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매우 강)가 있습니다. 꼭 영화를 보신 분만 열람해 주세요.
영화 <파묘(2024)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영화의 제목처럼 주인공들이 '파묘(破墓)'를 시작했을 때다.
무덤을 파내기 전까지 의뢰를 받은 인물들은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을 법한 익숙한 행태를 보여준다. 조선시대부터 명당이란 명당은 이미 다 자리차지하고 누워 사실상 'B급' 말고는 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명당을 속이며 돈을 챙기는 지관, 신 받은 무당치고 너무 세련된, 같은 동료들 커미션까지 날름 빨아먹는 속물 무당, 장례 절차의 달인이지만 카지노 게임한 부잣집 묫자리에서 귀금속을 챙기는 장의사까지.
굿이니, 무당이니, 명당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미신이라는 걸 떠들면서도 한편으론 괜히 의지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을 배신이라도 하듯이, 작중 인물들은 하나 같이 '돈이 문제지, 귀신이 문제냐' 하는 속물적인 시각으로 사건에 뛰어든다.
겉으로는 안 믿는 척 하지만 암암리에 숭배되는 미신이 그러하듯, 물질적인 건 세속적이라며 멀리하다가도 뒤에서는 가까이하는 사람들의 속물적인 모습은 익숙하고, 때론 상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관객도, 극중 인물들도 익숙하게 품고 있는 '잘 알고 있는 것의 편안함'이 깨져버린다면 어떨까. 카지노 게임의 시작과 동시에 밝혀진, 사람을 절대 묻어서는 안 되는 악지(惡地) 중의 악지에 부잣집 조상님이 누워있다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불가능한 카지노 게임도 가능하게 만들었던 만능 무당 화림이었으나
장재현 감독이 영화 <파묘에 심어 놓은 동력은 오컬트도, 귀신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미지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 그 자체다.
인간은 예상할 수 없는 문제에 카지노 게임를 느낀다. 과학의 시대에 살기 전 인류가 샤머니즘과 종교에 기대어 현상을 해석했던 것처럼, 예측불허의 상황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해소가 되기를 원한다. 그게 과학의 시대라고 다를까. 과학도 근본적으로는 모르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고자 하는 방법론일 뿐이다. 딸이 과학도였지만 결국 자신의 풍수지리도 다를 게 없다는 지관 상덕의 지론 역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문제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지 간에, 방법론을 초과하는 영역의 것이다.
카지노 게임한 조상의 묘가 알보고니 일제강점기 친일파 관료의 묘였고, 한 인간의 탐욕으로 그 혼령이 풀려나 후손들을 해하려 들 때도 무당 화림과 일행들은 마치 준비돼 있었다는 듯이 사태를 깔끔하게 수습해 나간다. 그들에게 그 정도는 익숙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을 파냈음에도 묫자리에서 뱀을 죽인 인부 하나가 동티에 걸려 사태가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한 상덕은 다시 파낸 묘지를 살펴보다 새로운 관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첩장이라고 해도 놀랄 판국에, 이 정체불명의 관은 세로로 세워져 있는 것도 모자라 도저히 사람의 시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크기로 성인 남자 두 명이 일렬로 누워있어도 될 만큼 거대하다.
경험 많은 노련한 지관인 상덕에게도, 신을 받은 무당 화림에게도 이런 전무후무한 사태는 낯설기만 하다. 알지 못했던 다른 망자인가 하여 부잣집 고모를 보국사로 불러 새로운 관의 정체를 묻지만, 그녀 역시 모른다고 할 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관에, 그 유래나 이유조차도 알 수 없는 완전한 미지의 물건 앞에서 그들은 앞서 망자를 화장하는데 신중했던 것에 비해 주저 없이 관을 불태우자고 한다.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두고서.
이제껏 본 적 없는 미지의 존재를 처음 마주하게 된 봉길의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에서 미지(未知)가 절정에 달하는 지점은 가위에 눌렸던 봉길이 발견한, 무엇인가가 튀어나간 듯 거대한 관의 덮개가 부서진 채 어두운 속살을 내비치고 있을 때이다. '상식'으로 쳐놓은 결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수직으로 탈출한 미지의 존재는 지붕마저 박살내고 밤하늘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만다.
알지 못하는 것이 무한한 자유를 얻어 통제 불가능한 영역에 있을 때 인간의 카지노 게임는 얼마나 클 것인가.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태를 수습하러 나온 화림은 좁은 카메라 프레임에 갇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간 존재에 대한 카지노 게임를 있는 힘껏 드러낸다. 평범한 서스펜스 기법도, 이 시점에서는 극중 인물에게도 정보 통제를 가하기 때문에 미지의 카지노 게임를 제곱수로 가중한다(관의 정체를 모름x유래를 모름x괴존재가 어디 있는지 모름).
장재현 감독의 '미지'는 비단 <카지노 게임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전작 <사바하(2019)에서도 '그것'의 정체를 결말부까지 밝히지 않으면서 사건의 실마리로 동력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지속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더구나 그 미지의 공포는 언제나 널리 알려져 있는 것, 상식이나 노하우를 초월하는 형태로 등장한다. 아는 것이 없기에 당연히 대처도 불가능하며,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리도 없다.
빙의한 봉길 앞에서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던 강인한 무당 화림을, 결국 모습을 드러낸 괴존재 앞에서 비굴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으로 연출한 것도 대처 불가능한 무지의 상태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지는지를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재현 감독은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얼마나 볼품없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지 중계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그보다도 더 큰 힘을 주목하고자 한다.
영화 <파묘의 결말에서 괴존재를 끝끝내 처단하는 건 무당인 화림도, 영혼이 잠식당한 봉길도, 조력자인 영근도 아니다. 단지 '딸애 결혼식이 코앞이라 돈이 필요하다'던 속물 풍수사 상덕이다. 그는 특별한 영혼의 힘을 가진 것도 아니고, 영험한 무구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저 평소 알고 있던 지식을 응용해 퇴마를 하게 된다.
엑소시스트에 정통한 신부들이 끝내 악령을 퇴치하는 <검은 사제들(2015), 사이비 종교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던 이들과 이를 추적하던 이단 연구가가 진실을 밝히는 <사바하와는 달리 <카지노 게임의 결말은 평범한 인간의 승리로 마무리된 것이다.
인간은 미지의 영역에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하고 한없이 약해지는 존재이지만, 한 편으론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도전해 가면서 문명을 일궈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는 과학도 해결할 수 없는 미신의 악령이 닥쳐온다고 해도 사람은 답을 찾아낼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중심엔 '딸 결혼식 보기 전엔 눈 못 감는다'는 평범한 의지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을 것이라고, 다소 뻔한 해피엔딩(뻔할 걸 알면서도)으로 힘주어 말하고 있다.
파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문제에서 예기치 못한 미지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결국 도망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은, 어쩌면 미래라는 미지를 매일 만나고 있는 우리들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무섭지만 작은 소망을 안고서 하루하루를 분쇄하는 그 모든 사람들의 평범한 강인함 속에서.
*본문 사진
-유튜브 채널 '쇼박스 SHOWBOX', '험한 것이 나왔다 [카지노 게임] 1차 예고편' 중
-유튜브 채널 '쇼박스 SHOWBOX',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카지노 게임] 2차 예고편' 중
-영화 <카지노 게임(2024) 스틸 컷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