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이 하원길에는 이모랑 외할아버지가 함께 했다.
수지는 세 식구의 큰 환대를 받으며 유치원 버스에서 내렸다.
친정 식구들 중에서도 특히 더 잘놀아주는 이모랑 할아버지가 함께여서 수지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할아버지는 수지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마트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수지는 마트에 안 가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뭘 사준다고 하면 카지노 게임 먹고 싶은 게 없어도, 일단 신나게 가야 할 것 같은데 수지는 그렇지 않다. 본인이 카지노 게임 먹고 싶은 게 없으면 마트에 가자고 해도 안 간다.
할아버지가 간식 사준다고 마트에 가자고 몇번을 말해도 수지는 안 간다고 했다. 내가 다 아쉬웠다. 하지만 단호하게 안 간다고 하는 수지를 억지로 마트에 데려갈 순 없어서 우리는 바로 집으로 왔다.
그리고 수지는 식구들과 즐겁게 놀았다. 한참을 놀던 수지는 내가 챙겨준 과일과 빵을 먹고 나서 다른 먹을 게 있나 하고 부엌을 서성였다.
그러더니 자기가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이때다 싶어서 "수지야 그럼 할아버지랑 마트 갈까? 과자 사러 갈까?" 하고 물어봤다.
수지는 나가는 게 귀찮은 건지, 선뜻 대답하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옆에서 거들었다.
"수지야, 할아버지랑 마트 가봐. 할아버지가 수지 갖고 싶은 거 사준데. 마트 가서 수지 사고 싶은 거 골라봐 봐."
수지는 내 말을 듣고 나서 무언가 사고 싶은 게 생각이 난 건지 간다고 했다. 그렇게 이모랑 할아버지 손을 잡고 마트에 갔다.
나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수지는 식구들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수지 손에는 간식이 아닌 요술봉과 왕관이 들려 있었다.
내가 과자는 안 샀냐고 물어보니 "수지가 과자는 안 산데. 요술봉이랑 왕관만 들고 바로 계산대로 직진했어(웃음)" 라고 내 동생이 말했다.
수지는 요술봉과 왕관이 제일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요술봉을 손에 들고 왕관을 머리에 쓴 수지는 공주가 된 마법에 걸려 신나게 요술봉을 휘두르며 즐거워했다.
다른 간식을 먹는 것보단 이게 더 좋은가보다.
그 모습을 보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그래, 수지가 좋으면 됐지 뭐.'
그런데 할아버지는 맛있는 걸 잔뜩 사주고 싶었는데 못 사줘서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다른 건 안 사고 이것만 산단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아빠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아쉬워하는 아빠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수지는 마트에 뭘 사러 가면 항상 지금 이 순간 먹고 싶은 것 하나만 골라. 두 개도 안 사고 딱 하나만. 우리 같으면 지금 안 먹고 싶어도 나중에 먹을 거, 내일 먹을 거 미리 살텐데 수지는 안 그래. 항상 지금 먹고 싶은 거 하나만 사."
내 말을 들은 아빠는 허허하고 웃으시더니 "그래, 참 좋은 습관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간식을 안 사서 아쉬워하는 식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지는 요술봉 하나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항상 카지노 게임 이 순간만 사는구나.'
아이를 보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산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어른인 나는 마트에 가면 내일 먹을 것도 미리 사놓고, 다음에 필요한 것도 미리 사놓는다. 늘 나중을 생각하며 카지노 게임을 산다. 사실 나중을 미리 준비하는 게 나쁜 것도 아니고 필요한 행동이다. 필요한 걸 미리 사놔야 나중에 더 더 편하니까.
하지만 '나중'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지금'을 잃게 되기도 한다. '지금'을 '나중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만 쓰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나중 일은 나중의 나에게 맡겨도 된다.
나중 보다 카지노 게임에 집중하면 나는 카지노 게임을 좀 더 온전히 살게 된다. 그리고 온전히 집중한 카지노 게임이 내일의 내 삶을 더 단단하게 해주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나중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
카지노 게임 내가 필요한 것과 카지노 게임 내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마음.
이 마음을 가지면 늘 조금의 여유와 적당한 여백이 깃든, 그리 무겁지 않은 가뿐한 오늘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의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카지노 게임 주먹을 꽉 쥐고 사는 게 아닌, 카지노 게임 내 손에 쥘 수 있는 만큼만 편안하게 쥐고 사는 마음. 조급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짜 행복이란 생각이 든다.
오직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를 보며, 내가 '나중'만 보며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잠깐 멈춰서 돌아본다. 그리고 마음의 속도조절을 한다. 너무 앞서 가려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도록. 그렇게 내 마음의 편안한 속도에 맞춰 다시 천천히 한걸음을 내디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