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명상: 4호 굴비 20마리의 사랑
자비의 힘은 우리의 내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정원이 아빠는 조기구이 장인이다. 몇년째 매주 토요일 아침의 메뉴는 큰 이변이 없으면 조기구이에 된장국이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정원이는 한동안 들기름에 구운 한우안심, 찐 조기, 흰 밥만 먹었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김치찌개부터 파김치, 미역국, 된장찌개, 깍두기, 갈비찜, 시금치나물 등 다양한 집밥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얼큰한 국물요리를 좋아하는 정원이가 처음부터 어느 날 갑자기 다 잘 먹게 된 것은 아니다. 하나씩, 맛보고 조금씩 늘려가면서 골고루 먹는 어린이가 됐다. 그중 조기는 조금 특별하다.
처음 정원이가 생선을 도전했을 때 좀처럼 쉽지 않았다. 누군가 흰살생선을 찌면 괜찮다고 해서 늘 찜기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한 마리를 쪄서 주니 먹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남편이 가시를 발라주면 정원이 입에 내가 밥과 함께 넣어주었다. 아, 그리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항상 백화점 지하에서 4호굴비 20마리씩 구매하고 있다. 손질도 잘해주고 4호는 늘 할인을 하기에.
매번 똑같은 것을 먹기에는 정원이도 나이를 먹으니 은근 지겨워하는 거 같아 프라이팬에 구워도 보고 에프에도 구워보고 했다. 동네 맘카페에서 자이글 새 상품 중고 5만 원 판매를 글을 보고 사 왔다. 정원이는 늘 온라인 카지노 게임 즐겨 먹기에 일주일에 한 번쯤은 꼭 해줬기에 쓸모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이글은 현재 3년째 열일 중이다.
냠냠
정원이 아빠는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한다는 말도 잘 못하는 과묵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다. 조기를 해동하고 담그고 자이글에 구워서 가시를 발라내는 일은 아빠의 몫이다. 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답게 매 단계 연구하듯 정밀하게 정성을 다해 가시를 발라낸다. 시각을 정확하게 재서 자이글에서 조기를 꺼낸다. 매주 아이 아빠가 하는 행동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사랑의 언어다. 어느 날 책에서 물고기그림을 가리키더니 오물거리면서 '냠냠'이라고 정원이가 말했다. 정말 맛있을 때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 아이도 아는 것이다. 이 조기에는 아빠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친정아버지가 옥상에서 해주시던 초계무침이 문득 생각이 났다. 삶은 닭을 초고추장으로 무친 새콤하면서도 매운, 투박한 맛. 그 맛은 계속 뇌리에 남아 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고 그 뒤로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다. 그 초계무침이 가지런이 구워진 온라인 카지노 게임 위에 겹쳐서 떠오른다. 아버지도 정원이 아빠처럼 술 한잔을 반주로 저녁을 드시곤 했다. 아버지도 말수가 적으셔서 살가운 말 한마디 못 들어 보았다. 정원이가 스스로 먹고 싸는 방법이라도 잘 가르쳐야 어디 가서 굶지 않을 거라며, 지난 주말 소주 한잔 들이키며 아이를 걱정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별을 얼마나 준비하고 있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순간 우리 생각을 했을까. 이별은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하게 올 텐데. 생과 사의 가름은 정해진 때란 없다. 그래서 늘 걱정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에게 가시 바르는 법이 아니라 가시 없이 손질해 둔 생선을 굽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할까. 아득하다. 아이가 언젠가 이 아버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그리워해줄까? 일단 밥짓기랑 계란 프라이부터 가르쳐야겠지. 정원이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별을 준비하기 전에 오늘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자. 조금 무뚝뚝하고 낯은 가리지만 행동으로 사랑을 말하는 그의 모습은 정원이와 닮아 있다. 열심히 일하고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오늘은 한번 수고했다고 이야기해 줘야겠다.
여보, 애썼어요.
자비란, 자신과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고, 그 고통을 위해 깊게 헌신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하고, 타인의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마음이지요. '자'는 'matta(lovingkindness)', 사랑을 의미해요. '비'는 'karma(compassion)', 고통에 대한 연민을 의미합니다. 자비명상은 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자비의 마음을 갖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고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가까이하는 것이지요. 힘든 삶을 온몸으로 버티어 온 자신을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태도가 아니라 견디느라 수고한 자신에게 따듯함을 지니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따듯하게 안아주고, 함께 아이를 키우느라 애쓰는 배우자의 마음도 자비의 마음으로 대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