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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의 뜰 Mar 28. 2025

고인 물

첫 번째


조용하던 사무실이 부산스러워졌다. 카지노 게임 모니터 아래의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58분. 쓰고 있던 메일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I look forward to your prompt reply. Thank you.


전송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들어 사무실 끝쪽 4팀 박대리를 바라보았다. 연경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키자 박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경은 컴퓨터를 끄고 핸드폰을 챙기고 컴퓨터 본체 옆에 벗어놓은 구두로 갈아 신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뒤따라 갔다. 연경의 회사 구내식당은 이 건물 15층에 위치해 있다. 7층에 있는 연경의 사무실에서 엘리베리터를 두대 올려 보내고 그제야 연경은 박대리와 뒤이어 사무실에서 나온 다른 남자 직원들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점심 2팀은 나가서 먹는다고 하네요.

해외사업부 소식통인 박카지노 게임가 식판과 식기를 꺼내며 연경에게 이야기했다

아, 그래서 하나 씨랑 이 주임님이 안 보이는군요.


그 시간 사무실 한쪽 샘플실에선 지은을 포함한 여직원 네 명이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펼쳐 먹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은도 같은 팀 남자 직원인 박대리, 김민준 사원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었다. 그러나 이번 주 월요일부터 아침마다 지은은 엄마에게 도시락을 부탁해서 사무실 여직원들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여직원 중에서 자취를 하는 연경만 구내식당에서 고정적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2팀 하나는 남매처럼 지내는 2팀 이 주임과 구내식당과 외부 식당을 오가며 그날그날 입맛에 맞춰 메뉴를 정하곤 했다.


지은은 검은색 정장바지에 어제 산 블라우스를 입고 신발장 전신 거울 앞에서 서 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느낌이 든다. 첫날이니 바지보단 치마가 낫겠지 싶어 무릎 위로 올라오는 미니 스커트를 매치해서 입어보았다. 나쁘지 않다. 내일 아침에 이 베이지색 치마에 블라우스 그리고 상아색 카디건을 걸치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의자 등받이에 살며시 걸어 놓았다. 자기 전에 붙일 마스크팩도 잊지 않고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서.

다음 날 아침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지은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창가 쪽에 자리한 부장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부장 옆에 어떤 여자가 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늘색 재킷에 감색 미디스커트를 입은 같은 부서 새로운 직원이었다.

어, 지은 씨, 인사해. 여기도 오늘 새로 온 1팀 정연경 카지노 게임.

자리에서 일어난 카지노 게임 지은과 동시에 머리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혼자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좀 낫겠지?

어색한 분위기를 애써 지우려는 부장의 말에 카지노 게임 엷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고 지은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무실로 속속들이 들어오는 부서 사람들은 부장님 옆에 앉아 있는 낯선 얼굴들을 힐끔 대며 쳐다보았고 부장은 8시 30분이 되자 부서 사람들에게 이 두 사람을 일일이 소개해주었다.

여긴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될 1팀 미주 현지 담당 정연경 카지노 게임, 여긴 4팀 영업 지원에 문지은 사원.

1팀 팀원들에게 인사시키고 이어 옆 2팀에도, 그러고 나서 휑하니 비어있는 3팀으로 향한다.

여긴 3팀 자리고 3팀은 중국 담당인데 과장이랑 주임 둘이 지금 중국 출장가 있어서. 여기 미령 씨가 영업 지원 하고 있고.

때마침 중국 업체와 통화를 하고 있던 미령은 조금 신경질 적으로, 막힘없는 중국어로 수화기 너머의 상대를 책망하듯 통화를 마쳤다.

어서들 인사하지.

안녕하세요. 1팀에서 일하게 된 정연경이라고 해요.

연경이 미령에게 미소 띤 얼굴로 먼저 인사를 하자 미령도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려 엉거주춤 앉아 방금 전 통화할 때의 호전적인 말투 대신,

아, 안녕하세요

라고 수줍게 인사한다. 뒤이어 지은은

4팀 문지은이에요

라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여기는 4팀이고 아시아 담당. 아직 팀장은 공석이고 박 카지노 게임랑 김민준 사원이 있는데 오늘 민준 씨는 예비군 훈련이라, 이제 지은 씨는 여기 앉고 박 카지노 게임 잘 도와서 한번 해봐요.

연경과 지은이 동시에 박 카지노 게임에게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를 건넸다.

정 카지노 게임님이 저랑 동갑이라고 들었어요.

1팀에서 3팀까지 거쳐온 무언의 목례 대신 4팀 박 카지노 게임는 서글서글한 낯으로 연경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아, 그러세요.

한꺼번에 여직원 두 분이 오시니 저희 사무실이 더 환해졌네요, 그쵸 부장님.

야, 박 카지노 게임 그럼 나머지 여사원들이 뭐가 되냐. 어서 일들 해.

늘어난 살림살이를 흡족하게 바라보듯 김 부장은 자리로 되돌아가고 지은도 자리에 앉자 카지노 게임 사무실 복도를 조용히 걸어서 1팀에 있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1팀 신 과장이 서류 파일 몇 개를 챙기고 연경을 불렀다.

정 카지노 게임 잠깐 이리 와 봐요.

조금 작은 체구에 옅은 갈색 눈과 짙은 속눈썹이 꽤 인상 깊은 얼굴의 신과장이었다. 정 대리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변성기를 지나고 있는 중학생 남자아이 목소리 같아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 생각했다. 약간의 쇳소리가 새어 나오는 목소리로 최대한 사무적이게 신 과장이 연경에게 말했다.

아까 부장님께서 잠깐 설명해 주신 대로 여기 최유라 대리는 북미 교포 시장을 맡고 있고 정 대리는 제가 임시로 맡아하던 북미 현지 시장을 이제 하면 돼요. 공유 폴더에 파일들 다 넘겼으니까 확인해 보고, 아 문제는 캐나다 시장인데 작년 말에 선적한 건들이 라벨 문제가 있어서 올 초까지 통관이 안되었어서. 아무튼 좀 골치 아파요. 관련 메일들 넘겨줄 테니까 살펴보고 모르는 거 있으면 이야기해요.

네, 알겠습니다.

카지노 게임 넘겨받은 자료들을 최대한 한숨을 참아가며 보기 시작했다. 상위 폴더에서 하위 폴더로 들어가 깊숙이 숨겨진 자료들까지 검토해 보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웃룩 메일의 스크롤바를 한참 내려 읽어 오르고 있었다. 모니터 앞에 꼼짝 않고 앉아, 읽고 또 읽어가며 메모해 두었지만 진행 상황을 파악하기엔 아직 역 부족이었다.


묵직한 공기로 침체된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지며 직원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니 12시다.

부장은 박 카지노 게임에게 점심 어디서 하겠나라고 물어보자 박 카지노 게임는 구내식당으로 가시죠 하고 박 카지노 게임는 지은 씨와 부장님을 챙겨 나섰다. 신 과장도 주섬주섬 외투를 챙겨 따라나서고 유라 카지노 게임는 어떻게 하겠냐는 말에 나랑 주연이, 미령이는 도시락 싸왔지라며 당연한 걸 묻느냐는 투로 뻔하게 대답했다.

정카지노 게임님 챙겨서 잘 먹고 와, 신과장님.

신 과장과 동갑인 최카지노 게임는 신 과장의 직함에는 님을 붙이고, 말미는 반말을 해 가며 신 과장과 말하는 게 연경의 귀에는 처음에 어색하게 들렸다.


여직원 셋을 제외한 부서 식구 전체가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구내식당에 도착하자 박 카지노 게임는 사원증으로 식비 결제하는 것, 식판의 위치와 퇴식구의 위치등 지은과 연경이 알아야 할 사항들을 사전에 살뜰히 설명해 주었다.

식판을 들고 대기하면서 카지노 게임 지은에게 할 만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은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 네.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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