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그 자체로 멋져!
299, 300, 301, 302, 303, 304……
78, 79, 244, 236, 81, 93, 249……
이 숫자가 무엇인고 하니,
일열은 지지향 서가에 꽂혀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넘버나열이고
이열은 우리 집 서재에 꽂혀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넘버나열이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양식.한마디로 내 마음의 오브제 컬렉션 냉장고, 쿠팡 버금가는 물류창고, 대감마님의 양식곳간이 나에게는 서재의 책꽂이이다. 특히, 세계문학을 좋아하기에 민음사 전집이 꽂혀있는 칸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 전, 집 구조를 다시 이리저리 바꾸는 재미를 오랜만에 만끽하던 차에(몇 주 전 글에도 올렸듯이) 서재도 나의 레어더망에 걸려들었다. 그래서 기존 배치를 바꾸다 보니, 책꽂이도 대대적인 자리이동을 하게 되었다. 다른 책들은 책의 두께와 크기 또는 종류별로 자유롭게 꽂았다.
민음사 전집은 원래는 대체로 번호순으로 꽂혀있었다. 그런데 서재 물건을 다 바닥에 꺼내어 재정리를 하다 보니 민음사 책들이 다 섞여버렸다. 버릴 것과 다시 정리할 것 등을 구분하고 책상 배치를 바꾸다 보니 한 나절이 지나버렸다. 나와 남편은 점점 지쳐갔다.
이제 남은 것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 전집.
번호가 뒤섞인 책들이 작은 책동산이 되어 서재 바닥 가운데에 동그랗게 쌓여있다.
잠시 고민. 아마 두 시간 전만 되었어도, 책들을 번호순으로 찾아서 꽂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남편도 배터리가 몇 프로 안 남은 상황. 배꼽시계는 꼬르륵꼬르륵 울려대기에.
나는 결심한 듯 말했다.
“일단 그냥 꽂자.”
남편도 전혀 이의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는 마지막 힘을 내어 손에 잡히는 대로 빈 책꽂이에 책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둘 다 워낙 손이 빠르다 보니, 순식간에 삼백여권의 책이 빼꼭하게 책꽂이에 다 꽂혔다.
184, 185, 16, 17, 15, 59, 227…… 앗, 잠시 다시 고민. 뭔가 마음이 좀 불편하데. 번호순으로 정렬을 해, 말아! 해, 말아! (십여초 동안 책꽂이를 째려보며 고민에 빠졌다)
“됐어 됐어. 충분해. 아, 배고파 이제 밥 먹자!”
분명 그 순간에는 ‘다시 정리하면 되지’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름 내 마음의 협상을 본 것이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여전히 우리 집 서재의 책꽂이에는 무질서, 무순서인 상태로 자유분방한 민음사친구들이 모여있다.
마치 초등 1학년과 6학년이, 초등 4학년과 대학생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처럼. 아마도 그렇게 모인 첫날은 ‘앗, 너는 누구야?’ ‘형아는 왜 내 옆에 있어?’ 하면서 얘네들이 어리둥절 해 했을 것 같다. 미안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친구들!
그리고 오늘, 주말이라 우리 가족의 놀이터인 지지향에 왔는데 번호순으로 가지런히 꽂혀있는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보니, 우리 서재의 민음사 녀석들이 떠올랐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무질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 무순서
공공시설과 사적시설
대비되는 단어의 짝들이 떠오른다. 우리 집 서재의 민음사 책꽂이를 바라보듯이, 지지향 민음사 책꽂이를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일단 내 마음에게 물어보았다.
“마음이 불편하니?”
“다르다고 느껴지니?”
“좋고 나쁨이 있는 것 같니?”
내 마음이 대답했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아.”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아.”
“좋고 나쁨이 없는 걸.”
그리고 마음이 또 말한다.
“분명한 것은 행복하다는 기분이야. 지금 이 책꽂이를 바라볼 때도, 우리 집 서재의 책꽂이를 바라볼 때도 같은 기분이라는 거야.”
알았다. 존재의 의미. 그 본연의 핵심에 집중하면 부수적인 것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지 않는다는 것을.
마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숯검댕이가 묻어 있다고 해서 그 사랑이 감해지지 않듯이.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쿠키가 키친타월에 싸여 있다고 맛이 변하지 않듯이.
내가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존재의 핵심에 집중하는 것.
흔들리지 않는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
그 자체로서 충분히 만족하는 것.
아마도 우리 집 서재의 민음사 친구들은 한동안 그렇게 무질서하게, 무순서 그 자체로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될 것 같다. 너희들 이제 서로 낯설지 않지? 잘 지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