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지현이가 사과했다. 내가 외계인이라는 비밀을 다른 친구에게 말해서다. 나는 흔쾌히사과를 받아주었다.
“괜찮아.”
“다신얘기 안 할게. 이번엔 꼭꼭 약속해.”
우린 다시 셋이 다녔다. 나는더 이상 친구들에게 외계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상상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내 세상은 나만이 간직하기로 했다. 입 밖으로 꺼내면 그 세상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웠다.
그 무렵 엄마의 병원 입원이 잦았다.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동생과 둘이 있는 날이 많았다. 엄마가 없는 집은 쓸쓸했다. 온기가 사라져 버렸다.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은 차가웠고, 밥솥 한가득 있는 밥은 입안에서 꺼끌 거리기만 했다. 고픈 배를 겨우 달랠 정도로조금먹었다.
다락방의 햇살도 엄마의 품을 대신하진 못했다.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오면 집안의 한기가더 깊게 파고들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 내 손에 오천 원을 쥐어주었다. 그동안집을 비워서 미안하다는 사과 같았다. 사과는언제나 흔쾌히 받는다.
“네가 좋아하는 책 사 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날이다. 오천 원은 책을한 권밖에 못 사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딱 한 권을 고르기까지 고민을 오래오래 했다. 고민의 시간이 좋았다. 오후 내내카지노 게임 추천에 있을 수 있다.
우리 동네의 카지노 게임 추천은 삼거리의 <훈민정음 하나뿐이다.훈민정음은 아주 훈훈한 삼촌이 주인이다. 쌍꺼풀 진 큰 눈에 오뚝한 콧날, 얇은 입술, 하얀 피부의 삼촌은 한눈에 봐도 잘생겼다. 티브이에 나오는 배우 같았고, 동화 속 왕자님 같았다. 나는얼른자라서훈민정음 삼촌이랑 결혼하는 게 꿈이었다.우리 별에는 천천히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 별에 메시지보내는일도 점점 더 시들해졌다.
아르바이트생 언니가 나타나며내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너무 어렸고 언니는 이미 어른이었으며예쁘기까지 했다. 삼촌이 언니랑 결혼하던 날, 나는 목놓아 울었다.내가조금만 더 빨리 지구에 불시착했더라면.
훈민정음은 늘 카지노 게임 추천가 흘렀다. 오천 원을 손에 꼭 쥐고 달려간 곳은 언제나 훈민정음이었다. 단 한 권의 책을 고르기까지 몇 시간이고 주저앉아 이 책, 저 책을 서가에서 꺼내보았다. 삼촌은 내가 책을 다 고를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었다. 아무 말 없음이 좋았다. 평온하다는말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 카지노 게임 추천 온기는 평온함이었다.
내 자리는 서가와 서가 사이 모서리였다. 모서리에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은 따뜻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이 전면 유리라 햇볕이 잘 들기도 했고,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게 정리된 책들 속에서 내마음도 고요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온기를 품고 있었다.
고민 끝에 고른 책은 두툼한 월간지 만화가 아니면 공포집이었다. 책을 고르고계산대에 가져가면 삼촌은 책갈피 통을 건넸다. 원하는 책갈피를 고를 수 있다. 이번에는 어떤 문구를 뽑을지궁금했고, 책갈피모으는 재미도쏠쏠했다.
“갖고 싶은 만큼 가져가도 돼.”
“하나면 돼요.”
하나면 충분했다. 책 한 권에 책갈피 한 개. 많지 않아야더 소중하다. 눈을 감고책갈피를골랐다. 어떤 책갈피가 손에 잡힐지 두근두근했다. 삼촌의 얼굴이 잘생겨서 더 두근두근했다.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신이 났고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갔다. 만화 월간지는다락방에서 읽었고, 공포집은변소에서 읽었다. 특히 한밤중 변소에서 읽는 공포집은 재미가 어마어마하다. 주황빛 알전구 아래에서 읽으면 심장이 쫄깃하다. 귀신이 나타나기 직전, 알전구가 바람에 깜박이면 내 심장도 잠시 멈췄다. 변소에서 일 보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새책을 사기까지 읽고 또 읽었다. 책이 손을 타서 부피가 원래보다 배로 커질 때쯤 새책을 샀다.
쫄깃한 재미는 얼마 못 가서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 나는 지독한 변비에 걸렸다. 몸 밖으로 제때 나와줘야 할 그들은 몸 안에 쌓이고 쌓여 뭉쳤다. 뭉친 그들은 상당히 강했다. 아무리 힘을 줘도 나오지 못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고통의 시간이었다. 내 힘으로 불가능하단 걸 깨닫고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럴 줄 알았어. 엄마가 빨리 나오라고 몇 번을 말해?꼭 아파봐야 정신을 차리지.”
좌약을 넣는 건 창피하다. 엄마가 해줘도 창피하다. 다신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내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덧붙였다.
“변소에서 또 책 보면 책 살 돈 안 준다!”
나는 변소에서 공포집 읽기를 멈췄다. 장소마다할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변소는 일만 보고 후딱 나와야 한다. 주황빛 알전구와 코끝을 마비시켰던 구릿한 냄새, 심장의 쫄깃함은 추억 속에 아련히 묻혀 버렸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카지노 게임 추천 <훈민정음에 드나들며, 나는 언제부턴가 우리 별에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내가 외계인이란 것도 점점 잊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지 않고 책을 읽었다. 다락방 창문 아래 앉은뱅이책상 위에는 공책과 연필만 덩그러니 놓였다.연필이 종이와 만나 사각사각 이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썼다.
우리 별에 메시지를 보내던 반짝이는 것은 모두 상자 속으로들어갔다. 한번 닫힌 상자는 오래도록 열리지 않았다. 지구에 정착하지 못해 부유하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열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