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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pr 18. 2025

내가 악플에도 정성을 카지노 게임는 이유

감정의 ‘배설’과 건강한 ‘비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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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글로 반항한다


최근 유튜브를 시작했다. 오랜 잡지사 에디터 생활과 해외 생활을 하며 사용해 온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는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 내가 SNS에 쏟는 시간과 비교해 득과 실을 따졌을 때 실이 더 많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꾸준히 글을 쓰고 내 생각을 다듬으며 어떤 글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 연대카지노 게임, 집단 지성을 발휘해 혐오와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 미약하지만 작은 힘을 보태고 싶었다.

채널을 개설하기 전, 나는 멈칫했다. 맥락도 이유도 없이 후드득 달릴 악플들이 벌써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사이버폭력, 특히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의 무분별한 혐오 표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고 단정 짓는 익명의 악플에 나는 또 끝도 없는 자기반성을 할 테고, 결국 그게 자칫 자기혐오와 자기 비하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려웠다. 악플과 혐오 표현에의 노출은 우울증과 불안을 넘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불행하고 처참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펼치면 혐오와 조롱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아주 오래는 아니지만, 그래도 살면서 나름 조금씩 강해졌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쌓았으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익명성과 비대면성이라는 온라인 환경의 특성에 기대어 그저 자신의 일진이 안 좋다는 이유로 툭 던지고 간 감정의 배설물에 더 이상 깊이 배이지 않을 거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서로를 ‘입틀막’하고, 혐오하고,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카지노 게임 사회에 대해 나는 내 방식대로 저항하기로 했다.


무작정 채널을 키우기 위해 팔로워를 늘이기로 했다면, 그카지노 게임 원하는 말을 하면 된다. 문장 몇 줄만 입력하면 전체 대본을 만들어 주는 AI 세상에서 그렇게 하기는 더 쉽다. 하지만 내가 채널을 시작한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고 함께 저항하고 싶다. 그러니 숫자는 상관없다.


온라인상의 악성 댓글이 혐오와 감정의 무자비한 배설의 쓰레기통이 된 이유에 대한 학설은 다양하지만,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 동조 심리나 특정 집단에 대한 극단적 적대감 표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그 사회의 정치/사회적 시스템이 얼마나 건강한지에 대한 척도가 된다는 점이다. 독일의 ‘네트워크 집행법(NetzDG)’처럼 명백한 혐오 표현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에게 강력한 책임을 묻는 유럽의 사례들은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정부와 사회가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개입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인식’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권력이 대안 언론으로 넘어가고 있는 새로운 시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가지고 불편한 질문을 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입틀막’을 당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하는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서 한국의 순위가 최근 몇 년간 우려스러운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를 풍자한 만화 입상작을 발표한 공모전은 곧바로 응징을 당했고, <뉴스타파처럼 정부의 부정부패나 비리를 폭로한 언론사와 기자들은 정부 및 관련 기관으로부터 전례 없는 압수수색과 줄소송, 재판 소장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압력은 단순히 해당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민감한 사안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는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낳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글로 반항하기로 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게 제기되는 수많은 의혹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를 외면하는 대신 우리 사회 전체와 구성원 각자에게 미칠 나비효과와 같은 파장을 우려했다. 나도 모르게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 잠깐 망설이기도 했다.‘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적 분위기는 개인이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직간접적으로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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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을 칼로 쓰면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으며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만간 큰 사고를 칠 거라고 썼다. 그의 철학을 드러내는 언행은 점점 더 난폭하고 과격해졌다. 내 예상이 틀렸다면 다행이고, 행여나 큰일이 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준비라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자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렸다. “네가 뭔데”부터 시작해 “이렇게 살기 좋은 시절이 어디 있었냐”며 논점을 흐리고 전 정부를 소환하는 내용(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Whataboutism)’)이 대부분이었다. 윤석열을 비판하면 무조건 나를 문재인, 이재명 지지자로 몰아 폭력적인 언어를 쏟아냈다. 어떻게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게 바로 문재인, 이재명 지지의 의미로 이어지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정의당 지지자일 수도, 기본소득당 지지자일 수도, 혹은 무당층일 수도 있었다. 혹은 국민의힘이나 윤석열의 지지자이면서도 오히려 그래서 더 비판할 수도 있었다.


내가 윤석열에 대해 비판한 내용의 본질에 대해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한, 대부분 메시지의 본질보다는 합리적 근거 없이 화자인 나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인신공격에 집중했다. 댓글 작성자 중 상당수는 현 정부 지지자들이었고, 심지어 사이비 종교 단체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악성 댓글 공격을 받은 적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재대한민국의 가장 거대한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의 편이라는 사실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 권력이 곧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윤석열에 대한 비판은 곧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오만과 자부심은, 자신의 신념만 옳고 다른 의견은 틀렸다고 확신하는 ‘확증 편향’과 결합하여 다른 의견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얼마든지 밟아 없애버릴 수 있다는 폭력성으로 발전했다.


얼마 후, 헌정사상 초유의 ‘12.3 내란’ 사태가 발발했다. 나는 이제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너무 궁금했지만, 애초에 건강한 토론을 위한 ‘비판’이 아닌 감정의 ‘배설’만 해놓고 떠난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는 악성 댓글로 목숨을 끊거나 깊은 우울증을 앓는다. 집단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한 감정의 배설, 악성 댓글의 주인공들은 끝까지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고 합리화하며 아무 죄책감 없이 지금도 온라인 공간 어디선가 가면을 쓰고 조롱과 비하, 혐오의 글로 자신의 디지털 족적을 남기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더라도 자신만은 알 것이다. 말과 글을 칼로 쓰면, 그 칼은 부메랑처럼 언젠가는 어떻게든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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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는 세상


얼마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인셀 문화(여성에게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남성카지노 게임 극단적인 여성 혐오와 폭력성을 드러내는 하위문화로 한국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사한 현상이 관찰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가 열세 살 소년에게 미친 영향과 사회적 책임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의 시간에 대한 비평을 다룬 영상 콘텐츠에 갑자기 섬뜩한 악플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영상에서 다룬 내용은 드라마를 제작한 감독과 각본가의 제작 의도에 관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인셀 문화’였고, 영상 속 목소리는 여성인 내 목소리였다. 그게 다였다. 그러자 단숨에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 혐오’에 대해 다뤘다는 객관적 사실이 나를 ‘페미니스트’로 비난하고 조롱하고 비하하는 수단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의 수단이 되었다. 여성 인권 신장이라는 본래 의미보다 급진적이거나 ‘남성 혐오’로 낙인찍힌다.


물론, 나는 ‘페미니스트’다.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기본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너는 왜 페미니스트냐?”라고 비난카지노 게임 건 옳지 않다. 해외 생활에서 만난 스페인에서 온, 책을 많이 읽던 친구 카를로스는 ‘페미니스트’라는 용어 자체에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절대 네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하지 마. 여자가 ‘페미니스트’인 건 당연한 거 아냐? 나는 이 세상 모든 남자가 ‘페미니스트’여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가 무조건 여성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이 세상엔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평등을 주장하고 옹호카지노 게임 남성들도 많다는 걸 알았다.

악플의 주인공은 영상 속 내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내가 ‘여성’이고, ‘여성 혐오’에 빠져 살인한 열세 살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너 같은 페미니스트들 때문에”라며 분노와 혐오를 쏟아냈다. 처음엔 유튜브 채널 관리 댓글란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유튜브 채널의 댓글 정책으로 그 사람의 댓글이 ‘혐오성 발언’으로 인식되어 필터링이 되어 있던 것이다. 내가 일일이 승인을 해야만 댓글창에 보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신이 남긴 댓글이 바로 보이지 않자, 내가 삭제했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너 같은 페미니스트니가 이렇게 남의 말도 안 듣고 댓글을 쳐 지우고 있지”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이 사회는 어디까지 망가진 걸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의 댓글을 승인해 공개될 수 있도록 하고, 이렇게 답글을 달았다.


제가 댓글을 지운 게 아니라 유튜브가 OOO님의 댓글이 ‘혐오성 댓글’이라고 자체 필터링을 했네요. 요즘 유튜브 악플 정책 때문에 댓글 필터링이 엄격해졌더라고요.

필터링된 댓글을 볼 수 있는 섹션에 들어가서 저도 지금 봤으니 오해 마세요. 댓글 승인해서 공개하고 절대 안 지울 테니 부디 본인의 논리를 자유롭게 펼쳐 주십시오.

그런데 말이죠. OOO님의 댓글이 유튜브의 정책에도 ‘혐오성 발언’으로 분류되어 필터링됐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네요. 필터링되어 제가 보지도 못한 댓글을 왜 삭제했냐며 이렇게 혼자 화를 쏟아내시면서 분노의 댓글 도배를 하셨는데, 이 작품에서 말하는 ‘혐오 문화’와 무엇이 다른지요? 상호 이해를 추구하는 소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존중을 바탕으로 한 건설적인 ‘비판’과 ‘토론’을 하면 좋겠습니다. 단순한 감정의 ‘배설’이나 혐오와 폭력의 단어 나열 말고요.


‘페미’고, ‘반페미’고, 개념화된 용어를 쓰는 건 언뜻 보기에 논리적인 듯 보이지만, ‘젠더’는 결국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이 제각각 살아내는 ‘삶’이자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목숨을 잃기도 카지노 게임, 누군가는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정신적 피해에 고통스러워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부끄러워 입으로만 떠드는 페미니즘 논쟁엔 참여카지노 게임 싶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을 여행하며 다양한 인종, 문화, 성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여전히 우리는 모르는 게 더 많으니 겸손하게 서로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애정 없이 ‘페미’와 ‘반페미’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과 인간은 생각보다 복잡카지노 게임 다양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작품이 단순히 ‘여성’과 ‘남성’, ‘페미’와 ‘반페미’가 아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는 이미 상대를 혐오카지노 게임 낙인찍는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남자도 여자도 모두 저마다의 불안과 두려움, 피해의식, 인정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페미’ ‘반페미’ 보다 더 큰 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도 더 나아질 거고요.


저는 OOO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OOO님을 존중합니다. 제가 OOO님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만큼 OOO님도 제 표현의 자유도 인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단정 짓고, 극단으로 몰아가지 마시고요. 우리는 상대를 먼저 죽여야 카지노 게임 사는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OOO님의 인격을 폄훼하거나 배척하거나 혐오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부디 편안한 일상 누리시길 :)







본질과 철학의 부재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 현상인 ‘극우 파시즘’ 현상에 관한 글에도 댓글이 달렸다. “젠더 갈등은 바로 문 정부 정치인들이 조장한 거다. 그 결과가 이준석이다. 너는 전혀 정치 흐름을 못 짚고 있고, 네가 말하는 건 전부 틀렸다”라는 식이었다. 세상의 사회/정치는 단 하나의 단순한 현상과 결과가 아닌, 여러 요소가 서로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 것이기에 나는 이 사람이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매너와 존중을 보이며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토론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댓글은 앞서 언급한 이준석식의, 논리적 비판보다는 단정과 비난으로 일관하는 ‘배설’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생각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본인의 생각을 논리 있게 잘 말하면 됩니다. 그럼 또 상대가 반응을 해서 토론을 하면 되겠지요. 제가 00학번인데요. 오랫동안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개인적으로 경험한 바로는, 젠더 갈등은 문 정부 훨씬 전부터 있었습니다. OECD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나 현저히 낮은 여성의 정치·경제 참여율 같은 객관적 지표카지노 게임 보여주듯, 구조적 성차별은 오랜 시간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문 정부 이전의 시대엔 여성카지노 게임 목소리를 외부로 펼치기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었고, 설령 목소리를 낸다 해도 사회에서 주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회적 갈등은 표면적으로 잠잠해 보일 때보다 오히려 그 사회가 가장 불평불만을 자유롭게 늘어놓기 좋은 시대에 터져 나온다고 하죠.


많은 정치학자카지노 게임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었을 때 트럼프 정권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회적 갈등과 시위가 일어났던 상황을 예로 들며, 이를 두고 오바마가 트럼프보다 사회적 갈등을 더 부추겼다고 판단하는 건 상황을 미시적이고 단순하게 보는 착시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오바마의 시대에 시민카지노 게임 자신의 의견과 억압된 감정을 분출하는 걸 더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책을 보았습니다. 조용한 사회가 더 위험하다고도 했죠.


이준석 전 대표는 젠더 갈라치기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기로 스스로 ‘선택’을 한 인물이지, 어떤 현상의 수동적 ‘결과’이거나 ‘피해자’가 아닙니다. 이준석은 늘 자신이 하버드 출신임을 강조하며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똑똑한 정치인이라고 스스로 강조해 왔지요. 어떤 정치인은 혐오와 폭력의 틈을 메꾸려 노력카지노 게임, 또 어떤 정치인은 그 틈을 더 깊게 파고들어 이익을 추구합니다. 혐오와 폭력은 어느 시대든 세계 어디든 있지만, 그걸 정치적으로 이용해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 체제까지 부정한 윤석열 정부는 가장 극단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비록 당신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당신을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존중합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은 너무 다양해서 정치/사회적 사안은 모두 각자 선 곳에 따라 풍경이 달리 보입니다.


민주주의에서 당연히 당신과 나의 의견이 같을 수가 없겠죠. 하지만 다짜고짜 상대를 비하카지노 게임 비꼬는 당신의 모습은 이준석의 방식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당신의 의견과 생각만 무조건 옳은 게 아닙니다. 그거야 말로 파시즘적 태도이지요.

토론도 기본적인 상식과 매너가 있는 사람과 가능합니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조용히 지나가주세요.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가 내가 최대한 넓게 그은 선이다. 이 선을 넘어선 댓글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상식이라는 토론의 기본 조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에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바로 신고 후 삭제한다. 어차피 그 악플러 또한 엔터키를 누르는 순간, 자신이 어디,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고 목도리도마뱀처럼 제 몸을 부풀릴 뿐이지 결국 내면의의자아는 점점 쪼그라들어 소멸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 인문학으로 다시 시작


최근 난데없이 드럼통에 들어가 찍은 사진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심지어 공공주택에 사는 서민들을 그 안에 사는 것으로 비하하는 ‘일베’의 짤을 퍼뜨린 나경원 의원에 대한 비판글을 썼다. 벌써부터 나경원 의원 지지자들이 ‘이재명 드럼통’이라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는 연예인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을 이유로 들어 복장부터 노래 가사, 심지어 정치적/사상적/표현의 자유까지 억압카지노 게임 재단하려 든다. 그런데 정치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사회,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게 미칠 수 있는 파장엔 상대적으로 둔감하거나 눈을 감는다.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공공주택에 사는 친구들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일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 법대 판사 출신 5선 국회의원 같은 사회 지도층 인사가 ‘일베’에서나 유통되는 혐오 이미지를 퍼 나르는 것은 아이들에게 ‘저런 말을 해도 괜찮구나’ ‘저렇게 남을 비하해도 되는구나’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준다. 이는 아동의 사회적 학습과 행동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모방과 관찰 학습’의 관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나경원 의원의 행동은 기존의 편견과 혐오를 더욱 강화하고, 아이들의 차별적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카지노 게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비슷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경원을 비판하는데 난데없이 “이재명 죽일 놈”이 튀어나왔다. 이어서 나더러인문학책만 보지 말고, 경제학 서적 같은 걸 좀 보라며 조롱하고 비꼰다. 내가 경제를 몰라 나경원의 혐오 조장 행동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그 사람은 경제학도 인간의 삶과 선택을 다루는, 넓은 의미의 인문학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수많은 세계의 부자카지노 게임 “경제 지식만으로 부자가 되는 건 결코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책들도 많다.


철학이 부재한 상태로 부자가 되기만을 갈망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악성 댓글 한 문장에 압축되어 있었다. 본질과 철학은 없고, 인문학을 경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평생 물질의 욕망과 사익만 좇는 기득권 카르텔이 지금 이 나라를 어떻게 유린했는지 그는 과연 질문한 적이 있을까.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한 적이 있을까. 아니면 그의 욕망은 그저 어떻게든 그 기득권 카르텔에 들어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을 더 많이 공부해야 카지노 게임, 철학을 쌓아야 카지노 게임, 고민카지노 게임, 토론해야 한다. 이대로 이 사회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무너지는 신뢰와 깊어지는 갈등을 사회 구성원 제각각 가진 철학과 집단 지성의 힘으로 찾아 나가야 한다.


세상엔 정말 수없이 다양한 사람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80억의 인간이 있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인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또 어떤 사람은 ‘경제학’을 통해, 또 어떤 사람은 ‘정치’를 통해, ‘스포츠’를 통해, ‘그림’을 통해, ‘시’나 ‘소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한 사람이 모든 시각을 가질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이 모든 다양하고 작은 시선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세상이 굴러간다. 댓글의 주인공은 ‘인문학을 하는 사람은 경제를 모른다’는 성급한 일반화와,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지독한 확증 편향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칼을 갈아 상대를 찌르기 위한 말을 고르고 골라 공격했다. 이건 건강한 ‘비판’이 아닌 감정의 ‘배설’이다. 내가 이준석과 나경원 의원을 비판하며 걱정하던 일, 즉 혐오와 차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의 실체적 결과였다.







질문이 틀리면 옳은 답을 구할 수 없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 노동자, 장애인, 성 소수자, 외국인 등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혐오가 가장 잘 먹힐만한 대상을 찾아 ‘저들이 바로 네 일자리와 권리와 혜택을 빼앗으려 하는 도둑이자 강도다!’라고 끝없이, 그리고 성실하고 집요하게 부추긴 덕에 그 실체는 온라인 공간에 덕지덕지 눌어붙은 혐오와 폭력의 댓글로 나타난다. 혐오와 폭력을 선동하는 세력은 애초에 그 모든 사회적 기득권이 남성에게 쏠려 있었다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전혀 의심하거나 탐구하거나 시간과 공을 들여 깊게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제시할 생각이 없다. 현상 파악부터 제대로 안 되니 해결책이 있을 리도 없고, 있다고 해도 그건 오로지 자기 정치적 이익에 도움이 안 되면 쉬쉬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인구소멸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이 뿌리 깊은 젠더 갈등과 구조적 성 불평등에 있다고 생각한. 여성카지노 게임 출산과 육아로 인해 겪게 될 경력 단절과 사회적 불이익에 대한 공포, 남성과 여성이 함께 짊어져야 할 돌봄 노동의 불균형,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적대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그 어떤 현금성 지원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저출산 대책 논의 과정에서 흘러나온 일부 아이디어들, 예를 들어 ‘아이 셋 낳으면 군 면제’라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발달이 빠르니 여자아이를 1년 조기 입학시키자’는 식의 발상은 문제의 본질을 얼마나 피상적으로 접근카지노 게임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발상은 성차별적일 뿐 아니라 저출산의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문화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한, 그야말로 인공지능 챗봇의 답변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정부도 사회도, 이 문제 해결 과정에 있어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사회 철학의 부재와 깊은 젠더 갈등, 이를 방관하거나 심지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기득권 세력에 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질문이 잘못되었거나 아예 질문을 하지 않는데, 좋은 답이 절로 생길 리 없다. 진정한 해법은 생색 내기 좋은 단순 현금성 지원을 넘어, 성 평등 문화 실현,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노동 환경 조성, 과도한 경쟁 완화,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사회적 노력과 철학의 공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이준석과 나경원 의원을 비판하면, 어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를 끌어와 화제를 돌린다. 그래서 ‘자칭’ 애국 보수라고 주장하는 기득권 세력이 권력의 주인인국민의 신뢰를 배반하고, 군을 동원해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며, 자신의 비리를 덮고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걸 진정 옳다고 주장카지노 게임 것이냐, 하고 물으면,그들은 또다시 답을 피하고, 문재인과 이재명은 그보다 더 나쁘다고만 말한다. 헌법이 살아있는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에 내란보다 더 나쁜 권력자의 죄가 있는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깨끗한 사과 한마디, 결과에 대한 승복이 있어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을 텐데 내란우두머리가 12.3 내란 이후 넉 달이 넘도록 국민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으니 그를 지지하는 사람카지노 게임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심을 느낄 리 없다. 과연 이런 사람들과 토론이 가능한가? 관용과 자제의 미덕으로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가? 이것이 요즘 내가 껴안고 있는 큰 질문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2000년대 초반엔 친한 남자친구카지노 게임 군대만 가면 조금씩 변했다. 대학가엔 ‘방석집’ 골목이 있었다. 군대 가기 전, 혹은 휴가를 나온 남자친구카지노 게임 꼭 들르는 곳이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 내 또래 친구들은 남성 중심적이고 때로는 여성 비하적인 문화가 스며있는 군대에서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피해의식의 씨앗을 가지고 나왔을 수 있다. 물론 모든 군 경험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 연구나 사회 비평에서 지적하듯, 징병제 하의 군대 경험이 특정 남성 집단의 정체성 형성과 맞물려, 사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여성 혐오로 표출하게 되는 하나의 ‘맥락’을 제공했을 수 있다는 분석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 씨앗은 사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먹고, 여성 혐오로 자랐다.

예전에 한 토론회에서 한국의 젠더 갈등을 해결하려면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급격한 인구 감소 현실을 고려해도 징병제를 고집카지노 게임 건 무리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원카지노 게임 사람이 입대해 좋은 혜택을 받으며 전문성을 키우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 국방 효율성뿐 아니라 ‘남성만의 희생’이라는 논란을 줄여 젠더 갈등 해결의 물꼬를 트는 아주 기본적인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여성 징병제 시행에도 나는 동의한다.


이재명 대표가 이번 대선 공약으로 ‘선택적 모병제’를 조심스럽게 시작해 보고 싶다고 하니 다행이라 여긴다. 나는 민주당원도 아니고 어느 정당 소속도 아니다. 나에게 더불어민주당은 중도 보수 성향을 가진 당이다. 나는 민주당보다 덜 눈치 보고, 보다 진보적인 정책을 내놓는 당을 찾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그들의 공간이 없기에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보고 지지 후보를 고를 뿐이다. 지금까지 이재명 대표가 가장 대한민국의 현실 인식을 정확하게 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후보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그리고 이재명이 만약 대통령이 되어 일을 잘 못 하면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다. 민주당은 때론 어리석고 오만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눈치와 염치가 있고, 잘못하면 사과라도 한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을 위해 싸우겠다


안다. 이러면 또 누군가는 나를 ‘좌빨’ ‘빨갱이’라 공격할 거라는 걸.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 모두 안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조금만 다르면 ‘좌빨’ ‘빨갱이’라고 공격카지노 게임 사람들도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저,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의도적으로그 편에 서기로‘선택’한 것이다. 스스로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그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이 숨어 있다. 그래서 더 폭력적이고 혐오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센 척하며 상대를 공격한다.

나에게 인문학책 말고 경제학 서적이나 읽으라는 댓글의 주인공에게 말하고 싶다. 그대도 집에서 게임만 하지 말고, 용기를 내 세상으로 나가 진짜 사람들을 만나 보고, 자신이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걸 배우고, 그럴 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해주고,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해도 괜찮은 혐오 커뮤니티를 박차고 나와 제각기 다양한 생각을 하며 사는 보통의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법도 배우라고. 그리고나는,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발언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볼테르의 말처럼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의견을 표현할 당신의 권리를 지지하겠다고. 그래서 수많은 시민카지노 게임 광장에 나와 혐오와 폭력 없이 오직 빛으로만 계엄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킨 거라고. 한구석에서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공격할 만만한 상대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켠 당신의 자유와 권리마저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러니 함께 하자고. 혐오와 증오와 피해의식을 내려놓고, 함께 하자고.


2025년, 인간이 관광으로 우주에 가는 AI 시대다. 나는 낡은 이념의 틀에 갇힌 말장난에 주눅 들어 나의 진보적 사상이나 신념을 감추거나 목소리를 낮추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관심이 없다. 그러니 용기를 내도 괜찮다. 나는 진실의 빛을 찾아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과 함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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