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세계가 오늘보다 평화롭기를
오랜만에 저녁에 읽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다 읽고 잤다. 오늘 읽던 책을 내일로 미루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라 삼분의 이 정도 읽었을 때 그만두려다 마저 읽은 건데 여러 번 다시 쓴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났더니 까마득한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됐다. 다 읽고도 한 시간은 지나서야 잠든 건 책이 남긴 여운이 아니라 거의 잊고 지낸 어린 날의 나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는 그날의 나 역시 일종의 괴물이었으니까.
『아몬드』는뇌 속 편도체가 보통 사람보다 더 작아서 감정, 공감을 못하는 소년이 주인공이다. 감정이 좀 무딘 게 무슨 큰 문제인가 싶겠지만 그 정도가 통증이나 위험에 대한 두려움, 피해야 카지노 가입 쿠폰는 생각까지 이어지면 복잡해진다. 자기를 위험이나 상처, 통증으로부터 보호해야 카지노 가입 쿠폰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면 사소하고 간단한, 흔한 어떤 상황들이 목숨마저 좌우하는 위험이 되는 것이다. 소년은 자신의 안위, 위험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고통, 위험, 슬픔에도 공감하지 못카지노 가입 쿠폰. 눈앞에서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죽어도 그의 감정은 동요하지 않는다. 마치 바람이 불지 않는 스노볼 속 풍경처럼 잔잔한 파문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스노볼 속 풍경도 뒤집거나 흔들면 움직이기 마련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조건 반사처럼 상황에 맞는 행동, 대응을 가르치는 소년의 엄마가 스노볼을 흔드는 손이다.
포탄은 한 번 떨어진 자리에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불행은 달랐는지 소년의 불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또 다른 슬픔이 찾아든다. 외할머니와 엄마가 묻지 마 범죄에 휘말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둥지를 빼앗긴 어린 새, 울타리를 철거당한 괴물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엇이, 공감할 수 없는 세계의 이물질 같은 존재를 살아가게 할까. 궁금하다면 읽어보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는 성인이 있다. 그와 얽힌 많은 일화 중 '구비오의 늑대' 이야기다. 구비오의 산악지대에는 늑대가 살았는데 이 포악한 늑대는 사람이건 짐승이건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두려운 존재, 괴물이다. 하지만 그런 괴물조차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감화되어 순하고 선하게 살다 생을 마감한다. 종교에 관한 일화지만 완벽한 이해자, 보호자와 소위 괴물이라 부르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하다. 늑대는 무슨 생각으로 그동안 반복했던 잡아먹는 행위, 폭력을 그만뒀을까. 무엇이 늑대의 삶을 충분하게 했을까. 애초에 늑대는 어쩌다 사람들과 마주쳤을까, 마주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몰랐던 걸까. 야생동물은 인간과 달리 허기질 때, 그 허기를 채울 만큼의 살생을 한다고 한다. 재미, 자랑, 생존이라는 필요 외의 이유로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와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공존은 없다. 우리 외의 모든 존재, 인간이 아닌 존재는 미지의 혹은 미래의 위협이므로 배제한다는 단순한 방법은 얼마나 명쾌한가.
개인적으로 모든 범죄자에게는 그만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도 그걸 하지 않는 이유를 찾는 사람들을 신뢰한다. 어떤 이유로든, 그게 병이든 원한이든 원망이든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이들은 이해의 범주 밖에 있다. 그들은 세상이 '이해 불가능한 존재'로 규정한 게 아니라 스스로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존재'다. 자기에게 소홀하므로 세상에도 소홀하겠다는 다짐이나, 세상이 자신에게 상처를 줬으니 자신도 세상을 다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겠다는 복수심에 연민이나 이해의 여지는 없다.
『아몬드』는 스스로 한 번도 원한 적 없고, 의도한 적도 없지만 일어난 불행한 관계와 갈등을 그린다. 자기의 어딘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고 굳이 이해를 구하지 않으며 다만 자신을 해치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를 세상은 가만히 두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함, 두려움 없음, 두려워하지 않음을 다름이 아닌 이상함이라고 하고 자기들 사이에서 없애려고 하면서 자기의 힘이나 권력을 인정하지 않는 걸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 자기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해서 억누른다. 저항하지 않음이 아닌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끼고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무시, 정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누가 괴물인가?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한 이해하기 어려운 한 존재인가, 우리 밖에 있는 건 함부로 하고, 배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뭉친 우리인가.
희망을 품으려고 해도 세계는 자꾸 절망으로 나아가는 듯 보일 때가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 고립된 세계에서 엔트로피(혼란)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카지노 가입 쿠폰는 법칙이 언젠가 세상을 영화 《매드 맥스》 속 폐허 혹은 《매트릭스》 속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걸까. 세계는 그런 법칙으로부터 예외, 자유로울 수 없는 걸까.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마련이라는데 그토록 이해받기를 바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건 왜일까. 어린 날의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비극, 부조리를 어떻게든 지나온 오늘, 나를 살게 한 사람들을 생각한다. 불완전한 이해라고 해도, 이해가 완전할 수 없대도,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나눴던 모든 지나간 사람들과 오늘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오늘의 우리 세계가 부디 평화롭기를.
이루어지지 않을 기도라고 해도, 기도카지노 가입 쿠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