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30일
2년 전에 지니님과 보홀에 다녀왔는데... 바닷속에서 거치대가 부러지면서 액션캠이 사라져 여행 기록이 몽땅 날아갔다. 연말에 시간이 나서 이번에는 지니님과 시간이 맞지 않아 혼자보홀에다녀오기로 했다. 집에 있는 소니 RX100 카메라를 보니 지난 아닐라오에서 작은 생물들을 못 찍었던 것이 아쉬워서 수중 촬영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수중 촬영 연습을 위한 다이빙이다.
11월 27일, 11월인데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반차를 내고 회사에서 일찍 출발했는데 공항 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폭설에 차들이 우왕좌왕이다. 눈이 덜 쌓인 1차선에서 한 줄로 느릿느릿 기어가고 여기저기 미끄러져 길가에 처박힌 차들이 널려있다. 눈길 주행도 어느 정도 가능한 올웨더 타이어를 쓰고 있으니 이 북새통에 혼자만 새로 길을 내면서 열심히 달려 일찌감치 도착한다. 체크인을 하는데 카운터 직원이 결항되진 않을 것 같은데 출발이 엄청 지연될 것이라고 말해주길래 출국 게이트에서 라운지로 간다.
라운지도 항공편이 지연된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저녁을 먹으면서 쉰다.
폭설은 계속 오고 있고 비행기는 줄줄이 결항되거나 지연된다.
내가 타야 할 비행기도 출국 게이트도 한 번 바뀌고 한참을 기다려서 12시에 탑승한다. 아직도 폭설은 계속된다.
LCC인데 모니터까지 있는 최신 기종이다.
폭설은 계속되고 기장의 방송이 나온다. 비행기에 제설 작업을 하고 세척하고 이륙해야 하는데 이게 밀려있어 이륙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고 한다. 꼼짝없이 비행기 안에서 기다려야 한다. 일단 잠부터 자자. 이럴 때는 수면 안대와 노캔 헤드폰이 큰 도움이 된다.
새벽 2시, 잠깐 눈을 떴더니 활주로 이륙 전 구역에서 비행기 세차 중이다. 이런 폭설에서는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한다. 세 대를 한꺼번에 하는데 워낙 덩치도 크고 계속 지연된 여파로 오래 걸리는 것 같다. 비행기 세차하는 것도 다 보네...
11월 28일
다행히 늦지 않게 이륙했다. 눈을 떠보니 해가 뜨려고 한다.
보홀에 거의 도착했다.
이륙 전에 리조트에 이제 출발해서 아침 7시쯤에 도착한다고 연락을 넣어놨다. 리조트의 지프니가 왔다.
리조트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안내받고 아침 먹고 다이빙을 시작하기로 했다. 원래 밤 12시에 도착해서 편하게 자고 상쾌하게 아침 다이빙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비행기에서 잔 셈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얼리 체크인이 되어 1박 비용이 청구된다.
간단한 아침이다. 나는 아침을 푸짐하게 먹는 것보다 이렇게 가벼운 걸 좋아한다.
리조트는 이쁘장하고 고양이들도 살고 있다. 이런 이쁘장한 리조트는 대부분 커플들끼리오는 편이라 혼자 오는 사람에게 적합하진 않은 것 같다.
어제 내린 폭설로 도착하지 못한 손님들이 많아서 리조트마다 결원으로 난리다. 옆 리조트에 결원이 생겨 그쪽 방카를 같이 쓰기로 했는데 이렇게 큰 방카는 처음이다. 거의 항공모함 같은넓이에 출수용 리프트까지 두 대나 달려있다.
내 장비도 잘 세팅되어 있다.
출발 전에 점검하니 내 다이브 컴퓨터가 망가졌다. 샵에서 다이브 컴퓨터를 대여했더니 단순하고 튼튼한 놈을 받았다.
첫 두 다이빙은 발리카삭에서 진행된다. 오랜만의 발리카삭 기대된다.
다이빙 시작이다.
자이언트 프로그피쉬
화이트팁 리프 샤크
모래지대의 가든일
티끌만 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양누디. 마크로렌즈가 없으면 아주 작은 것은 찍기 힘들다.
뿔복
자이언트 바라쿠다. 물고기 떼 사이에 떠있는 게 멋지다.
발리카삭에서는 하루 두 번 다이빙을 할 수 있어 마지막 다이빙은 알로나비치 앞바다에서 진행한다.
발리카삭과 알로나 비치 앞바다, 역시 보홀이다. 다이빙은 만족스러운데 둘이 다니다가 혼자 다니면 영 심심하다. 첫 다이빙에서 3개의 수중 라이트 중에 하나가 불량이라 침수되었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것이라 환불 요청은 해두었는데 문제는 촬영에 광량이 부족해지고 조명이 짝짝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11월 29일
아네모네에 투명한 새우가 보인다.
파이프피쉬
밴디드 파이프 피쉬
바다뱀도 있다.
밴디드 코랄 쉬림프
가시복
거의 두 마리씩 다니는 블랙 새들드 토비
마지막 다이빙은 다시 알로나 비치 앞바다다.
프로그 피쉬. 이 녀석들만 만나면 오늘 다이빙이 알차다는 느낌이 든다.
리본 일
11월 30일
발리카삭의 바닷속은 참 이쁘다. 심지어 오늘은 부유물이 많아 시야가 좋은 편은 아닌데도 말이다.
찬란한 태양빛을 받으면서 우아하게 내려오는 트럼펫 피쉬
발리카삭의 거북이들은 다이버를 하도 봐서 익숙한 녀석들이라 가까이 잘 다가온다.
바다뱀들도 그렇다.
박스피쉬... 똥 달고 있다.
보홀에서 다이빙을 하면 한두 번은 보게 되는 잭피시 떼, 조금 깊은 곳에서 만났는데 엄청난 인파에 쫓겨 금방 도망가버린다.
저녁은 레촌 파티가 열렸다. 레촌은 돼지 껍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맛이다. 나는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12월 1일
다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리조트에서 점심 먹고 쉬다가 공항으로 가서 돌아간다.
보홀은 공항과 리조트가 가깝고 리조트와 다이빙 사이트가 가까워 다이빙 여행의 피로도가 없다시피 한 곳이다. 심지어 이렇게 비행기가 지연되고 고생을 해도 다이빙에 지장을 주지 않았을 정도이다. 이번 여행은 수중 촬영을 시작하기 위해 연습차 다녀온 셈이다. 수중 환경도 만족스러웠고 다이빙 내용도 좋았지만 함께 다니던 습관이 혼자 다녀보니 더욱 느껴진다. 이젠 혼자 다닐 수 없는 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