 멍에 전망대로 이동했다. 오늘도 역시 은하수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은하수가 저 멀리 지평선으로 이어졌다. 평평하고 푹신한 자리를 찾아 텐트를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 매트와 담요를 깔았다. 카지노 쿠폰와 세아는 텐트에 들어가 앉았다. 상교가 편의점 비닐봉지에서 컵라면을 꺼냈다.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어 카지노 쿠폰에게 건넸다.
“카지노 쿠폰야, 이거 끝내준다.”
“뭐?”
“별 보면서 컵라면 먹는 거.”
“맛있겠다.”
“엄마가 이거 정말 좋아했는데….”
“엄마도 여기 왔었어?”
“그래, 거기 그 자리에서 라면 먹었어.”
“아빠, 이거 그럼 내 생일 선물이야?”
“생일?”
세아가 얼른 끼어들었다. 컵라면을 휘저으며 말했다.
“자, 먹자. 먹자. 맛있겠다.”
“고모, 아직 덜 익었어.”
“원래 라면은 꼬들꼬들해야 맛있어.”
“물 부은 지 삼십 초도 안 지났는데?”
상교는 그 소리를 듣고 시원하게 웃었다. 고요한 안반데기에 그의 웃음소리가 흐르다 잦아들었다. 상교가 외투 안주머니에서 종이봉투를 하나 꺼내 카지노 쿠폰에게 건넸다. 카지노 쿠폰는 봉투를 받아 앞뒷면을 살피며 말했다.
“이거 뭐야?”
“뭐긴, 우리 딸, 생일 선물이지.”
“생일 선물?”
“아빠가 노래도 해주고 싶지만, 미안해.”
카지노 쿠폰는 손전등으로 종이봉투에서 꺼낸 하얀색 종이를 비췄다. 갑자기 만세를 부르며 뛰어다녔다. 그들의 머리 위로 은하수가 빛났다. 만세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겨우 존재하던 별빛마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