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에게 한 가지 물어보셨다.
카지노 게임이 타고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을까 하는 것이 질문이었다.
친구들은 여러 가지 대답을 했고, 나도 무어라 말을 한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 오래되서인지 기억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이 인상 깊게 남아있는 대답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소리 없이 타고 있다.' 바로 이 문장이었다.
지금 나는 카지노 게임을 바라보고 있다.
캔들라이트 음악회나 초를 이용한 일종의 인테리어 혹은 냄새를 잡는 문화가 만연해지면서
어디서든 쉽게 초를 켤 수 있다.
오늘 오랜만에 선택한 양초는 프리지어 & 체리 블라썸 향이다.
자그마치 30시간에서 32시간 탄다는 이 초는 연한 복숭아빛을 띠고 있다.
처음엔 사과, 블랙커런트, 바이올렛 향.
중간쯤엔 장미, 작약, 재스민 향.
계속 지속되는 향으로는 파촐리, 머스크, 스웨드 향이라는데 나에겐 그저 달콤한 향이 난다.
다행히 너무 달진 않아서 적당하다.
골디락스가 찾아간 곰가족의 집의 침대나 의자처럼 Just Right.
2000원이면 적당한 크기의 초를 살 수 있다.
교실에 둘 작은 시계를 사러 갔다가 충동적으로 구매한 양초.
얼마나 양질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초들을 보았을 때 대번에 알아차렸다.
나에게 잠깐의 힐링포인트가 되리라는 것.
지금도 초 심지가 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방안은 바람 한 점 없지만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에 맞춰 불꽃이 춤을 춘다.
공기가 없다면 나도 불꽃처럼 꺼져 갈 것을 알기에 정확히 알 수 있다.
초가 소리 없이 타고 있음을.
카지노 게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카지노 게임의 안정감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자칫 잘못하면 화마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일까.
사람들이 한 마음을 모아야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두 손에 들리는 카지노 게임을 보면 하나 됨의 상징인 것일까. 꿈을 이루고, 희생을 감수하며, 선의를 위해 집결되는 수많은 불빛들을 바라보며 행동하지 않은 심장이지만 누구보다 뛰고 있음을 느꼈다. 열의 있게 움직이지 않는 몸이 결국 굳어버린 뇌의 결정론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 어이없게 다가왔다. 머리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해도 몇 겹이 겹쳐진 두루마리처럼 결코 풀리지 않는 몸짓.
불이라는 것은 물의 반대말이 아니다.
물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주는 '어떤 것'이다.
난 물멍보다는 불멍이 좋다.
어느 고성의 복도를 밝히는 촛대처럼 매력적이고,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촛대처럼 친근하다.
때론 그저 멍하니 쉴 수 있게 하는 조용한 안락의자 같다.
민중의 횃불처럼 타오를 때면 카지노 게임의 북소리가 가차 없이 울리지만 잠잠해지고 싶은 순간에도 어김없이
불은 제 역할을 한다.
너는 네 한 몸 저렇게 카지노 게임처럼 끝까지 태워본 적 있냐 묻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초는 열심히 타고 있다.
다시 멍하니 바라본다.
돈을 들여야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초는 가장 값싸게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