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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pr 06. 2025

카지노 게임의 끝

[Episode 1]2138년 3월 11일 오전 8시 12분.

2090년 4월 4일
인류는 신뢰를 점수로 설계하는 새로운 카지노 게임를 제안했다.
이름은 TCR(Token Curated Registry).

그리고 불과 18일 뒤,
2090년 4월 23일.
시스템에 기록되지 않은 한 아이가 태어난다.노아.

그리고48년 후,
2138년 3월 11일.
카지노 게임을 완전히 필터링한 버전의 TCR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 적용되며,
비인증자 완전 배제가 공식선언된다.
존재는 점수가 되었고, 카지노 게임은 삭제되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아르코폴리스의 하늘은

한없이 맑았다.

위성으로 통제되는 기상 조절 시스템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늘을 필터링했고,

태양조차 정확히 계산된 각도로만

비추도록 허락됐다.


공기는 차가웠고,

바람은 규칙적으로 불었다.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다.

그것은 곧 평온함을 의미했다.

그러나그날 아침,

엘라는 그 평온 속 어딘가 낯선 떨림을 느꼈다.


엘라는

TCR(Token Curated Registry)중앙 큐레이션 센터의 설계실에 있었다.

혼자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모니터에는 도시 전역의 신뢰 점수 흐름을 시각화한

다층 그래프가 펼쳐져 있었다.

곡선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곡선의 아주 미세한 진동 속에서

어딘가 기이한 떨림을 감지했다.

엘라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 미세한 떨림, 아주 작지만 분명한 진동.

'시스템은 지금,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9시 정각. 시스템이 전 지구적으로 확장됐습니다.”


센터 내 안내 AI의 음성이 차갑게 울렸다.

엘라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말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다.

선언이었다.


2038년 3월 11일 오전 9시 정각.

수십 년 전, 일부 도시에서 실험적으로 운영되던 TCR.

이제는 카지노 게임 완전 필터링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지구 전역에 공식 적용됐다.

동시에,
비인증자에 대한 완전한 배제 정책도 함께 공표됐다.


그 순간부터,
신뢰는 더 이상 사회적 감각이나 관계의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신뢰는 점수였고,
점수는 곧 존재의 증명이었다.

카지노 게임는 완성되었다고, 시스템은 선언했다.
누구도 그 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신뢰’라는 불확실한 가치는
점수와 큐레이션으로 측정 가능한 카지노 게임로 바뀌었다.

그 오랜 시도는,
이미 일상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교육은 등급으로 나뉘었다.

고신뢰군 A등급은 카지노 게임 기반 협업과 창의적 문제 해결 중심의 몰입 수업을 받았다.
탐구, 대화, 상호작용이 허용되는 교실.

반면, 저신뢰군 D등급은
정답만 반복하는 암기 수업과 자동응답형 로봇 강의만이 허용됐다.
선택은 없었다. 학습은 배정되었다.

교사는 점점 사라졌고,
카지노 게임 표현은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차단했다.

카지노 게임이 많을수록 학습 효율이 떨어진다는
한 편의 보고서가 그 모든 근거였다.


행정은 더 노골적이었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공공기관 접속 우선순위, 민원 처리 속도,
사유지 이동 허가서 발급 여부까지
모두 신뢰 점수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되었다.

점수가 낮을수록 행정은 느려졌다.
500점 아래로 떨어진 순간, 행정권은 ‘정지’로 전환됐다.

같은 서류를 제출해도
저신뢰 시민은 ‘리뷰 지연’이라는 사유로 수 주를 기다렸다.

고등급 시민은 거주지 변경, 출국 허가, 에너지 배급까지 우대받았다.
그 격차는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의료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장 냉정했다.

정서적 불안정성이 감지된 환자는
응급도가 자동으로 낮아졌다.

‘심리 안정 필요’라는 항목이 붙으면,
치료는 무기한 보류되었다.

카지노 게임 상태가 불안정하다고 판단되면,
가벼운 기침 하나도 ‘심리적 리스크’로 분류됐다.

카지노 게임은 바이러스보다 위험했다.
마음의 병은 신체의 병보다 언제나 뒤로 밀렸다.

공공의 안전이라는 명목 아래,
카지노 게임은 병이 되었고
기억은 시스템의 위험 요소가 되었다.


법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도시에선 인간의 진술보다
점수가 더 먼저 판결을 받았다.

점수가 낮은 시민의 말은 쉽게 신뢰되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을 동반한 호소는
‘비논리적 요소’로 자동 삭제됐다.

진실은 점수 위에서만 존재했다.

변호인 배정, 증언의 신뢰도, 배심원 구성까지
모두 점수 기반 알고리즘이 판정했다.

카지노 게임에 기반한 발언은 무효 처리되었고,
기억은 기록되지 않는 한
‘주관적 허위 진술’로 치부되었다.


이 도시에선

카지노 게임은 병이었고, 기억은 시스템의 적이었다.




사람들은 그날 아침,
점수 변화에 따라 일상을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출근길.
상점의 입장 자격.
거주지 접근 권한.
심지어 공공 화장실의 사용 여부까지—

모든 것이 TCR 점수에 따라 필터링되었다.

카지노 게임 표현은 철저히 억제됐다.
예측 불가능한 카지노 게임 데이터는
즉시 “신뢰도 저하 요인”으로 분류되어 시스템에 등록되었다.


엘라는 책상 위 리포트를 넘기다 말고,
한 문장에서 시선을 멈췄다.


"거주지 접근 제한자 수 급증"


그날따라 유독 많은 시민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시스템은 전 세계적 확대 적용과 함께

신뢰 점수 기준을 강화했다.

단지 하루 사이였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도시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들은,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된 건지를 끝내 알 수 없다는 듯이.


“지금의 카지노 게임는 필연입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제거했습니다.”


TCR 공식 대변인의 아침 브리핑이

도시 전역의 스크린에 투사되었다.

정제된 문장.
낮고 균일한 톤.
카지노 게임이 완전히 제거된 목소리.

그러나 엘라의 귀에 그 음성은
두려움을 억누른 인공지능의 합성음처럼 들렸다.


엘라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에선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해진 속도와 경로로.
점수에 맞는 표정과 발걸음으로.

모두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정상’을 흉내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누군가는, 더 자주 사라지고 있다는 것.


마치,
시스템이 그들을
조용히
지워내는 것처럼.





그날 오후.
엘라는 중앙 시스템의 카지노 게임 로그 서버를 열람했다.

공식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하위 로그.
일반 큐레이터조차 접근할 수 없는 구역.

그러나 그녀는 설계자였다.
시스템의 최상위 권한을 가진 유일한 존재.

그녀는 그 권한으로,
금지된 영역을 열었다.


카지노 게임 로그는 원래,
모두 익명화되어 자동 삭제되도록 설계돼 있었다.

하지만 로그 안에는
이상한 조각들이 남아 있었다.

분명 삭제됐어야 할 데이터.
그런데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감정을 남겨둔 것처럼.


엘라는 데이터를 정제해 다시 분석했다.
몇몇 카지노 게임 곡선은 익명성조차 벗어나 있었다.

이상했다.
그 카지노 게임들은,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카지노 게임을 추적하듯.
누군가의 존재에 반응하듯.


“왜.... 이건 삭제되지 않았지?”


엘라는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규칙대로라면 이건 모두
없어졌어야 했다.
카지노 게임은, 익명이어야 했다.
기억은, 남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화면에
익숙한 코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E.NOA_0423


EExcluded, 즉배제된존재.
NOA는 시스템에 기록되지 않은 자.

그리고0423
그건 생일이었다.
2090년 4월 23일.

노아.


엘라는 손끝이 굳는 걸 느꼈다.
숨조차 잠깐 멎었다.

그 코드는,
오프그리드인물들의 카지노 게임 로그를 추적하기 위한
내부용 식별 태그였다.


'오프그리드'.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
TCR 내부 문서 어디에도 명시된 적 없는 금기어.

그러나 큐레이터들 사이에서는

속삭이듯 전해졌다.
점수 없이 사는 자들,
신뢰의 기준 바깥으로 스스로를 지운 이들.
시스템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존재들
.


그들은
이름도 없고,
기록도 없고,
네트워크망에도 접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했다.
분명히.

가끔 시스템 바깥의 카지노 게임 로그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잔여값으로,
혹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흔적으로 살아남았다.


TCR은 그들을 '오류'라고 불렀다.

하지만 엘라는 알고 있었다.
그건 오류가 아니라,
시스템이 끝내 지우지 못한

인간의 잔광이었다.


“설마… 아직 살아 있는 건가?”


엘라는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로 중얼였다.

자기 자신에게 묻는 말이었지만,

그 대답은

스크린 너머에서 튀어나올 듯 생생했다.


그동안 환상이라 믿어왔던 기억.
오프그리드의 아이.
필터링되지 않았던 눈빛.

그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노아.

그는 오래전 시스템 외부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여겨졌던 존재.

하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엘라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니,

시스템의 하위 카지노 게임층 어딘가에도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오류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혹은 노아 자신이
의도적으로 남긴 신호였다.




그날 밤,

엘라는 폐쇄지구로 향했다.


그곳은
본래 TCR 점수 미달자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설계자였다.
시스템의 구조를 설계한 자.
그 권한으로,
금단의 영역을 열 수 있었다.


도시 북부의 그 지역은
지도에서조차 흐릿하게 표기된 곳이었다.

무너진 건물.
꺼진 가로등.
잊힌 벽면에 겹겹이 덧칠된
다중의 기억.

그 거리엔
말 없는 카지노 게임의 잔재들이
천천히,
공기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했다.

초소형 카지노 게임 기록기.

오래된 기술.
블록체인 기반의 카지노 게임 보존 장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카지노 게임을 저장해 둔 것이 분명했다.


기록기의 마지막 문장은
단 한 줄이었다.


"존재는 카지노 게임 없이 증명되지 않는다."


엘라는
오래도록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이름도 없이,
기억도 없이 사라졌으나,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고 싶다는
절실한 메시지.




2138년 3월 13일.
시스템은 겉보기에 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조용한 균열이
퍼지기 시작했다.

카지노 게임 로그는 삭제되지 않았고,
일부 큐레이터는
처음으로 판단을 보류했다.


시민들은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점수보다
카지노 게임을 먼저 보기 시작했다.


엘라는 느꼈다.

이 시스템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제 끝나기 시작한 것이라는 것을.


카지노 게임는

카지노 게임을 제거함으로써 완전해졌지만,

그와 동시에

존재를 잃었다.


그리고 존재를 기억하는 자만이

그 끝을 목격할 수 있다.


그녀는

그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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