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수혜자는 당근마켓일까?
유튜브에 명품에 관한 영상의 댓글을 보면 명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쓰자는 글을 종종 본다. 장인이 한땀한땀 제작한다는 것도 옛말이고, 개발도상국가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단가를 낮춰 제작되면서 dignity(품위와 고귀함)를 어필한다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치품에 대한 개념은 VVIP(재벌)들에겐 어차피 일상룩이므로 사치품도 명품도 아닌, 내가 늘 착용해왔던 것이므로 새로울 게 없는 제품이었다면 명품이 명품으로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 취하는 상류층에게는 여전히 나의 가치를 보여주는 제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값을 주고 사지 않지 않을까. 값에는 원하는 욕망이 투여되며, 욕망이 클 수록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은 커진다.
이수지의 영상이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봤고, 대치동 엄마들이 어떤지는 몰라도 제이미맘은 진짜 대치동에 있을 것 같은 이미지였다. 댓글에는 진실을 알 수 없는 인증 댓글(대치동 학원 강사, 학교 선생님, 대치동 주부 등)이 올라왔고, 영상과 더불어 이러한 인증 댓글을 살피는 재미도 쏠쏠했다. '대치동 엄마들이 진짜 저렇다고?' 희화화라는 것은 풍자(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 - 네이버 국어사전)와 해학(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 - 네이버 국어사전)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찔리는 사람이 있다면' 풍자이고, 다 같이 웃을 수 있다면 '해학'이 아닐는지. 그런 면에서 당근마켓에 올라온 많은 몽클레어 패딩은 제이미맘이 얼마나 많은 대치동 맘을 '찔리게' 했는지 알 수 있다.
대치동의 제이미맘들은 왜 찔렸을까? 왜 몽클레어를 더 이상 입기 싫어졌을까? 갑자기 당근마켓은 몽클레어 판매숍이 되었을까? 난 대치동에 살지 않고, 아이들 교육과는 거리가 멀며, 교육열 강한 친한 엄마도 없기에 이수지의 영상을 보며 '이수지는 대단한 창작자이자 연기자'라는 생각을 했을 뿐, 이수지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이렇게 파장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이건 마치 노스페이스 패딩에서 범고래 운동화에 이은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패션 시리즈를 보는 것 같달까. 한 10년 전쯤 옷장 코칭을 하다가 의뢰인이 잘 안 입게 된다는 패딩을 봤고, 핑크 자주색(그 당시 우리 나라에 잘 없던 패딩 색)이 의뢰인에게 잘 어울리지 않기에 그럴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그 당시 40만원이라는 가격을 듣고 깜짝 놀라서 기억한다. 그 패딩의 이름은 '몽클레어'.
유행에 동참하는 이들의 심리는 안정감이다. 유난히 개성화와 개인화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우리 나라에서 패션 역시 남들과 나를 구분하거나 동일시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교육열 강한 대치동(물론 몇 군데 더 있지만 다른 동네 특성은 모르므로)의 제이미맘들의 몽클레어 패딩은 그들의 두려움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자식을 잘 키우고 있는 게 맞을까?', '옆집 에이미는 벌써 고등 수학을 배운다는데', '영어/수학/국어/미술/첼로/발레/회화 뭘 더 시켜야 애가 뒤쳐지지 않을까.'와 같은 엄마로서의 정체성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이수지의 영상에 나온 제이미맘의 특성들(몽클레어 패딩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군에 학며(학군+스며들다)들기 위해서 최대한 그 무리에 비슷한 외모로 나를 포지셔닝하는 것. 그래야 내면의 두려움이 다른 생각을 못하니까.
아마 당근마켓에 몽클레어 패딩을 올린 제이미맘들은 '나도 이 정도는 입어줘야지.'의 마음으로 몽클레어를 사 입었던 것 아닐까. 같은 가격 대비 몽클레어가 디자인도 예쁘고 입을만하다는 글을 봤다. 솔직히 그건 인정한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을 때 만만한 금액과 디자인의 패딩이라는 것. 하지만 내가 정말 몽클레어가 마음에 들고 나에게 잘 어울려서 입고 다닌 이가 있다면 당근마켓에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그녀의 몽클레어는 제이미맘의 몽클레어와는 근본적 욕망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나도 이 대열에 합류해야지, 이 정도는 입어줘야지, 무시당하지 않기에 제일 만만한 게 몽클레어라서 입었던 이들은 제이미맘을 보고 뜨끔했을지 모른다. 이수지 영상이 뜨기 전에는 '너도? 나도!' 하며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을 격상시켜준 아이템이 이 영상 하나로 '대치동 맘들의 부끄러운 획일화된 패션'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러자 옷장 속 몽클레어가 부끄러워졌다. 이걸 입고 나가면 나도 획일화에 빠진 맹목적(맹모 아님) 교육열의 제이미맘처럼 보이겠지? 하는 마음에 너도나도 당근마켓을 열었다.
예전부터 교육열은 있어왔고 우리 나라의 대학입시 제도가 크게 바뀌지 않는 이상 교육열은 옅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다양한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고 입시 기계화 시키는 엄마들의 교육열도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이미맘 영상을 통해 그냥 웃고 대치동 엄마들을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 집단 몽클레어의 문제는 패션의 획일화처럼 단순한 문제이기보다는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심리적 두려움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무시받고 싶지 않은 마음, 이 무리에서 소외받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 마음에서 자유로울수록 동질감의 패션에서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잘 사는 동네일 수록 그 사람이 입은 옷의 로고나 브랜드가 한 마디 말보다 강하게 작용하기도 하므로(10년 전의 나같은 사람에게 아무리 몽클레어 패딩을 보여줘봤자 그 패딩이 그렇게 비싼 패딩인지 알 리 없다)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외모 가치관이 아주 단단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몽클레어 패딩의 당근마켓 점유율의 상승은 수많은 제이미맘들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고, 그 역린은 패션으로 감춰진 두려움과 불안함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명품을 사는 이유는 단단한 내면을 키우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돈으로 사는 건 쉽기(물론 돈 많이 버는 것도 쉽지는 않다) 때문이다. 성형도 비슷한 이유다. 품위와 자존감을 키우기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지만, 얼굴을 고치는 건 돈과 수술의 고통을 참아낼 욕망만 있다면 단기간내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고나 브랜드가 눈에 띄는 옷을 입는 건 (그 로고나 브랜드의 옷이 얼마나 비싼가를 아는 사람에 한해서는) 개인의 재력을 한 방에 보여주므로 무시당하지 않기 딱 좋은 처세인 건 맞다. 하지만 이수지는 그걸 무너뜨린 것이다. 그 재력이란 것이 얼마나 허울인지, 개인의 정체성이 아닌 고착화된 이미지에 수렴하는지.
사우나를 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는데 할머니 셋이서 내복을 입으신다. 할머니 한 분이 "어? 내복 디자인이 다 다르네!"하니까 다른 한 분이 "똑같으면 로보트 같아."라고 말씀하신다. 기똥찬 답변이다. 남들한테 보일리 없는 내복마저도 똑같으면 로보트 같다는 그 대화를 듣고 나니, 제이미맘은 로보트였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교육열에 불타 아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실어나르는 무적로보트맘. 그녀들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이해하진 못하지만(아이를 안 키우므로) 이번 계기로 그녀들의 옷차림에 대한 선택권이 과연 자신에게 있었는지 묻고 싶다. 더불어 카지노 게임라는 비싼 껍데기가 이 일을 계기로 또 어떤 브랜드로 옮겨갈지 궁금하다.
글쓴이
옷경영 코치 이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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