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에스파-아마겟돈
또 어둠을 몰아내고
시작을 꽃피운 너와 나의 Story
더 완벽해진 우리
정의해 이젠 나만의 Complete
내 모든 걸 이끌어 Do it all myself
완전한 나를 이뤄내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학원에 사람들이 한둘씩 사라져 나중에 대여섯만 남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그재그로 겨우 서서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팔다리를 뻗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하고 묻는 말에 선생님은 “여름 되면 잠깐 쉬는 사람 많아요. 너무 더워서 힘들대요.”라고 하셨다.
어차피 춤추면 겨울에도 땀나는데 여름이라고 더 힘들고 그런가?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주는데? 난 쉬지 말고 열심히 해야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 마음도 잠시, 팔만 한번 휘둘러도 겨드랑이에 땀이 한 국자씩 흐르는 폭염이 시작됐다.
라이즈의 ‘붐붐베이스’의 후렴 부분을 배우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남자 아이돌 노래라서 들떴다. 지난번 ‘하우 스윗’ 때처럼 나 혼자서라도 앞부분부터 연습해서 1절 전체를 촬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려면 연습 시간을 더 늘려야 했다. 보통 후렴만 하면 4~5시간은 연습해야 하고, 1절을 다 하려면 7~10시간은 연습해야 했다.
연습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일을 빨리 하려고 해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한증막 더위에 책방 청소만 해도 기운이 썰물처럼 빠지는데, 헬스까지 다녀오고 나면 손가락 하나도 꿈쩍하기가 싫은 것이다. 수업을 겨우겨우 끝내고 내일 수업 준비까지 하면 벌써 밤 10시. 집에 가면 바로 연습방으로 들어가야 30~40분이라도 춤을 추는데, 연습방까지의 거리가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다. 에어컨을 켜도 움직이기 시작하면 금세 땀이 흘렀고, 심할 때는 어지럽기까지 했다. 노래가 너무 좋고, 춤도 멋있어서 얼른 따라 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순서가 외워지지 않았다. 그러니 더 하기가 싫어지고, 연습을 미루고만 싶고.... 이게 슬럼프인가! 나에게도 슬럼프가 온 것인가!
결국 촬영하는 날까지 1절 안무를 다 외우기는커녕 후렴 안무까지 잊어버려서 재촬영까지 했다. 연습하는 것도, 사람들과 동선을 맞추는 것도, 촬영하는 것도 다 짜증스럽고 부담이 됐다. 촬영이 끝난 후 새 안무를 배우는데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게 손동작이 많은 안무인데, 새 안무가 딱 그랬다. 손가락을 하나 폈다가 세 개 폈다가 볼을 쓸었다가 머리를 만졌다가. 도대체 왜 이렇게 안무를 복잡하게 짜는 거야, 수산시장 경매사야 뭐야 하고 벌컥 화가 났는데!
근데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인가? 저런 안무를 지금껏 얼마나 자주 했는데 분노까지 하는 건 넘 오버 아닌가? 벌써 춤이 추기 싫어진 건가? 진짜 더워서 이런 건가?
1년을 좀 넘게 배우는 동안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정말 하기 싫은 순간도 있었다. 노래가 정말 내 취향이 아니어서 연습하는 동안 수십 번을 듣는데도 정이 안 생기는 경우도 있었고, 귀엽고 깜찍하고 섹시한 안무를 배우면 도저히 거울로 내 꼴을 볼 수가 없어서 대충 해버리기도 했다. 안무가 너무 복잡해서, 진도가 빨라서(또는 느려서), 컨디션이 별로라서, 의상이 맘에 안 들어서, 날씨가 너무 맑아서, 배가 고파서 등등 수없이 다양한 이유로 하기 싫었다. 누가 하라고 등 떠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만두면 될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또 그럴 수가 없었다. 도저히 발을 뺄 수 없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된다고?’하는 순간이다.
영 댄스학원에 다닐 때 특히 재미없음과 싸워야 하는 나날이 많았다. 선생님도 맘에 안 들고, 함께 배우는 사람들과 으쌰으쌰 하는 것도 없고,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날들이 계속 됐지만, 이왕 시작한 거 뭔가 이루고 싶단 마음으로 꾸역꾸역 다녔다. 나도 취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적어도 1년은 해야 어디 가서 취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촬영 영상을 보여주면 “끌려가서 억지로 무대에 세워진 사람 같다”라고 했는데, “아이다, 엄청 신난 거다.”라고 부인하긴 했지만, 사실 신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어. 좀 신나는 것 같아.’하는 마음이 생긴 건, 옛 시절 노래를 배우면서부터다. 그 학원엔 내 또래들이 대부분이라 옛날 노래를 한번씩 하곤 했는데, 가장 두근거렸던 노래가 HOT의 ‘전사의 후예’다. 노래를 들으면 추억이 떠오르기 마련. 그 노래는 나를 17살, 고등학교 1학년 때로 데려갔다. 댄스 동아리 아이들이 교실에서 이 춤을 연습하고 있으면 옆에 가서 가르쳐 달라고 하고 함께 추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당시 나는 내 몸 구석구석 안 부끄러운 곳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되도록 자리에서 일어서고 싶지도 않았다. 부러움과 질투심으로 바라보던 그 춤을 배우게 됐을 때부터 춤이 조금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돌 춤을 자주 배우면서 자신감도 쌓였다. 댄스 학원 수강생의 90% 이상이 여성이라서 주로 여자 아이돌 곡을 배운다. 선생님께 남자 아이돌 곡을 배우고 싶다고 하니 “남자 노래가 훨씬 힘들어서 못해요.”라고 했다. 여자 아이돌 노래에 비해 동작이 커서 더 빠르게 느껴지고, 힘주어 추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겐 남자 아이돌 안무가 훨씬 잘 맞았다. 세세한 손동작을 못 외우고, 포즈를 잘 못 잡는 나에겐 시원시원하게 몸 전체를 쓰는 안무가 잘 어울렸다.
선생님께 BTS, HOT, 세븐틴, 스트레이 키즈 등 남돌 안무가 하고 싶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더니, 감사하게도 하나씩 반영을 해주었다. 촬영한 영상을 보면 여돌 곡을 할 때의 나와 남돌 곡을 할 때의 나는 차이가 크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남돌 곡을 할 때의 나는 내면에 자신감이 뿜뿜 차있다. 좋아하는 안무를 하면 연습이 즐거워진다. 연습이 즐거우니 자주 하게 된다. 자주 하니, 안무를 틀리지 않게 된다. 틀리지 않으니 자신감이 쌓이고, 드디어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이상한 점도 고칠 수 있게 됐다. 실력이 조금 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도저히 40대는 따라갈 수 없는 박자다 하고 포기하려 했던 안무가 ‘세븐틴’의 ‘손오공’이다. 나는 ‘우지’나 ‘호시’처럼 춤추고 싶었지만, 해도 해도 진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안무가 어려웠다. 안무가 최영준을 욕하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나중에는 연습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내가 해내고 말리라 악으로 깡으로 반복했다.
이때 처음으로 선생님께 혼자 촬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모든 학생들이 제 박자에 춤을 추지 못했기 때문에 늘 속도 0.75로 촬영을 했다. 나는 원래 박자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연습할 때조차 성공한 적이 없지만, 오늘이 지나 다른 곡을 배우게 되면 이 안무는 까맣게 잊어버릴 게 분명하니 기회가 더는 없었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몇 번 틀리긴 했으나 끝까지 멈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춤을 이어 나갔고,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영상을 보니 옆에서 추던 분이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주고 있었다.
‘이게 되겠어?’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된다고?’로, 또 ‘이게 되네.’로 결론지어지는 순간, 실력은 훅! 업그레이드되었다. 어려운 안무를 해냈을 때 다음 안무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고, 원래 박자에 해냈을 때 느린 속도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손오공’을 배운 이후로는 느린 박자로 촬영하는 일은 없었다.
무엇을 배울 때는 늘 정체기가 존재한다. 실력은 경사로처럼 느는 게 아니라 계단식으로 는다. 문제는 수직 구간보다 수평 구간이 너무 길어지는 때다. 언제 올지 모르는 수직 구간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다 보면 ‘그만 갈까?’, ‘가서 뭐하나?’하면서 내가 애초에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이유를 까먹어 버린다. 그때를 슬럼프라고 한다. 수평 구간을 탈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외부에 변화를 주거나, 내부에 변화를 주거나. 내 경우, 외부 변화라면 배우는 공간이나 선생님을 바꿔 보는 것이 되겠다. 내부 변화라면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거나 의상을 제대로 갖춰 입거나 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 변화를 주든지 내부에 변화를 주든지 어쨌든 계속해야 한다. 슬럼프는 쉬어서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일상이 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극복하는 것이고, 이왕이면 더 어렵고 높은 목표를 세워서 재도전하는 것이 계단을 한 번에 두세 개씩 뛰어넘는 방법이다.
나는 늘 처음 맞닥뜨리는 수평구간에서 포기했기에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은 어려움에 부닥치면 너무 쉽게 사라졌고,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안 그래도 약한 견디고 버티는 힘이 종적을 감추었다. 지금껏 슬럼프가 뭔지 모르고 살았던 건 최선을 다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해본 사람만 겪는 슬럼프를 춤을 추면서 처음 겪게 됐고, 주어진 도전에 “어서 오고!” 정신으로 반갑게 맞았더니 견디고 버티는 힘이 솟아났다. 선생님이 ‘이게 되겠어?’하는 안무를 던져주면 이제 겁나기보다는 설렌다.
하지만, 리사의 ‘Rockstar’ 안무는 나를 또 한 번 무릎 꿇리고 마는데.... 리사가 긴 팔을 훅훅 휘저을 때마다 멋있어서 설레긴 한데 오십견을 경계해야 하는 나이라 좀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는 도전이었다. 이런 도전을 몇 개쯤 클리어하면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될까? 알 수 없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계속 올라가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