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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Feb 21. 2025

온라인 카지노 게임 빵 샀어. 내 거는?

'가자사해'씨와의 일상


“온라인 카지노 게임 빵 샀어.”라고 하면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 하는 남자랑 살아요




모르고 결혼한 건 아니었다. 연애 초기, 따뜻한 봄날을 만끽하기 위해 그와 한강으로 피크닉을 갔다. 돗자리나 휴대용 테이블 등 하드웨어는 그가 챙기고 나는 피크닉의 핵심인 도시락을 쌌다.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일본 유치원생 도시락 뺨치는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만들고 싶었지만 몇 번 나가지도 않을 피크닉 도시락에 돈을 쓰는 게 아까워 스팸무스비와 간단한 과일을 싸갔다.


김을 깔고 밥을 얹고 스팸을 올리고 둘둘 마는데 다소 성의가 없어 보이는 것 같아 스팸과 밥 사이에 치즈와 야채를 추가했다. 야채와 치즈를 올려놓고 보니 또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샌드위치 가게에서 받아온 휴대용 랜치소스와 통후추를 갈아서 넣었다. 돌돌 말은 사각형 김을 칼로 썰어 반을 가르니 그럴싸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뭐 100점까지는 아니어도 감동은 좀 받겠는걸? 하는 마음이었다.


한강에 도착해서 돗자리를 깔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대망의 도시락을 열었다. 도시락을 열기 전 남자 친구는 꽤 기대한 얼굴이었다. 짜잔- 하며 내가 도시락을 연 순간 그의 눈빛에서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내가 기대한 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하게 웃는 모습인데 조금 웃다가 만 얼굴이랄까? 그래도 일단 둘 다 배고픈 상태였기 때문에 무스비를 하나씩 집어 베어 물었다.

음.


이라는 소리가 났다. 음~ 아니고 음.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작은 가시가 걸렸거나 힘줄을 씹었을 때 내는 소리랄까. 내용물 중에 단단한 재료가 없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었지만 조금 실망한 기색을 느꼈다. 도시락을 싸면서 상상했던 리액션이 아니라 조심스레 물었다.


“왜 맛없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엄청 맛있어. 근데.”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입을 쳐다봤다. 오물오물 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던 그는 베어물은 무스비를 목구멍 속으로 완전히 넘긴 후 입을 열었다.

“후추가 큰 게 들어있네.”


갈아 넣은 통후추가 다소 입자가 컸던 거다. 사실 모든 건 의도된 것이었다. 한 번도 써보지 않은 후추 그라인더를 들어 스팸 무스비 안으로 갈아 넣을 때 스팸의 기름기를 통후추가 잡아주는 이론을 기대했다. 문제는 이론은 이론뿐이며 실제 이론이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아 맛이 조화롭지 못했다는 거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음식을 내가 처음 만들어 봤다는 것이고. 남자 친구에게 순순히 실토를 했다. 사실 이 레시피는 나도 처음 만들어봤어. 수줍은 고백을 하며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맛있게 먹어주면 안 되나? 꼭 그렇게 짚어내야 했나.'


피크닉으로부터 10여 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식재료의 조화를 중시한다. 마치 청경채의 익힘을 중요시하는 안성재 셰프 같다고 할까. 문제는 음식을 하는 내 입장은 항상 참가자고 요리를 잘 못하는 그는 평가자라는 것. 한번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따진 적도 있다. 내가 없는 실력으로 열심히 만들어주는 음식인데 그냥 먹어주면 안 되냐고. 그랬더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말한다. 이걸 지금 말해주지 않으면 계속 본인에게 이 음식을 줄 테니 미리미리 말을 해줘야 한다고. 듣고 보니 수긍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MBTI라는 게 유행을 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T중의 T다. '우울해서 빵 샀어?'물어봤을 때 '무슨 빵?'이라고 답하면 T고 '왜 우울해?'라고 하면 F라는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내 거는?이라고 하는, 대문자 T인 거다. 그래도 MBTI라는 것이 유행해서 다행이다. 이런 개념을 몰랐다면 평생 온라인 카지노 게임을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며 살 뻔했다. 넌 좀, 감정 좀 헤아려주겠니?!


감정을 헤아려주기보다는 해결책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든든하다. 결혼을 하고 만나는 많은 문제와 상황들이 감정만을 고려해서는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었다고 해봤자 고작 30대 밖에 안된 우리가 만나는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다. 그럴 때마다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후추가 좀 큰 게 있네.' 하는정도의 자세로 사는 게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하기도 한다. 하나하나 반응을 하며 살기에는 우리에게 쏟아지는 이슈가 너무 많다.



최근 온라인 카지노 게임 별명을 하나 지었다. 바로 가자사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가자사해씨!~~라고 부른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어디 가고 싶다'라고 하면 '가!'라고 하고, '피곤하다–' 그러면 '자!'라고 하고 '이거 갖고 싶네?' 하면 '사!'라고 한다. 그리고 ’ 뭐 하고 싶다-‘라고 하면 ’해!‘라고 하며 말을 끊어버려서 캐릭터화를 해버린거다. 내가 생각한 이상과 실제 현실은 아래와 같다.


나 : 바다 보러 가고 싶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답 :

(이상) 오 그래? 그럼 주말에 같이 갈까?

(현실)가!


나 : 피곤하다. 졸리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답 :

(이상) 피곤해? 오늘 뭐 했길래? 주물러줄까?

(현실) 자!


나 : 저 가방 사고 싶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답 :

(이상) 가방 사고 싶어? 어떤 거? 무슨 색이 없지?

(현실) 사!


나 : 나 뭐 하고 싶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답 :

(이상) 하고 싶어? 그게 어떤 건데? 혼자 할 거야? 같이 하는 게 나아?

(현실) 해!


이렇게만 써놓으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좀 이상해 보이긴 한다. 하나뿐인 아내와의 대화를 빨리 종료시켜 버리고 싶은 무뚝뚝하고 정 없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처럼 보일 수 있겠다. 아니다. 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가자사해'씨의 핵심은 바로 세 번째, 사! 다.여보 나 다이슨 헤어롤 갖고 싶어. 사! 여보 나 샤넬 귀걸이 갖고 싶어. 사! 얼마나 아름다운 대화인가. 감정과 대화 없어도 좋으니 지금처럼 뭐든 사게 해 줬으면 좋겠다.

나: 여보, 돈 좀 줘.

온라인 카지노 게임 : 콜!



ps. 눈치 채셨겠지만 저도 T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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