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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Mar 27. 2025

가장 높은 영혼의 여사제(女司祭)

니나 시몬의 삶과 음악.

중고 LP를 파는 레코드점에서 한참을 뒤져본다. 이런저런 음악들이 가득 담긴 그 재킷을 보면 나 역시 음악은 거의 '음원'을 스트리밍 하는 형태로 듣고 있는 내게 LP는 이미 하나의 오브제가 되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음악을 '물성'으로 소유하는 것은 나의 끝없는 욕망 중 하나이다. 작년 여름, 도쿄 여행 중에 시부야에 있는 타워레코드에서 '니나 시몬(Nina Simone, 1933-2003)'의 LP앨범을 골라 나왔다. 음악을 듣는 스트리밍 앱에서 추천을 받아 가끔 듣긴 했어도 니나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진 않았는데,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본 이후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Feeling Good"이라는 곡 때문이었다. 찾아보니 1965년 곡. 이렇게나 오래된 소울 풀한 곡을 이제야 만나게 되다니. 쳇 베이커 다음으로 나에게는 재즈 뮤지션에 대한 강렬한 발견이었다.

카지노 게임

흑인 최초의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카지노 게임의 재능을 눈여겨보았던 피아노 선생은 가난한 카지노 게임를 도와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왔다. 195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카지노 게임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커티스 음악원'에 시험을 봤으나 불합격하였다. 카지노 게임는 스스로 흑인이어서 합격하지 못했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카지노 게임는 커티스 음악원의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음악 공부를 이어갔다. 그러나 생계는 막막하고, 흑인에 대한 차별도 심하던 시간을 살아가던 카지노 게임에게 '클래식 피아노'는 사치였다. 그리고, 사회적 한계를 알았던 것 같다. 흑인으로서, 더구나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에 대해.


부모님은 계속 피아노를 치기를 바랐지만 카지노 게임는 피아노만으로 채울 수 없었던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래'를 하기로 했다.부모님의 걱정과 눈을 피하기 위해 '니나 시몬(Nina Simone)'이라는 가명을 재즈바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인 '유니스 캐슬린 웨이먼(Eunice Kathleen Waymon)'을 버리고. 그러나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는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노래를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싶다. 사회적 한계는 안타깝지만 클래식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까 싶을 정도로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힘이 강했고, 음악성 또한 말할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빌보드 차트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하며 카지노 게임는 재즈 음악가로서의 명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카지노 게임가 노래를 하게 된 것은 그 자체로 너무도 멋진 일이었다. 남성에 버금가는 저음과, 풍부한 성량, 그리고 음 하나하나에 쏟아 내는 소울과 호흡, 목소리 톤은 독보적이고 곡에 대한 이해는 말할 것도 없는. 카지노 게임의 대표적인 곡들은 많은 악기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대체로 피아노나 브라스 밴드 등의 간단한 반주에 자신의 음성을 무심한 듯 툭 올린다. 음악의 섬세함은 카지노 게임의 손가락에서 쏟아지는 피아노가 맡는다.


노래를 하는 것으로 카지노 게임가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근원적인 한계와 뿌리에 천착했던 것 같다. 흑인으로서 받았던 부당한 대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목소리는 카지노 게임를 무대 위 '예술'만을 말하는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했다. 카지노 게임는 1963년 미국 앨라배마에서 네 명의 흑인 소녀들을 죽이고 한 명에게 부상을 입힌 교회 테러 사건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인종 차별에 대한 첫 노래 "Mississippi Goddam"을 발표한다.이 노래로 마틴 루터 킹이 연설하는 셀마에서 함께 연설을 하고 노래도 불렀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흑인 해방 운동을 펼친 말콤 엑스의 지지자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리고 카지노 게임는 자신의 출신지인 아프리카에 대한 강한 관심을 가진다. 미국인으로 살기에는 카지노 게임가 가진 혈통은 카지노 게임의 뿌리임을 강하게 자각하고 아프리카의 리듬을 자신의 음악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카지노 게임의 음악과 생각은 주위에 관심을 끌고 응원받을 일이 많았지만, 카지노 게임의 남편과 소속사에서는 흑인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카지노 게임도,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자 하는 카지노 게임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특히 카지노 게임의 남편은 카지노 게임에게 아주 오랫동안 폭력을 일삼았고, 카지노 게임는 남편과 오랜 애증의 관계를 이어간다. 인권운동을 이어가는 카지노 게임에게 '돈이 되는' 공연과 음악은 멀어져 가고, 따라서 카지노 게임가 벌어들일 수입도 기대보다 더 낮지 않았을까 예측해 볼 수 있다. 카지노 게임는 매니저인 남편과 소속사의 압박과 고통을 이겨낼 수 없었고,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딸을 데리고 훌쩍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로 떠났다. 니나는 휴식을 취하며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1976년 몽트뢰 재즈페스티벌을 통해 다시 무대로 복귀하기까지의 2년간의 시간을 카지노 게임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1993년에 유방암을 선고받고 2003년에 죽기까지, 암투병과 조울증에 고통받았던 카지노 게임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음악을 위해 걷고 뛰어갔다. 카지노 게임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아프리카 전역에 뿌려졌다.카지노 게임가 죽은 후 15년 만인 2018년 4월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됐는데,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카지노 게임를 '가장 높은 영혼의 여사제(女司祭)'라고 기렸다.



카지노 게임가 살아간 삶에 대한 선명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피아노. 음악. 인권. 흑인. 아프리카. 재즈.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짙은 '절규'.

앨범 여러 곳에 배치되어 있는 카지노 게임의 피아노 솔로 연주곡들을 들으면 접혔던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이 애달프다.

카지노 게임의 단단한 음정의 목소리를 들으니 지난한 인간의 생활을 몸으로 듣는 것 같아 아련하다.

흑인이어서 받았을 수많은 차별 때문에 피아노 앞에서 눈물을 훔쳤을 카지노 게임를 생각하면 서럽다.

라이베리아에서 뙤약볕 아래 붉은 흙을 밟으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을 카지노 게임를 상상하면 도리어 아프다.

재즈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의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게 해 주었던 카지노 게임의 공연 영상을 보면 묵직하다.


- 곡과 영상-

1. Feeling Good

https://youtu.be/oHRNrgDIJfo?si=_cDDZFmTw64qqSmm


2. Mississippi Goddam

https://youtu.be/LJ25-U3jNWM?si=znEcImNSDkW18K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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