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166) 카지노 쿠폰 개인전 《꾸띠아주, 누아주》
카지노 쿠폰라는 뛰어난 화가를 발견했다.
신성희(Shin Sung Hy, 1948~2009)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나와 국내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1980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30여 년 동안 해외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생소하다. 1980년대 초반 파리에 있던 김창열 화백의 추천으로 작가와 인연을 맺은 갤러리현대가 1988년부터 아홉 차례 개인전을 통해 신성희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했다. 하지만 어느 전시에도 닿지 않은 나는 까맣게 몰랐다. 심지어 남자란 사실조차.
1969년 약관의 나이에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미술계에 데뷔한 신성희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71년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이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가 대상을 받은 바로 그 공모전이다. 신성희는 이 공모전에서 <공심(空心) 3부작으로 특별상을 받으며 큰 주목을 받는다. 그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이 작품이 갤러리현대가 마련한 신성희의 열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다.
신성희의 회화 세계는 크게 마대 회화(극사실 물성 회화) 시리즈(1974-1982), 콜라주(구조 공간) 시리즈(1983-1992), 꾸띠아주(박음 회화) 시리즈(1993-1997), 누아주(엮음 회화) 시리즈(1997-2009)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꾸띠아주와 누아주 두 연작이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다.
‘꾸띠아주’는 캔버스 천에 추상 회화를 그린 뒤, 5cm 폭으로 잘라내 재봉틀로 박음질한 다음, 프레임에 다시 고정해서 완성하는 신성희 특유의 기법이다. 천과 천이 맞닿은 주름에서 솔기가 그대로 흘러내려 마치 땅속 깊이 오래 퇴적된 단단한 지층을 연상시킨다. 신성희의 꾸띠아주 작품을 보면서 대번에 단색화를 대표하는 어느 화가의 작업을 떠올렸다. 조형성으로 보나, 색감으로 보나 신성희의 작품이 훨씬 더 좋다.
‘누아주’는 캔버스 천을 바닥에 펼쳐놓고 액션 페인팅 스타일의 추상 회화를 그린 뒤. 천을 뒤집어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내 두었다가, 한 가닥씩 집어 매듭을 묶듯 캔버스에 직조하는 기법이다. 평면의 캔버스를 해체한 뒤 잘라낸 천 조각을 매듭으로 묶어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캔버스를 넘어선 캔버스이자 다시 캔버스로 돌아온 회화다. 평면적인 동시에 입체적이기도 해서 캔버스 자체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확장성을 지닌다. 신성희 작품에 고유한 특질이다.
캔버스 천을 작은 단위로 잘라 재조합하는 과정은 ‘조각보’에, 천 조각을 거미줄처럼 엮어 구성하는 과정은 ‘매듭’에 조응한다. 조각보와 매듭. 파리에서 신성희가 만들어낸 미적 세계의 근간에 우리 전통의 미감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아무튼 신성희 작업은 유럽에서 상당히 인기를 얻은 모양이다. IMF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갤러리현대가 파리에서 트럭을 빌려 신성희의 ‘누아주’ 연작 수십 점을 싣고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바젤에 참가해 3년 연속 완판 기록을 세웠다니 말이다.
매듭은 ‘관계’의 다른 이름이다. 거미줄처럼 매듭을 엮어나가는 작가조차도 매듭이 어디로 뻗어나갈지 알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렇고, 우리네 인생살이가 또한 그렇다. 그렇게 복잡하게 얽힌 매듭의 연결 고리가 암시하는 그 무언가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것, 카지노 쿠폰의 작품 앞에서 나는 매듭과 매듭 사이의 빈틈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갤러리현대 전시에 맞춰 신성희의 작품 두 점이 서울옥션 3월 경매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