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구 주택이란 설명을 듣고 우리 가족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한 집만 보고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워서 기어코 가본다는 느낌이 강했다. 반 강제적으로 따라간 나의 주관적 느낌은 그랬다. 그런데 웬걸. 허리춤까지 오는 철문을 밀고 매물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자 마당이 나왔다. 건물을 끼고 '니은(ㄴ)'자로 구성된 마당 한편에는 꽃들도 심어져 있었다. 바닷가에서 주로 보던, 나무로 된흔들의자나 커다란 탁자도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현관과 마당을 지나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비로소 들어갔을 때, 매형을 포함한 우리 가족은 "오오오...." 하는 탄식이 입술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널찍한 거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정면으로 화장실이 보였고, 그 주변으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두 개 있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자 우드톤의 바닥재가 주는 시원한 느낌이 덧신 안으로 전해졌다. 베이지색 계열의 벽지가 발바닥을 타고 오르는 청량한 감각과 더해지며 박하사탕을 입에 머금은 듯한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한 여름의 습하고 텁텁한 날씨에도 집의 분위기가 주는 선선함이 고단했던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다.
들어간 방향으로 왼편에는 부엌이, 오른편에는 '이불 크기 만한 창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목부터 발가락까지 덮어야 이불이 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고, 내 키는 180이므로, 아파트 복도로 이어지는 수건 두 장 만한 창문을 본가에서 경험하다 세상과 연결되는 큼지막한 창문을 보고는 홀린 듯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아현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카지노 게임을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집까지 다시 올랐다. '이불'을 반으로 포개어 내다보는 북아현동은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기와들이 파아란 하늘 아래 저마다의 색을 띠었다. 구름은 또한 노부부의 걸음처럼 여유로웠고, 햇볕은 달궈진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경적소리는커녕자동차한 대도 지나지않았다. 오토바이가 이따금 지나쳤지만귀에 거슬린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고,가을이 이미도래한 듯 소소한 바람소리가 마음으로 다가왔다.
강원도 한 달 살기를 했던 때가 떠올랐다. 특히, 동해시에서 이 주간 머물렀던 시간을 나는 좋아카지노 게임. 고요한 동네였다. 거실로 난 베란다 문을 열면 아파트로부터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요목조목 난 골목들로는 인적이 드물었다. 한낮의 뜨거운 해가 내리쬐어도, 어둠이 잦아들어도 나의 숨소리만 선명카지노 게임.
묵호에서 머물며 부모님으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채로 살면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안정감을 경험카지노 게임. 그것은 마치 편안한 사람들에게 환대받는 느낌과도 같았고, 그들과 달빛을 안주삼아 어울리는 순간으로 떠올릴 만큼 포근카지노 게임.누적된 고립으로 삭아가는 마음을 구원해 줄 반전의 대상도 상상하지 않았다. 나로서 충분했다. 불안정감으로부터 나를 보듬어 줄 누군가가 어쩌면 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타지에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마음에 들었으면 바로 계약을 하는 게 좋아요"
"네 마음에 쏙 드는 집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
"집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나갈지 몰라요"
"불편한 게 있어도 맞춰서 살아가는 거야"
부동산으로 돌아와 "며칠만 더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묻는 내게 쏟아진 말들이다. 마음에 드는 분위기였는데 주저하고 있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이상한 점은 없는지 살폈고, 물이 잘 나오는지도 확인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계약 이후에 발견되어 치명적인 손해와 자책, 후회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목구멍까지 찰랑거렸다. 집을 곧장 계약하겠다는 생각으로 매물을 본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틀간, 그러니까 주말까지 계약 여부를 결정해서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아니, 오늘 아침부터 급하게 집을 보고 왔는데 그게..." 내가 집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을 대부분 알고 있는 수영에게 말카지노 게임. 심지어는 부동산 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데 적극성을 띄었다. 일산과 노원의 매물을 설명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 호들갑을 떠는 듯한 나의 태도로부터이상한 낌새(?)를 자각카지노 게임.
'내가 왜 이렇게 들떠있지?' 카페에 와서는수영과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아현동 그 집이 눈앞에서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생각나고,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고, 그곳에서 사는 앞으로의 삶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천장에 달린 은은한 조명등을 켜고, 창문을 활짝 연 뒤에, 뜨듯한 커피를 한 잔 타와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그런 순간이 단 하루라도 내게 주어진다면 다음 날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집에게 강렬한 호감을 느낀 건 묵호의 아파트 이후로 처음이었다. 들떠서 좀처럼 차분해지지 못하는 나의 내면을 들추어 본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학생 때까지는 부모님과 안방에서 함께 자고, 군대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좁은 거실에서 혼자 자고, 비로소 방을 얻었지만 방음이 안 되는 집의 구조로 부모님의 목소리나 생활 소음이 하루 내 나를 쫓아다녔다.
서른일곱이 되어버린 카지노 게임 안정감을 갈망한다. 삶에서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머무는 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집'이라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강원도에서 깨달았다. 그러나 부모님 집이라는 과거를 청산하고,독립한다는 것은 다가올 변화의 순간들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앞으로 겪어야 할 무수히 많은 불안정한 상황들을 안정감을 위해 역설적으로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안정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카지노 게임불안정한 상황에기꺼이 도전하는 태도를 가져야 내가 원하는 형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자유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집이든 계약을 맺어야만 하고, 가능하다면 운명처럼 나타난, 북아현동 카지노 게임 지어진 그 집에서 사는 게 좋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주책스러운 나의 행동을 커피가 식어갈 때까지 들어주던 수영에게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 아침에 매형과 부모님이랑 집 보러 갔었는데요.두 번째로 본 집, 아직 계약이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