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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Apr 21. 2025

무료 카지노 게임꽃


이맘때 고향집엔 라일락 향기가 온 집안을 에워싸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향기를 직접 맡아본 적 없다. 라일락나무를 심은 사람은 나인데도. 어머니께 전화로 꽃이 피었느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 집안뿐 아니라 온 동네에 꽃향기가 풍긴다는 과장된 대답을 듣곤 했다. 사는 게 얼마나 바쁘면 그 좋아하는 라일락이 피어도 못 오느냐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그렇다, 나는 참으로 바쁘게 살았다.


고향집에 있던 라일락은 내가 결혼하기 두 해 전에 심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묘목 한 그루를 주셨는데, 뒤란에 심을까, 화단에 심을까 고심하다 앞마당 낮은 담장 무너진 곳에 심었다. 라일락이 담장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내 짐작은 맞았다. 차츰 자라서 무너진 곳을 메워주었다. 마루에 앉아서 라일락 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꽃이 피기 전 결혼하는 바람에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십 년이 흐르고 이십 년이 흐를 동안 단 한 번도 꽃필 때 맞춰 친정에 가지 못했다. 사느라고, 내 살림을 일구느라고, 내가 직접 심은 라일락 꽃 향을 맡아보지 못했다. 꽃이 필 때쯤이면 전화로 어머니께 묻기만 했다. 뭘 자꾸 묻기만 하느냐고, 직접 와서 보면 되지 않느냐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말씀도 외면하고, 나는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느라 못 가봤을까.


어느 해 여름에 갔더니 라일락나무는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 후로 꼭 꽃필 때 찾아가 보리라 결심했다. 보랏빛 꽃송이를 달고 향기 날릴 라일락을 만나리라. 수수꽃다리, 리라꽃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불리는 꽃, 라일락. 생각만 해도 향기가 나는 것 같은 꽃. 고향집 마루에 앉아 앞산 바라보며 꽃향기를 맡고 싶었다. 그런 날이 있으리라 믿었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라일락 묘목을 심은 지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어느 해 사월, 고향집에 갔다. 먹고사는 게 걱정 없을 정도로 가정경제가 나아졌고, 하고 있는 일에도 관록이 붙었으며,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도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집 앞부터 꽃향기가 나를 에워싸리라. 꽃 속에 파묻혀 사진을 찍고 꽃처럼 환하게 웃어보리라. 설레는 마음을 가만가만 누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미소 지으며 고향집에 다다랐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무너진 담장이 보였다. 그 가운데 서 있던 무성한 라일락나무는 없었다. 사철나무는 그대로 있을 뿐 아니라 더 많이 퍼졌는데, 라일락나무만 없었다. 휑한 그 자리에 베어낸 자죽만 상처처럼 남아 있었다. 가슴이 털썩 내려앉는 듯했다. 꽃핀 걸 보려고 왔는데 한 번도 못 본 채 베어지다니. 꽃을 못 보는 것도 서운했지만 친정에 두고 온 또 다른 나의 존재가 사라진 느낌이 들어, 기운이 쏙 빠졌다.


나무가 무성해져 시야를 가로막는다는 게 이유였다. 마루에 앉으면 앞이 툭 터져서 훤히 보여야 하는데, 라일락 가지와 잎사귀 때문에 멀리 보이는 신작로에 차 지나가는 것과 앞산이 잘 안 보인다는 거였다. 이해했다. 할머니와 어머니 두 노인에겐 그럴 만했다. 그러니 서운하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말았다. 자주 찾아가 뵙지도 못하는 불효에 더 보탤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을 하지 못했으나 두고두고 서운했다. 심어 놓고 단 한 번도 꽃향기를 맡아보지 못한 분주한 삶이 야속하기도 했다. 자란 라일락나무를 보았기 때문에 얼마나 꽃송이가 얼마나 주렁주렁 달렸으리란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라일락나무가 베어진 지 이십 년도 더 지났다. 아, 그 이십 년이란 세월은 왜 이다지도 금세 흐르는 걸까. 그래도 무료 카지노 게임꽃만 피면 어김없이 생각난다.


서운한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다가 몇 년 전에 어머니께 내비쳤다. 왜 그 아까운 라일락나무를 베었느냐고, 지금쯤은 고목이 되었을 나무인데, 내가 심은 그 나무를 베다니 그때 서운했다고. “꽃이 피면 뭐 하냐. 단 한 번도 오지 못하는 걸. 꽃을 볼 때마다 부아가 나서 원. 베어버리고 나니 속은 시원하더라.” 꽃이 피면 내가 올 것으로 믿고 기다렸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제야 제대로 이해했다. 그러니 서운한 마음을 훨훨 날려버릴 수밖에.


아파트 정원에 무료 카지노 게임꽃이 피었다. 고향집 라일락도 그대로 있었다면, 꽃이 피어 홀로 계신 어머니 가슴을 가만가만 어루만져 주었으리라. 아니다. 그 가정보다 조만간 고향집에 가서 어머니 가슴을 직접 어루만져 드리고 와야겠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라일락 있던 자리에 서서,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있다고, 한 번도 꽃핀 모습을 못 봐서 미안했다고, 라일락나무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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