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살면서 신부님이 극대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초등학교 때 외가의 영향으로 성당을 다닌 적이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선 냉담자가 되었고 결혼 후에는 배우자의 영향으로 다른 종교를 믿고 있지만 어쨌든 당시엔 그랬다.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아서 세례명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나, 동네 성당에서 어린이 미사를 보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 순간이 있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성당 안은 시끌벅적했다. 초등학생들 수백 명이 모였으니 조용할 턱이 있을 리가 없다. 신부님은 미사를 집전하고, 엄숙하게 기도를 하고, 드디어 신부님의 강론 시간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장난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신부님이 갑자기 대 포효를 하셨다.
"야!!! 조용히들좀 하라고!!! 뭐 하는 짓들이야!!!!"
그렇게 그 날의 미사는 신부님의 버럭 외에 별다른 강론 없이 후다닥 마무리지어버리고 말았다. 언제나 인자할 것으로 보였던, 신부님의 극대노는 열두 살의 내게 꽤나 충격이었다. 신부님도 화를 낼 줄 아시는구나.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부님인데 저렇게 화를 내도 되는가? 싶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평생을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인간적 욕구를 잊고 살아가고자 마음먹은 성직자조차 이성을 잃게 만들 정도로, 아이 돌보기는 어렵다. 평소 화라고는 낼 줄 몰랐던 사람들도 아이를 낳고 나서는 자기 인격의 바닥을 확인했다고 토로할 정도로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매번 인내의 끝을 시험하는 일이다.
나 역시 수십 년이 지나 엄마가 되고, 그 날의 신부님 못지 않은 포효를 아이에게 내지를 때가 종종 있다. 아이 낳기 전만 해도 나는 절대 아이에게 큰 소리 내지 않고 키우려고 다짐 또 다짐했다. 오죽하면 내 안의 심리적 문제가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서 임신기에 심리상담까지 받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수시로 언성을 높였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행위가 결코 좋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자꾸 화를 내게 되는 건, 아이라는 존재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의 '끝판왕'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율성을 잃을 때 이성을 지키기 어렵다. 하물며 기본적인 욕구조차 채우기 어려운 카지노 게임를 하다 보면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쌓여서 더욱 예민해진다.
그러기에 카지노 게임란 행동은 그 어떤 종교적 수행 못지 않게 사람을 급속도로 성장시키는, 어찌 보면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행 과정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아직 부족하긴 하나 햇수로 6년간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적지 않게 변화해 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종교 경전들은 가르친다.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말고, 나의 욕심대로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지 말며, 고집을 내려놓고 신(또는 운명)의 뜻에 복종하며,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고.카지노 게임를 하면서 나는 이러한 수행의 격언들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갓 태어나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기를 돌보다 보면, 나의 욕구는 저절로 미룰 수밖에 없다. 먹고, 자고, 쉬고,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것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흡사 종교 수행자가 금욕과 금식과 묵언수행을 하는 것에 준하는 난이도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를 절대적으로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 한 일반적인 부모들은 적어도 일이년 간은 모든 욕구를 절대적으로 억제하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을 필수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
내 욕심대로,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카지노 게임를 키운다는 것은 돌발상황의 연속이다. 아무리 완벽한 여행 계획을 짜 놔도 당일에 카지노 게임가 열이라도 나면 올 캔슬이다. 제아무리 워커홀릭 부모라도 카지노 게임가 부모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면 결국 일을 잠시 내려둘 수밖에 없다. 심지어 카지노 게임가 좋아할 만한 곳에 데려가도 막상 카지노 게임가 거부해서 그냥 허탕을 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웃어넘겨야 한다. 상대는 아직 카지노 게임니까. 돈이 얼마가 들었든 다른 일이 얼마나 시급하든 알 바 아니다. 나 역시 내 계획대로 뭐든지 다 이뤄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를 키우면서 다양한 돌발상황을 맞닥뜨리다보니 융통성이 길러졌다. 그 과정에서 애초에 내 계획대로 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님을 배웠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어야만 최선이 아니며, 때로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이 모두에게 더 좋을 수도 있음을 알고 겸손함을 배운 것이다.
나라는 아집에서 벗어나, 나의 의지와 노력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가치관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가 돌까지 나는 갖은 노력을 하며 아이를 '카지노 게임서' 대로 키우려고 애썼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발달 지연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오르고 열심히 일하면 연봉이 인상되는, 인풋과 아웃풋이 일치하는 세계관 속에서 살아 왔다. 하지만 카지노 게임는 그렇지 않았다. 인풋과 아웃풋이 반드시 일치하는 세계에서 살아왔던 나는, 카지노 게임를 하면서 '나'라는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세상에는 인간이라는 미미한 존재가 애쓰는 노력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훨씬 더 큼을 알게 됐다. 그렇게 멀리했던 종교생활을 다시 하게 되고, 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루하루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까지는 내 몫이 아님을 마음 깊이 새겼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삶의 자세는 나를 더 자유케 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세계관은 반대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려움이 다 내 책임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결과가 다 개인의 탓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금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노력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도록 했다.
평범한 일상에 마음 깊이 감사하게 됐다. 임신하는 순간부터 출산, 카지노 게임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확률로 사건사고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주변에도 유산이나 사산, 아이의 발달 문제로 고통을 겪는 가정이 너무 많다. 나 역시 아이가 어릴 때 발달지연 판정을 받고 눈물로 밤을 지샌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면서, 뛰어난 영재가 아니더라도 그저 평범하게 잘 자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 내 아이뿐 아니라 나 자신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다 그런 기적의 소산물이다. 그렇기에 가끔 악행을 저지르거나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이들의 소식을 들을 때는 더할 수 없이 슬퍼진다. 저들 역시 기적 속에서 태어났고, 사랑받아 마땅했던 아기들이었을텐데 싶어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아이'에 대한 사랑을 경험하는 것.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힘든 카지노 게임의 과정을 통해 아이에 대한 사랑이 성장하면서, 종교 경전에서 말하는 절대자(신)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추상적으로나마 간접 경험할 수 있게 됐다. 매일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경이로움을 확인하곤 한다.
부족함 많은 엄마지만 일과 카지노 게임 속 시간을 쪼개어 더 건강한 엄마가 되려고 운동도 하고, 명상도 꾸준히 하면서 최근에는 '버럭'하는 횟수도 크게 줄었다. 명상은 편도체를 안정시켜 분노의 빈도를 크게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 역시 명상을 본격적으로 해 온지 약 1년여가 됐다. 아직 초보자 수준이지만 아이가 "요즘은 엄마가 화를 안 내"라고 하는 걸로 봐서 효과는 분명히 있는 듯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던 카지노 게임의 과정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를 가장 크게 성장시켰던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씌워진 번식의 굴레는, 사실 절대자의 인류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