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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의 뜰 Mar 18. 2025

오리 오뚝이

최은영 단편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그날 테헤란로의 초저녁 공기는 쌀쌀했다. 홑겹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직장인들이 옷깃을 여미고 건물 밖을 나오고 있었다. 그날도 야근하는 효정 씨는 저녁시간을 잠시 내어 카지노 쿠폰를 만나고 싶어 했다. 반가운 마음에 퇴근길을 재촉해 대로를 건너 그다음 골목에 있는 효정 씨의 회사 앞으로 찾아간 카지노 쿠폰. 큰 눈망울과 귀엽게 웃는 효정 씨의 모습은 여전하다. 그런데 지쳐 보인다. 편의점 빨대 커피를 양손에 꼭 쥐고서 효정 씨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첫날부터 야근했어요.

효정 씨는 같은 업종으로 이직한 거라 수월할 거라 생각했는데.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 너무 아닌 것 같아요.

규모는 커졌지만 효정 씨처럼 일 잘하는 사람이 하루에 해 내야 하는 일이 많은 곳이라면 두 사람의 몫을 효정 씨에게 주는 곳이라 카지노 쿠폰 생각했다. 그녀라면 진작 털고 나왔을 곳을 효정 씨는 벌써 보름 가까이 참고 다니고 있었다.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아닌 것 같은데, 더는 못하겠는데 하면서.

배고프지 않아요? 이 커피 가지고 되겠어요?

입맛도 없고 사실 지금도 눈치 보면서 나온 거라 얼른 다시 들어가 봐야죠

옷 얇게 입고 나와서 춥겠어요, 효정 씨. 오늘은 이렇게 얼굴 봤으니 됐고 다음에 야근 안 하는 날 우리 같이 저녁 먹어요.


카지노 쿠폰 효정 씨와 종로의 한 무역회사에서 만났다. 대학 졸업 후 이 회사 영업 1팀 사원으로 들어와 3년 넘게 일하고 있던 효정 씨와 이직해서 영업 3팀에 들어온 카지노 쿠폰 회사에서 가까워질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호기심 가득한 큰 눈으로 효정 씨는 오며 가며 마주칠 때 그녀와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효정 씨는 늘 바빠 보였고 그녀 역시 새로운 일을 배우느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때였고 설사 업무 외적인 이야기라도 같은 팀의 여직원과 조금 나눌 뿐 파티션 저 너머의 1팀 효정 씨와 말을 나눌 기회는 없었다. 몇 미터 안 되는 물리적 거리에 반하게 심리적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사무실에서의 인간관계가 그렇듯. 그러다 탕비실에서 우연히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우리 동갑이죠 라며 예의 그 서글서글한 눈인사를 하는 효정 씨에게 카지노 쿠폰 알 수 없는 경계의 벽이 허물어지는 걸 느꼈다.


어떤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침묵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카지노 쿠폰 생각했다. 너 얼마나 하는지 보자의 차가운 시선의 침묵과 지금 정신이 없죠, 나도 그랬어요, 뒤에서 응원할게요의 은근한 파장의 침묵. 그녀가 그간 효정 씨에게서 느낀 침묵은 그 어떤 평가를 배제한 후자의 침묵이었다.


작은 회사 안에도 퉁명스러운 사람, 조용히 일하는 사람, 얄미운 사람, 재미있는 사람, 불만 많은 사람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는데 둘둘셋 결이 맞는 사람끼리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알아보는 게 된다는 게 힘든 회사 일을 하는 그녀에게는 작은 구원이었다. 선하고 무던한 사람, 평소엔 말 수가 없는 사람 그런데 친해지면 숨겨놓은 재미를 낱개 포장된 초콜릿 껍질을 까듯 드러내주는 사람에게 그녀의 마음이 기운다는 걸 카지노 쿠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시선 가장자리에는 늘 효정 씨가 맺혀 있었다. 어쩌면 그건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그녀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카지노 쿠폰 미처 하지 못했다.


여직원들 몇몇이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 분위기였는데 효정 씨 역시 도시락을 싸 오는 무리에 속해 있었다. 그녀도 도시락을 싸 오기 시작하면서 점심을 먹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오가는 대화 속에 오전 내내 긴장해서 쪼그라진 마음을 누그러트리기도 했다. 근무 시간 중에는 서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사이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벨트 버클을 풀어버린 것처럼 한결 편해진 몸과 마음으로 서로의 반찬을 맛보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주로 카지노 쿠폰 웃고 듣는 편이었지만.


그러나 그녀는 업무상 갑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횡포를 견뎌내며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몇 달 가지 않아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애초에 그 회사를 지원했던 건 집에서 그나마 1시간 거리의 출퇴근 길이어서였는데 일을 할수록 그녀는 오래 할 일은 못된다 생각했었다. 말은 협력업체였지만 갑, 을, 병 층층이 시집살이에 오더에 오더가 이어지는 중계무역일이 힘에 겨웠다. 정에 해당되는 그녀는 무의 예상 밖의 차질을 오롯이 껴안고 늘 을과 병에게 구구절절 양해를 구해야 했다. 을과 병의 짜증을 오롯이 받아내면서 차마 무에게는 화풀이하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이 더해져 마음은 나날이 곪아가고 있었다. 이전 중국에서 부터 시름시름 앓아갔는데 이를 외면한 채 쉬지 않고 귀국 후 바로 이직을 한 게 어쩜 무리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환경의 변화를 주면 좀 나아질까 싶기도 했었다. 그때 그녀는 일을 쉬게 되면 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무너질 것 같은 그녀 자신을 붙들기 위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통장에 위안을 삼던 시기였으니까. 스물아홉서른, 그 위태로운 시기에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은 그녀를 떠나고야 말았지만 그녀가 먼저 떠나기로 맘먹지 않는 한 적어도 한 줌의 월급은 그녀가 움켜쥘 수 있는 생의 동아줄 같은 것이었기에.


오늘 부장님께 말씀드렸어요.

부장님 어떠 셨어요.

많이 당황하시고 실망하신 표정이셨어요. 부장님도 효정 씨도 다 좋은 사람들인데.

어떤 회사를 가더라도 당신들과 같은 좋은 직장 동료, 선배를 만날 자신은 없어요라는 그 뒷말을 카지노 쿠폰 끝내하지 못했다. 보통 회사 생활에서 사람이 싫어서 떠나지 일이 싫어서 떠나지는 않는데. 다른 회사에서 이들을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카지노 쿠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 년 후, 평생 그 회사를 떠나지 않을 것 같았던 효정 씨가 종로의 회사를 그만두고 삼성동의 회사로 이직했을 때, 테헤란로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지근거리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카지노 쿠폰 반갑고 설렜다. 가끔 퇴근 후 차 한잔 마시면서 그때처럼 서로의 고충을, 때론 웃음을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자리에서 효정 씨의 눈에 고인 눈물을 먼저 보게 될 줄은 미처 가늠하지 못하고 말이다. 눈물은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고 웃음 띈 얼굴은 효정 씨가 지켜야 할 평온한 세계라고, 최악의 상황에도 효정 씨에게는 한숨 정도만 새어 나왔으면 싶었다.


그날 이후 코엑스 몰 지하의 한 식당에서 겨우 야근을 면한 효정 씨의 시간에 맞춰 카지노 쿠폰 퇴근 후 조금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계속 이력서를 내 봤는데 중국 항주의 한 업체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어떨까요, 중국? 급여도 여기보다 괜찮은데. 서린씨 일하기에는 어땠어요?

효정 씨 대학 때 중국에서 연수한 적 있으니까 지내는 데는 괜찮을 거예요. 효정 씨도 지금 인천에서 강남까지 출퇴근하는데 중국에서 일하면 회사 근처 숙소에서 지내니 출퇴근 어려움은 없어서 그 점은 좋죠. 다만 회사, 숙소, 회사 말고는 할 일이 없어요. 물론 여기서도 우린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또래 친구들 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살고 있는데 효정 씨가 홀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지금 우리 나이가 조금 안타까워요. 물론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있는다고 해서 조만간 결혼할 사람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효정 씨가 서울에서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도 하면 좋겠어요. 지금 가면 중국, 외롭잖아요.


효정 씨도 효정 씨 친구들처럼 가끔 퇴근 후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주말엔 영화도 보러 가는 그녀가 생각하는 보통의 삼십 대를 효정 씨도 누리길 카지노 쿠폰 진심으로 바랐었다. 어쩜 그녀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효정 씨라도 대신해주길 바랐는지도. 둘 다 그 평범함에 비껴 난 삼십 대 초반을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게 기운 빠지고 어떤 면에선 분하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효정 씨의 선택지엔 일과 사랑의 항목이 아닌 일과 일의 항목만이 남아 있다는 게 카지노 쿠폰 그저 답답하고 슬프기만 했다.


저 이번 노동절 연휴 때 한국 들어가요. 출산 선물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알려줘요.

필요한 건 제가 다 샀어요. 그냥 짧은 휴가 기간에 시간 내서 저 만나러 여기까지 와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저 조카 없어서 뭐 선물해야 할지 몰라서요. 부담 갖지 말고 하나만 얘기해 봐요.

그럼 저 오뚝이 장난감 사주세요.

한참을 고민하다 카지노 쿠폰 메세지를 남겼다.


굴러갈 때마다 동요 멜로디가 나오는 오리 오뚝이가 어딘지 모르게 효정 씨를 닮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마룻바닥에 머리를 찧고서도 결코 넘어지지 않고 아이의 손에서 놓쳐버려 거실 장식장까지 굴러가 노래가 멈추어도, 다시 고개를 젖혀주면

꽥꽥 미레도레 미미미 레레레 미솔솔을 명랑하게 외치는 효정 씨를.


거실 어딘가에서 노래 소리가 멈춘 오리 오뚝이를 애꿎게 내려 치던 아이를 돌보던 시절 최은영의 첫번째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나는 처음 만났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소설에 익숙하던 나에게 최은영의 소설은 위기와 절정이 사라진 희뿌연 결말만이 남은 특이한 소설로 기억되었다. 그런데 자꾸 곱씹어 보게 되는 그녀의 문장은, 그 소곤거림은 이내 잔잔한 다독임으로 다가왔다.
아이 둘을 키우며 살다보니 잔 물결을 바라보는 대신 억척스러운 삶의 뿌리를 캐내는데 급급하다 무언가를 놓치고 산 시간이었다. 그래서 수년만에 마주한 카지노 쿠폰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가 눈물겨운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이젠 여간해선 새 소설책을 사지 않는데 아무래도 이 책은 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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