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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Feb 17. 2025

이자가 아니라 인생을 키우는 카지노 게임

은행에서 주는 이자보다 더 값진 카지노 게임이 있다면?


IMF시기, 정기 예금 금리가 10~15%에 달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 시기를 통과해온 부모님 세대는 '저축'만큼 가성비 좋고 안전한 투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 대출' 같은 단어는 부정적인 것, '저축, 월급'은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진 것도 그런 영향이 있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첫 사회생활을 하던 2018년. 나는 월급을 1원도 남김 없이 쓰는 쪽으로 비상했다. 그 다음 해부터는 일말의 양심과 엄마의 은근한 압박에 매달 적은 돈이지만 일정 금액을 넣으며 일시적 뿌듯함에 심취했다. 2020년 끝자락, 여러가지 계기로 경제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는 '저축'과 '절약'에 몰입했다. (경제 공부에 입문하는 보통 사람의 루트..)


많은 경제 입문서에서 입을 모아 첫 시드 머니(목돈)의 중요성을 힘주어 이야기한다. 재테크의 출발점이 저축과 절약에 있기 때문이다. 월급에서 카지노 게임 비율을 높이고, 추가로 들어오는 성과급은 받는 즉시 저금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달 쌓인 통장내역을 보며 때때로 안정감도 느꼈다. 그럼에도 자주 불안하고 조급했다. 서럽고 지치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1년을 어떻게 더 모아..'

'젊고 이쁜 시기에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중간에 크게 아프거나 사기를 당해서 겨우 모은 이 돈들이 사라지면?'

'하..남들보다 월급도 적고, 카지노 게임액도 너무 적어..'



집밥을 먹고, 계절별로 옷 구매를 포기하고, 친구들과의 만남을 멈춰도 귀여운 사회초년생의 월급으로 1년에 모을 수 있는 돈은 많아야 1500만원 정도였다. 매년 1500만원, 카지노 게임 2000만원씩 저축한다고 했을 때 연 3%씩 복리이자가 붙는다고 해도 10~13년이다. 그 사이에 눈 여겨 본 2억 짜리 집의 가격이 인상한다면? 눈을 낮춰 사던지, 카지노 게임면 또 미루는 거겠지. 나에게 돈이란 이렇게 불안한 것이었다.



저축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상황이었음에도, 가서 오지도 않을 일들과 불안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강해지려고 시작한 경제 공부였는데 마음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는 돈마저 없어진다면 나는 아예 무너지는 걸까? 내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를 나름대로 그려보면서 돈보다 더 중요한 걸 내 안에 쌓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책구절이다.


한 권의 책을 모두 쌓는다는 건 욕심이다. 한 권에서 딱 한 문장 아니, 딱 한 단어만 건져도 훌륭하다. 이렇게 마음에 쌓아두는 책구절은 사라지지 않고 복리로 계속 불어나니 얼마나 효과적인 투자인가! 그렇게 나는 정기 카지노 게임 대신 '책구절 카지노 게임'을 적기로 했다. 마음이 허기질 때, 방향을 잃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다.


기존에 친구들과 하고 있던 경제독서모임의 규칙에도 '책구절 카지노 게임'을 반영했다. 독후감 대신 책구절 카지노 게임 한 문장을 모임 전에 제출하기로 했다. 선정 도서를 읽고 밑줄과 함께 본인 생각을 단체 채팅방에 올리는 친구도 있었고, 따로 읽은 에세이, 시 한 구절을 나누어주었다. 같이 쌓는 책구절 카지노 게임에는 '연대'라는 보너스 복리까지 더해졌다.


어떤 날은 통장을 보며 안도하고, 어떤 날은 책 속 문장을 보며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은행 이자는 연 3%지만, 책구절의 이자는 무한대였다. 책구절 하나가 때로는 삶을 바꾸기도 하니까.


몇 년 동안 쌓아온 책구절 카지노 게임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진다. 마음이 약해질 때도 믿는 구석이 있어 든든하다. 지금 당장 카지노 게임이 쉽지 않은 상황이거나 카지노 게임을 해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친구가 보이면 은근슬쩍 책구절 카지노 게임을 권한다. 이자가 아니라 인생을 키우는 카지노 게임의 기쁨을 만끽하기를 바라며.


아, 책구절 카지노 게임을 누군가에게 나눌 때는 복리가 배가 되니 참고하시길!






인간의 마음은 말에 나타나고 말에 정이 없으면 남을 감동시키거나 바꿀 수 없다. (중략) 우리는 어떤 사람이 말을 잘하거나 논리적이라고 존경하지 않는다. 그에게 진정성이 보일 때, 그의 생각과 뜻이 나와 달라도 존중을 하게 된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이 보내는 냄새다. (김승호, 『돈의 속성』, 69쪽)


잃지 않고 천천히 차곡차곡 버는 것이 가장 빨리 많이 버는 방법이다.(같은 책, 86쪽)


단언컨대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 물건을 부주의하게 매번 잃어버리는 사람, 작은 돈을 우습게 아는 사람, 저축을 하지 않는 사람, 투자에 대해 이해가 없는 사람은 절대 부자가 되지 못한다." (같은 책, 95쪽)


앨런 그린스펀은 "글을 모르는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무섭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책, 101쪽)


- 2022년 7월에 쌓은 책구절 카지노 게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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