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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Feb 24. 2025

여전히 괜찮다면 (2)




기탁은 오랜만에 솔빛식당을 떠올렸다. 다시 간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달래지는 곳이었다. 공장 다닐 때 기탁과 정달은 시덕을 데리고 거길 자주 갔다. 월급날엔 반드시 그 식당에서 곱창전골에 소주잔을 흔들어야 월급 받는 기분이 났다. 오후 다섯 시쯤 원룸에서 탈출했다. 걸어가기로 했다. 남는 게 시간이니까. 가는 데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지만 그래도 걷기 시작했다. 거리는 조용했다. 늘 학생들로 북적이던 학원가도 오늘은 조용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상가는 조용하다 못해 초상집 분위기였다.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고 살아남은 곳도 위태로워 보였다. 그 풍경을 보며 걷다 보니 정말 살기 힘들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장사 잘되는 곳을 발견했다. 로또복권 판매점이었다.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현수막과 ‘1등 12번, 2등 31번 배출’이라는 화려한 이력도 소개되어 있었다. 추첨이 있는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로또복권을 사고 있었다. 기탁은 아낀 버스비로 마지막 희망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무슨 번호를 찍을까 고민했지만 귀찮아졌다. 주변 풍경을 멍하니 보다가 지나가는 버스 번호로 여섯 개의 숫자를 찍었다. 하나는 수동, 나머지 넷은 자동으로 했다. 로또 오천 원이요. 네. 찌이잉 절컥. 방금 나온 따끈한 로또복권을 조끼 주머니에 넣어 고이 모셨다.

삼십 분을 더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외관은 여전했다. 끝없이 짙은 초록색 담쟁이넝쿨이 손에 손을 잡고 건물 외벽을 뒤덮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이 식당을 지켜내겠다고, 빼앗기지 않겠다고 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한쪽 마당엔 장 담그는 항아리들과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닳고 닳은 통나무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니 하얀색 비닐 식탁보를 씌운 원목 테이블들이 가득했다. 먼저 와 있던 정달이 제일 안쪽 창가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카지노 쿠폰 갑자기 허기졌다.

“형님, 오랜만이야.”

“어, 왔어? 얼른 앉아.”

“시켰어? 시키지.”

“오자마자 시켰지. 그거, 너 좋아하는 거.”

카지노 쿠폰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요즘 어때? 형님.”

“뭘 묻냐, 넌?”

“최악이야. 생활비도 없어.”

정달은 먼저 나온 소주를 카지노 쿠폰의 잔에 가득 채워주며 말했다.

“나도 오랜만에 일했다.”

“형님도 난감하겠네.”

곱창전골이 나왔다. 카지노 쿠폰 버너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곱창전골을 볼 때마다 묘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동물의 내장을 끓여 나의 내장을 채우는데도 이상하게 그럴듯하고 기대가 된다. 뭔가 알 수 없는 안도감 때문에 입맛이 돈다고 해야 하나?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게 뭐냐면 ‘곱창전골’이라는 이름의 록밴드가 있다는 정달의 이야기였다. 멋있는 이름도 많은데 왜 하필, 그것도 록밴드가 이름을 곱창전골이라 지었을까? 내장을 우려낸 음악이라도 하는 걸까? 정달은 록밴드의 기본은 자존심이고, 자존심은 자기 스타일을 지키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카지노 쿠폰 정달이 록밴드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했다.

냄비 안은 록밴드의 공연장처럼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다. 뜨거워 죽겠다는 메인보컬의 외침으로부터 세상 모든 서글픔이 배어 나왔다. 소리 지르는 관객들은 얼큰하고 진한 감칠맛의 국물이 되었다. 정달에게 곱창전골 밴드는 잘 있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열심히 먹기만 하다가 이번엔 정달이 카지노 쿠폰에게 빚은 다 갚았냐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땀 흘리며 그 내장과 그 국물과 그 록밴드를 먹어 치운 두 사람은 마지막 입가심으로 소주 한 잔을 들어 건배했다. 정달이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힘들지만, 한 번 살아보자.”

카지노 쿠폰 그 말에 현기증이 났다. 눈알이 붉어지고, 시야가 흐릿해질 정도로 술을 마신 모양이다. 정달은 계산대로 가 돈을 냈다. 카지노 쿠폰 그런 정달 옆에서 비틀대며 담배를 찾고 있었다.

“에이, 형님은 나보다 더 힘들 텐데, 애들도 있고, 형수님도 있고.”

정달은 안주머니에서 누렇고 얇은 봉투를 하나 꺼내 카지노 쿠폰의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어 주었다.

“알면, 됐다.”

정달이 화장실에 간 사이 카지노 쿠폰 봉투를 열어봤다. 오만 원짜리 네 장과 만 원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다.




갈 때와 달리 올 때는 주머니에 돈도 좀 있었지만, 걸어서 집에 왔다. 기탁은 정달과 헤어진 후 원룸에 숨어들었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조용히 그 봉투를 꺼내 보았다. 봉투 겉면에 인력사무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있었다. 기탁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등신같이 날려버린 천만 원보다 더 속 타는 돈이지 뭔가.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소주를 꺼냈다. 그냥 자면 죽일 놈이 될 것 같아, 혀라도 구부러뜨려 놓고 자려고. 맨바닥에 흰 종이컵, 거기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TV를 켰다. 이리저리 채널만 돌리다 로또복권 추첨 방송에서 멈췄다.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는 연예인이 나왔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금색 장갑을 끼고 추첨 버튼을 눌렀다. 추첨기 안에서 번호 적힌 공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하나씩 빠져나왔다. 시작은 1이었다. 다음은 8, 이어서 13 그리고 36이 나왔다. 1, 8, 13, 36, 44 그리고, 그러니까, 그러네. 45? 라고? 보너스 번호는 볼 필요도 없었다. 카지노 쿠폰 감전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벌떡 일어났다. 입고 왔던 조끼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손이 떨려서 주머니에 넣기 힘들었다. 왼쪽 주머니에서 귀하신 분이 나왔다. 다시, 1, 8, 13, 36, 44, 45, 예쁘게 줄 서 있었다.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당첨이네. 뭐? 미쳤냐? 당첨이라고. 무슨? 아, 이 인간이 못 믿네. QR코드 찍어봐. 이거 봐, 당첨이라잖아. 진짜 당첨이라니까. 다시 봐봐. 맞잖아, 인간아. 카지노 쿠폰 또 다른 기탁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결론에 닿았다. 씨발, 당첨이다. 진짜다.

쾅, 쾅, 쾅, 쾅. 띵동, 띵동. 문밖에 검은 양복 사내들이 왔다. 오늘은 다섯 명이나 왔다. 심상치 않았다. 카지노 쿠폰 돈 냄새 맡고 몰려든 하이에나들에게 문 열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단 로또를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겼다. 숨죽이고 바깥 상황을 지켜봤다. 그들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가 나타났다. 사내들이 문을 열라고 위협하는 것 같았다. 하필 이 타이밍에 저것들이 들이닥친 건 뭔가? 신의 장난인가? 카지노 쿠폰 창문으로라도 도망쳐야 하나 생각했지만 여긴 5층이었다. 돈 천만 원에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태어났다.

‘내가 왜 도망쳐? 나, 돈 있잖아. 그래. 돈 준다고. 돈! 그깟 천만 원, 준다고!’

시덕에게 전화했다. 시덕은 웬일로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어, 왜?”

“덕아, 형이 로또 당첨됐다.”

“뭐?”

“당첨이라고, 인마.”

“와, 이젠 별 지랄을 다 하네.”

“뭐? 너 뭐라고 했어?”

“돈도 없는 인간이 거짓말까지 하네.”

“야, 덕아.”

“됐고! 쪽팔리게 양 부장한테 털리냐?”

“양 부장?”

“카지노 쿠폰아, 개털이면 처맞아야지. 문이나 열어라. 좀. 아니다. 내가 연다. 열어.”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양복 입은 덩치 네 명이 구둣발로 들어왔다. 그중 선두에 있던 덩치가 다짜고짜 카지노 쿠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는 원룸 한쪽 구석으로 쓰러졌다. 네 명이 달려들어 쓰러진 그를 짓밟기 시작했다. 피가 튀었다.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흰색 톰브라운 티셔츠에 굵은 금목걸이를 찬 시덕이 카지노 쿠폰 앞에 쭈그려 앉아 혀를 찼다.

“카지노 쿠폰아, 돈 갚자. 얼른. 자꾸 피하면 곤란해.”

카지노 쿠폰 크게 한 번 쿨럭인 뒤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나, 돈 있다고, 새끼야.”

덩치들이 원룸 안을 샅샅이 뒤졌다. 옷장, 이불장, 싱크대 서랍, 침대 아래까지 훑으며 돈 될만한 걸 찾아다녔다. 그 와중에 로또가 흘러나와 뒤집힌 채 바닥에 떨어졌다. 덩치들이 카지노 쿠폰의 바지 주머니에서 누런 봉투를 찾아냈다. 로또를 밟고 선 시덕이 봉투 안에 든 돈을 세며 피식 웃었다.

“와, 로또 되신 분 치고는 검소하셔.”

“그거는 두고 가. 놔두라고.”

시덕은 카지노 쿠폰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채며 말했다.

“야, 더 맞아야 정신 차리겠냐?”

순간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주인아주머니가 신고한 모양이다. 시덕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 피곤하네, 정말. 누가 짭새 불렀어?”

“꺼지라고.”

“이건 뭐 껌값도 안 되겠네, 빨리 갚아라, 어?”

그들은 봉투 속에 든 현금만 챙겨 나갔다. 시덕의 구두 밑에 밟혀 있던 로또와 구겨진 채 바닥에 버려진 누런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엉금엉금 기어가 겨우 로또와 봉투를 손에 쥐었다. 뒤늦게 올라온 경찰들이 카지노 쿠폰을 병원으로 옮겼다.




8,272명. 지금까지 로또 일등에 당첨된 사람 수다. 카지노 쿠폰 판매점 앞에 줄 서 있다가 그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로또 한 장을 주머니에 넣으며 나오는데 정달에게서 문자가 왔다.

‘탁아, 오고 있지? 형이 사는 거니까 꼭 와. 허기지면 못 버텨.’

그는 남은 돈을 다 털어서 같은 번호로 한 장을 더 샀다. 솔빛식당에서 밥값을 계산하고 봉투를 찔러 준 정달에게 로또 한 장을 내밀었다.

“형, 내가 줄 게 없다. 가진 게 달랑 이거다.”

“됐어. 넣어놔. 되거든 밥이나 사.”

“나도 있다, 형. 이거 들고 가라.”

“됐다니까, 그러네.”

“아, 가져가라니까.”

카지노 쿠폰 정달의 바지 주머니에 로또를 쑤셔 넣으며 와락 껴안았다. 정달의 몸에 깊이 배어 있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시큼하고 쿰쿰한 냄새에는 땀과 먼지 그리고 쇳내가 엉겨 붙어 있었다.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다. 애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정달은 엉거주춤하게 기탁을 안았다. 그의 등을 토닥였다.

둘은 식당을 나와 함께 걸었다. 집에 가는 사람들을 정류장에 토해내고, 노곤하게 출발하는 버스들의 행렬이 보였다. 로또 판매점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드문드문 불 켜진 상가를 지나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학원가를 걸었다. 저마다 제 갈 길을 가는 그 풍경 속에, 비틀거리며 걷는 두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주머니에 로또복권을 넣은 채 아슬아슬하게 귀가 중이었다. 8,273번째 사람과 8,274번째 사람은 태어나 지금까지 줄곧 자신들을 괴롭혀 온 그놈의 돈에 한이 맺혀 울었다. 울다 지치면 웃었고, 웃다 지치면 울었다. 그들은 이상한 것에 당첨되어 있었다.


다음 해, 인력사무소에서 눈에 익은 공사 현장으로 그들을 파견했다. 보호수 때문에 공사가 중단됐던 아파트였다. 공사는 거의 다 끝났고, 마무리 작업만 남아 있었다. 368년 된 보호수는 아파트 단지 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건설사는 보호수를 중심으로 단지 내 공원을 다시 설계했다. 예정되어 있었던 분수와 조형물 대신 나무를 많이 심었다. 보호수 주변으로 작은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맡은 작업을 끝낸 기탁과 정달은 보호수 아래 설치된 벤치에 앉아 땀을 식혔다. 카지노 쿠폰 정달에게 물었다. 공무원이 온 그날, 왜 기자에게 제보했냐고.

“어떻게 알았냐?”

“신 기자한테 계속 전화했지.”

“그 인간도 참.”

“내가 궁금해서 그런다.”

정달은 보호수를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나무, 우리 동네 나무였다.”

“뭐?”

“어릴 때 여기서 뛰어놀고 했는데, 나이 오십에 묘하게 돌아왔더라.”

“여기가?”

“그래. 지키고 싶은 건 지켜야 사람 아니겠냐.”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이 흘렀다. 한참 후에야 정달이 카지노 쿠폰을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괜히 너까지 그래서 잠이 안 오더라.”

“말하지.”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형도 대단하다. 이런 거 하지 말고 록밴드나 하지 그랬어?”

“아, 시켜주면 하지.”

둘 다 피식 웃었다. 정달은 각반을 풀어 벤치에 두며 말했다.

“담배는?”

“끊었어.”

“그 좋은 걸 왜?”

“담뱃값이 비싸서.”

“주머니 든든한 놈이, 왜 여기 있냐? 사람들 욕한다.”

“남 말하네. 형님은?”

“나야 뭐, 원래 이런데. 넌 언제까지 이러려고?”

“글쎄, 나도 모르겠다.”

정달은 안전모를 벗었다. 수건으로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모르면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그래도 전보다 마음은 편하다, 형님.”

“그러면 됐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네가 좀 사라.”

카지노 쿠폰 보호수를 올려다봤다. 가을바람이 불어 보호수 가지를 흔들었다. 낙엽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그들은 솔빛식당으로 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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