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
흔히 우리는 ‘법대로 하자’는 말을 많이 하며 산다. 분쟁이 벌어졌을 때 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막판에 ‘법대로 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대로 하자’는 것은 ‘비인간적으로 하자’는 말과 같다. 법대로 하면 공정하고 합리적일지 모르지만 인간적인 관계는 파괴되기 마련이서 바람직하지 않다. 법은 인간관계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에서도 법정에 가기 전에 화해하라고 했으니 법대로 하지 말라는 말이다.
법이 ‘인간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법이란 그에 앞서 ‘통치자가 일방적으로 인간을 통제하고 구속하는 방법이요, 수단’에서 출발하였다. 법은 형벌을 내리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따라서 법이 많을수록 죄도 많은 법이니 좋은 것이 아니다. 법을 한자로 말하면 刑(형)과 상통한다. 法은 ‘물’과 ‘없애다, 가다’의 뜻이 모아진 會意(회의)자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다.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잘잘못을 가려낸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법이 자연스럽고, 공정하게 약자를 보호하기 시작한 것은 민권이 성장한 민주주의 시대에 와서야 가능해졌다.
道家에서는 道가 쇠한 후에 仁이 나왔고, 仁이 쇠한 후에 法이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법이란 인륜이 어긋난 후에 나타난 비인간적인 수단인 셈이다. 공자는 법을 위반한 아버지를 고발하는 자식은 비정의 불효한 자라고 했으니 법은 인정이 아니었다. 진시황은 법치주의로 천하통일을 이룩했지만 그것은 한낱 강국을 이루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단명의 천하로 끝났다. 그리스도가 내세운 것은 사랑이요, 사랑이 율법에 우선했기에 위대해질 수 있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상충된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 사회가 증명하고 있다. 대통령은 법치주의와 상충되는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살지만 둘 다 위장된 허구임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칭 법치주의자들이 통치하고 있지만 법치주의의 이상인 공정과 정의가 철저하게 유린되고 있다. 설령 정상적인 법치주의라 해도 쉽게 공포정치나 독재정치로 변질되었음을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기실 법은 본질적으로 非민주주의, 反인권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독재, 파쇼나 공산당 정부가 그랬다. 이번 계엄선포가 성공했더라면 우리나라는 곧바로 독재, 공포정치로 돌입했을 것이다.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법관 출신인 대통령 스스로가 사법기관을 부정하고, 심지어 헌법조차도 불법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법은 국민을 통제,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법 위에 인권 있고, 인권 위에 사회가 있는 법이다. 법관들은 法理(법리)다툼을 좋아하지만 법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과 행복임은 당연한 일이다. 법치주의는 사회가 어지럽거나 국민의 수준이 낮은 경우에만 유효한 통치수단이다. 지금의 혼란은 사이비 법치주의자들에게 속은 극우민(極愚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이 부유하면 공산당이 발 붙일 곳이 없듯이 국민이 현명하면 법치주의자들이 횡행할 수 없다. 법가들과 우민은 공생의 관계이다. 선진국에 진입한 민주시민이 법치주의를 맹신하는 것은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하는 일종의 자학(自虐)이다.
법치주의자들과 일부 법관들은 만사를 법과 규정으로만 처리하려 들지만 이는 법의 존재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법리로 인해서 국가, 사회, 인간의 행복과 인권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법폭(法暴), 법꾸라지들이 사법부를 대놓고 능멸하는 이유이다. 명백한 범죄사실에도 힘이 있고, 증거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법치주의의 현실이다. 명백히 헌법과 국익을 해쳤는데도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법을 내세워 법을 무력화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사법당국이 법에 얽매어 나라와 국민을 위험에서 구해내지 못한다면 이는 법치주의의 한계요, 불행이다. 신발 사는 사람은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사면 된다. 그런데 자기 신발의 칫수를 잊어버려 신발을 못 샀다는 고사(鄭人買履)가 있다. 법 제일주의자들이 그렇다. 그들은중요한 것은 내 발(人)이지 신발의 칫수(法)가 아니라는 진리를 모르는 버법이들이다.
그렇다고 법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벌어지는 극우(極愚)법비(法匪)들의 불법, 탈법, 폭력으로 자행되는 사회혼란은 엄정한 법이 없으면 걷잡을 수 없다. 이들은 법치의 본산인 헌재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표방하고, 공정과 정의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일찍이 지금처럼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시대는 없었다. 지금 우리는민주주의는커녕 법치마저 무너져버려 극우, 법폭, 법비들이 난동하는 무법천치가 되어버렸다. 사법부라도 올바른 법의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그것은 어떠한 법보다도 우선하는 사회적 임무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인권과 나라의 붕괴를 지켜보아야 하는가? 실로 답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