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수 Apr 04. 2025

카지노 게임 34

4.3 양민학살

카지노 게임

4.3 기념관 안에 있는 白碑


올해가 카지노 게임 4.3 사건 77주년이라 카지노 게임에서는 그 추념식이 있었다. 그동안 추진되었던 희생자 보상을 실행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사업을 진행할 것을 다짐하였다. 4.3기록물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도 눈앞에 두고있다고 한다. 이제야정당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있어 그 감회가 적지않다.


사실 4.3 사건은 역사적인 비극이었으면서도 정부차원에서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역대 정부로서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과오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그것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정부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었고, 그 정당성을 훼손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국가의 치부를 덮기 위해서 비극이 벌어진 지 5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국가가 과오를 인정하였고, 그리고서도 또 20년이 넘어서야 물질적인 보상이 시행되기에 이른 파란의 역사였다. 그동안 카지노 게임인들의 응어리에 대해서 우리들은 이해가 부족하였다.


그러나 정작 과오를 인정하는 과정은 아직도 미흡해 보인다. 억울한 희생자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금전적인 보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4.3 사건은 우리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흑역사였다. 정부 요인과 전국에 중계된 추념식이라는 일과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될 쓰라린 비극이었다. 진정한 카지노 게임 대처는 고식지계가 아니라 그런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엄정한 교훈을 벼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시의 가해자를 찾아내어 카지노 게임 심판을 내려야 옳겠지만 그들 대부분이 이미 사라졌으니 그 실효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비록 가해자를 응징하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국가와 사회에 대한 카지노 게임 평가는 지금이라도 올바르게 매겨져야 한다. 역사는 정권이나 일부 지도층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나 언론도 역사에 동참하였으므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공산당에 의한 ‘4.3 폭동’으로 인식하고, 심지어 그런 영상물을 조작하여 유포시키는 자들도 있으니 어찌 피를 나눈 동포라 할 수 있을까?


4.3의 진정한 반성은 희생자와 카지노 게임인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한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4.3 트라우마로 시달리고, 50년이 지나도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다. 좌익으로 몰릴까 두려워 피해신고조차 하지 못 했다. 죽은 사람도 많지만 부모형제간의 혈연관계가 끊긴 사람들, 좌익에 연좌되어 숨죽이고 살아온 사람들은 더 많다. 일제강점기에는 도민의 4/1이 일본으로 밀항했고, 해방을 맞은 기쁨으로 고국에 돌아온 사람들은 숨도 못 돌리고 토벌대에 쫓겨 다시 일본으로 도생해야 했다고 한다. 지금 오사카에 사는 교포 대부분은 조국에 의하여 쫓겨난 카지노 게임인들이라고 한다. 4.3에 대한 역사적인 재평가와 깊은 반성이 따르지 않는다면 카지노 게임인들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옹이로 남을 것이다.


과거 정부의 치부를 감추고 덮어서는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당시의 신생정부의 미숙과 해방과 전쟁의 혼란을 인정하더라도 카지노 게임 평가는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역사는 민족의 화합과 번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과오를 치열하게 반성하고, 엄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현대사에는 무의식과 편견에 의하여 본말이 전도된 카지노 게임 오류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쌓여 있다.


4.3 사건이 당시 카지노 게임도민의 10%에 달하는 목숨이 학살당한 참극은 단순한 이념대립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육지에서는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상호살륙이 벌어졌지만 카지노 게임도에서는 정부에 의해서 양민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는 점에서 그 상처가 같지 않다. 일제강점기에도 없었던 그런 끔찍한 만행에 대한 정권, 지도층, 언론, 국민 모두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교훈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대의 역사부터 바르게 기술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그런 역사의식이 있었다면 조국분단을 선언한이승만 정권 수립일을 건국절로 부른다든지, 한 맺힌 4.3의 비극을 폭동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카지노 게임도민으로서는 그러한 카지노 게임왜곡을 용납할 수 없다.


정부군의 초토화 작전에 일방적으로 양민이 도륙당한 일을 어찌 폭동이며, 사태라고 기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의거도 아니고, 혁명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이념이나 목적을 위해서 투쟁한 것이 아니라 이유도 모르고 쫓겨 다니다가 무참하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4.3 양민학살’이 더 사실에 부합되는 이름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부를 수 있어야 희생자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역사를 바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 하나부터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4.3기념관에는 아직도 白碑(백비)가 피맺힌 한을 품고 합당한 이름을 기다리며 누워있다. 비어있는 빗돌에 올바른 역사를 기록해서 세워야 4.3 비극은 치유될 수 있다. 역사를 바로 매김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