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엄마와 퇴근 통화를 한다
“엄마, 오늘은 좀 쉬고 싶어서 센터에서 일찍 나왔어.”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결혼 이후부터 지금까지 늘 퇴근길에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한다.벌써 햇수로 25년이 넘어가니, 세상에! 얼마나 많은 퇴근 통화를 엄마와 했을까.
솜털 보송보송 한 새신부 적부터 나는 엄마와 어떤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을까. 팔십이 훌쩍 넘으신 엄마는 그 당시는 젊으셨겠구나. 엄마는 또 어떤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들을 딸에게 하셨었을까.
그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도 늘 한결같이 변치 않는 우리 엄마의 말씀.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괜찮아 괜찮아”
“엄마, 오늘도 속이 너무 울렁거려. 도대체 입덧은 얼마나 오래가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그 어린 신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또 세월이 흘러 흘러 갓난쟁이 딸은 벌써 어른이 되었다. 이제 나는 중년이 되었고, 엄마는 노인이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도 나도 많은 고개고개를 넘고 또 넘어왔다. 그 여정 속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와 나의 퇴근 통화는 계속되었다. 마치,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이 계속되듯이.
퇴근 시간이 일정하다 보니, 퇴근 통화 시간도 늘 비슷하다. 그러나 계절마다 하늘은 다르다. 여름에는 아직 하늘 어딘가에 해가 머물 때도 있고, 어느새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석양의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 때도 있고, 추운 겨울에는 캄캄한 밤하늘의 별이 반짝 일 때도 있고.
그렇게 계절이 오고 가는 가운데에 엄마와의 퇴근 통화는 계속되어 왔다.
어찌 매일매일이 ‘맑음’만 있었겠는가. 사람 살아가는 것이 참, 동화 같지만은 않다 보니 어떤 날은 맥이 쑥 빠진 채 집으로 가기도 했었겠지. 어떤 날은 마음의 복잡함이 미처 정리되지 않은 채 무거운 발걸음을 걷는 날도 있었겠지.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분주함에 동동 거리며 빠른 맥박을 추스르지 못한 채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책임으로 종종거리며 집으로 달려가는 중이었겠지. 그럴 때도 나는 엄마와 퇴근 통화를 했었다.
많은 이야기를 엄마와 나누었을 것이다. 서로의 하루 안부를 묻는 반복적인 이야기와 수많은 우리의 대화들. 그러나 절대 변치 않는 엄마의 말씀.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괜찮아 괜찮아”
그러고 보니 엄마는 늘 ‘잘했어’와 ‘괜찮아’를 두 번 반복하신다. 가만히 떠올려보니, 특히 내 마음에 뭔가 좀 확신이 안 들었을 때, 내 의지와 상관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결정이나 행동을 이미 하고는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엄마에게 슬쩍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엄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괜찮아 괜찮아 ‘라고말씀하신다.
사랑의 묘약. 안심의 묘약. 엄마의 묘약이다.
잘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괜찮은 게 아닐 수도 있다.그러나 엄마의 지극히 주관적인 자식사랑의 잣대로는 우리 딸이 한 것은 다 잘했고, 다 괜찮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엄마도 이미 다 알고 계신다. 다 잘한 것은 아니고, 다 괜찮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엄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것이다. 딸에게 지금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엄마는 아시기 때문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잘했어 잘했어’ ‘괜찮아 괜찮아’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고, 눈빛이고, 가슴이다. 엄마는 엄마가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사랑과 위로를 그 두 번 반복하는 말에 꾹꾹 담아 보내는 것이다.
“오늘 할머니들하고 공원에서 햄버거 사서 먹었어. 내가 샀지.”
“엄마,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오늘도 내일도 엄마와 나는 통화를 계속할 것이다. 어떤 날은 엄마가 나에게, 어떤 날은 내가 엄마에게 꼭 두 번씩 반복하며 이 말을 하겠지.
“카지노 게임 카지노 게임.”
“괜찮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