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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Feb 24. 2025

산수유꽃과 카지노 게임 추천꽃


어쩜, 어쩜! 저 꽃눈 좀 봐! 아니, 꽃봉오리잖아! 나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우리 동네 공원에서다. 운동틀에서 팔운동을 하시던 어르신이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눈이 꼭 저 산수유 꽃봉오리 같다. 이른 봄볕에 눈부신 듯 작고 동그란 눈에 따스한 기운을 담고 있다. 산수유나무 아래 서서 한참 동안 꽃봉오리를 보았다, 감탄하면서.


젊은 엄마와 어린 나는 겨우내 나무를 하러 뒷산에 올랐다. 나무를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었으니 나무가 귀했다. 더구나 여자들이 하는 나무는 어설펐다. 그래도 봄이 되기까지 뒷산에 올라가 땔감을 구해야 했다. 잡목은 이미 누군가 다 베어갔고, 소나무 삭정이도, 갈잎도, 심지어 자라지 못하는 참나무도 다 해가서 없었다. 그래도 갈퀴로 솔잎과 갈잎을 긁어 간신히 하루 땔 나무를 하기 위해 온 산을 헤매고 다녔다.


응달엔 잔설이 남아 살을 에듯 부는 바람에 흩날렸는데, 사람 발이 닿지 않은 그곳에 아까시나무나 잡목들이 간혹 남아 있었다. 엄마와 나는 코가 빨개지는 것을 잊고 그 잡목들을 베었다. 가시에 찔리고 추위에 온몸이 떨려도 참았다. 저녁에 군불을 때고 밥을 짓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땔감이었으니까. 추위에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으면, 양지바른 곳으로 옮겨 햇볕에 몸을 녹이고 드문드문 남은 솔잎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완연한 봄이 가까워질 무렵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을 뚫고 향기로운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왔다. 올려다본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엄마의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었다. “엄마! 꽃향기가 나요.” 엄마는 내 말에 미소만 지었다. “엄마! 꽃향기가 난다고요!” 다시 외치며 향기를 따라가면 생강나무 노란 꽃이 피어 방긋 웃고 있었다. “벌써 동백꽃이 피었구나. 이제 봄이야.” 엄마도 봄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 시절 나는 그 생강나무 꽃처럼 반가운 꽃이 없었다. 이제 완연히 봄이 왔다는 거니까. 봄이 되면 나무를 덜해도 되니까.


한동안 나는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을 구분하지 못했다. 가지 꺾어 냄새 맡아보면 생강 냄새가 나는 꽃,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꽃, 충청북도와 강원도 등지에서는 동백꽃으로 부르는 꽃, 그 꽃이 생강나무 꽃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엄마와 내가 뒷산에서 보았던 꽃도 생강나무 꽃이었다는 것도 몰랐다.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산수유 꽃과 생강나무 꽃은 전문가도 알기 힘들 정도로 꽃 모양이 닮았다. 수피가 다를 뿐이다. 생강나무는 수피가 반지르르한 반면, 산수유는 거칠거칠하다.


그런데도 나는 산수유 꽃을 볼 때마다 어릴 적 뒷산에서 본 생강 꽃이 먼저 떠오른다. 그 알싸하고 향기로운 냄새와 나무하느라 상기됐던 엄마의 그 발그레한 볼, 응달의 눈 속에서 어설픈 낫질할 때 곱았던 손, 요란한 까마귀 소리, 차갑게 끼쳐오던 눈바람. 그래도 양지쪽엔 봄빛이 감돌아 차가운 몸을 녹이고, 곱았던 손을 녹이고, 암담했던 마음도 녹이지 않았던가. 엄마와 힘을 합쳐 나무를 해 이고 내려오면, 나뭇단에 꺾어 꽂은 이제 막 피어나는 생강나무 꽃이 희망처럼 한들거렸다.


그래서일까. 나는 산수유 꽃이든 생강나무 꽃이든 구분할 것도 없이, 그 노란 꽃이 피기만 하면 가슴에 희망이 솟아오른다. 어릴 때와 다른 종류의 희망들이 막 솟아오른다. 공원에서 본 산수유 꽃봉오리를 보고 탄성을 터뜨린 것도 분명 그 때문이리라. 수없이 좌절과 희망 그리고 갈등의 골짜기를 훑으며 사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그렇듯 지난한 날들이 모여 오늘을 만들고 또 내일을 꿈꾸는 게 삶이지 않은가.


올봄에는 ‘김유정 문학촌’에 다시 가보고 싶다. 금병산 자락을 뒤덮을 듯 흐드러진 알싸한 생강나무 꽃, 그 동백꽃을 만나러 가고 싶다. 가서 어릴 적에 느꼈던 그 희망을 느끼고 싶다. 벗이나 문우 몇이서 그 꽃향기 맡으며 어릴 적 뒷산을 떠올린다면 어떨까. 소설 <동백꽃 속의 점순이가 되어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실, 멀리 갈 것 없이 산수유 꽃을 보아도 되겠지만 말이다.


머지않아 산수유 꽃이 필 것이다. 산에는 생강나무 꽃도 피고. 봄은 오고 있다. 내 곁으로, 우리 곁으로. 희망을 안고, 꿈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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