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자테마터널
문경새재를 둘러본 후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그냥 가기 아쉬워 한 곳을 더 들렸는데 그곳이 바로 오미자테마터널이었다.
이곳은 원래 석탄 운반을 목적으로 개통했던 폐터널을 한 농업회사법인이 사들여 리모델링했다.
들어가는 입구에 오미자테마터널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알리는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왼쪽으로 가면 오미자테마터널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오르는 길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오르면서 보니 ‘카지노 게임 사이트’라는 옛길, 그야말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있었다. 완전 일타 쌍피, 아니 일타 삼피였다. 우리는 오미자테미터널을 먼저 구경했다.
터널 들어가기 전 철길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터널의 연중 평균기온은 15~18℃ 안팎이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터널 길이는 총 540m, 국내 관광사업으로 개발된 터널 중 가장 길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화려한 조명이 우리를 반겼다.
벽에는 오미자에 관한 상식적인 내용부터 오미자 전체를 아우르는 자료와 작품이 여기저기 보였다.
오미자는 오미자나무의 열매로 지름 약 1cm의 짙은 붉은 빛깔이다. 단맛·신맛·쓴맛·짠맛·매운맛을 느낄 수 있어 오미자라고 불린다. 그중에서 신맛이 가장 강하다. 속에는 붉은 즙과 불그스레한 갈색 종자가1∼2개 들어 있다. 기침이나 갈증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누가 그렸는지 벽화도 볼만했다. 기린이 그려져 있는 트릭아트는 인기 포도존이었다. 여기저기 레이저 빔을 설치하여 멋진 포토존이 만들어져 있었다.
왼쪽으로는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원래 문경은 도자기, 한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상점에는 오미자를 상품으로 만들어 놓은 많은 특산품들을 팔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우리도 상점에 들러 물건들을 구경했다. 혹시 사 가지고 갈 상품이 있을까 싶어 눈에 불을 켜고 둘러보았다.
상점 옆에는 구입한 특산품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냥 앉아서 쉬어가기에도 분위기 있는 공간이었다.
오미자 차와 와인, 막걸리와 다른 기념품을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오미자 차 세트와 오미자 맛이 난다는 뻥튀기를 구매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오르면서 먹었는데 진짜 오미자 맛이 났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천정에 가득 매달린 형형색색의 우산이었다.
초록, 주황, 노랑, 빨강, 파랑 우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환상적이었다. 그냥 우산을 색깔 별로 매달아 놓았을 뿐인데 뜻밖의 감동을 선사받았다. 우산들의 향연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터널을 돌아보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했다.
터널에서 나와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나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곳도 길은 잘 닦여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상주~함창~점촌을 거쳐 문경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동·서편에 구축된 전략적 요충지에 지어졌다. 이곳은 바로 옆에서 흐르는 영강을 내려다보는 지형적 특성으로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좋은 천연 요새였다.
고모산(姑母山)에 만들어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축조연대는 156년 이후, 2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삼국시대 때 신라가 북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포곡식 산성으로 본성 1,256m, 익성 390m를 합해 총 1,646m에 달하며 사방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높이가 낮은 곳은 1m, 높은 곳은 11m가 넘으며 성의 폭 또한 신라시대의 독특한 축성 형태를 보여주듯 4~7m로 매우 넓다.
서쪽과 남쪽은 영강이 감싸고 있고 동쪽에는 조정산(810m)에서 뻗어 내린 험한 산등성이가 버티고 있다. 그래서 서쪽은 절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만 쌓는 편축식(片築式)으로, 나머지 삼면은 지세에 따라 성벽 안팎을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쌓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성곽은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반복했다. 지금은 옛 성벽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남문지와 북문지, 동쪽 성벽의 일부만 남아있다.
소나무 숲을 지나자 석현성으로 들어가는 진남문(鎭南門)의 모습이 보였다. 진남(鎭南)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 문경새재가 쉽게 뚫린 것을 반성하고 교훈 삼아 지은 이름이다.
진남문을 중심으로 성곽이 펼쳐져 있는데 한쪽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으로, 다른 한쪽은 위험한 벼랑길인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향해 뻗어 있다.
이 진남문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성문으로 19세기말의 축성술과 건축술을 보여주고 있다.
진남문은 1893년 문경 부사 김정근(金楨根)이 신축했다. 그러나 1896년 의병장 이강년이 일본군과 이곳에서 전투를 치르며 모두 불에 타서 근래 들어 새롭게 복원되었다.
저녁에는 산성 주변에 조명이 설치되어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한다.
하늘의 선녀인 마고(麻姑)와 고모(姑母)라는 두 할미가 서로 성 쌓기 내기를 하였다. 마고할미는 문경읍 마원리에 마고산성을 쌓고 고모할미는 마성면 신현리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쌓기로 했다.
할미들은 밤중에 바짓가랑이에 돌을 담아 구름을 타고 와서 하룻밤 동안에 성을 쌓았다. 그런데 성이 거의 완성될 즈음, 궁금증이 많았던 마고할미는 고모할미가 얼마나 성을 쌓았는지 잠시 넘겨다보았다. 그 사이 고모할미가 성을 다 쌓아 그만 패배하고 말았다고 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은 역사에 심심찮게 등장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북방 방어기지로 사용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태조가 이곳에서 견훤과 싸웠다.
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신필정이 의병을 일으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방어하여 남침을 저지시키고 민심을 안정시켰다. 또 을미사변에는 이강년의 의병이 이곳에서 일어났고 한국전쟁 중에도 중요한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이처럼 카지노 게임 사이트이 역사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위치 때문이다.
문경은 경상북도 북쪽의 울타리로 태백산에서 이어진 대미산, 주흘산, 희양산 같은 고봉들이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길목으로 주변의 험준한 지역에 비해서 다소 이동이 편한 것도 이유가 된다.
현재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는 동·서·남·북문지와 익성(翼城)인 석현성의 문루인 진남문, 그리고 서문지 쪽의 배수구, 동쪽의 암문 1개, 최근 복원된 주막거리, 2007년 명승 제31호로 지정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옛길이 남아있다.
일반인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곳은 산성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서문이다. 서문 바깥으로는 국도와 강이 인접해 있다.
남문의 규모는 길이가 16m, 너비가 5~5, 8m로 성벽의 외면에서 바라볼 때 개구부는 凹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사다리를 통해 통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남문에서는 싸움할 때 던지기 좋은 주먹 크기의 돌들을 쌓아놓은 투석용 몽돌 무지가 발견되었다. 이 투석 더미는 삼국시대 산성 전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무기였다.
동문지는 복원이 아직 안 된 상태이고 북문지는 흔적만 남아있다.
진남문을 통과하면 문경시에서 복원해 놓은 돌고개 주막거리가 나온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과 겹으로 지어진 석현성 안에 있는 주막거리는 문경의 마지막 주막인 영순주막과 삼강주막을 초가집으로 만들어놓았다.
주막거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성황당이 지어져 있다. 이 성황당에도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과거길에 오른 어느 선비가 이곳 초가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 집에는 부녀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선비의 인품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자기 딸을 맡아 달라고 간청했다. 선비는 며칠을 머물다가 과거길을 떠나며 급제한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처녀는 매일 치성을 올리며 기다렸으나 선비는 끝내 오지 않았다. 선비는 당당히 급제했으나 그 약속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수년을 보냈다. 아버지마저 죽고 선비를 기다리다 지친 처녀는 선비를 원망하며 자결한 후 큰 구렁이로 변했다.
그 후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이 구렁이에게 자주 피해를 입는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다. 선비는 그제야 구렁이가 그 처녀의 원귀임을 알고,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다.
그러자 천둥번개와 함께 구렁이가 나타나 눈물을 흘리다가 사라졌는데 그 뒤로 구렁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처녀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에 성황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전망대로 가려면 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멀리서 보아도 왠지 계단이 범상치 않게 보였다.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할만한 포스였다.
아니나다를까, <구미호뎐 1938이라는 드라마에서 무영이 어릴 때 형과 함께 보낸 시절을 회상하던 장소로 이미 촬영된 적이 있었다.어린 무영이 형에게 업혀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그 장소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 계단이다.
전망대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경북 팔경 중 제1경으로 꼽는다는 진남교반이 보인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이 이어지고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 어룡산과 오정산 사이를 흐른다. 그 강 위로 철교, 구교, 신교 등 3개의 교량이 나란히 놓여 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바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본 것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오르다 보면 초입에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오른쪽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는 곳’이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올라가면서 안내판을 보고 이름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토끼가 무슨 비리를 저질렀나?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내려오면서 꼭 들려야지.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가 지나고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늦지 않게 서울로 돌아가려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궁금한 곳을 안 들릴 재간도 없었기에 안내판이 서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록을 찾아보니 ‘비리’라는 말은 ‘벼루’의 문경 방언으로 낭떠러지 아래 강이 흐르거나 해안을 끼고 있는 곳을 말했다.
영남대로 옛길인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한국의 차마고도라도 불리는, 가장 걷기 어려운 코스다. 이 길은 문경새재가 있기 전 기록으로 확인되는 오랜 옛길, 하늘재로도 이어진다. 하늘재가 생긴 것은 삼국시대(156년)로 알려져 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길은 아슬아슬 위태롭다. 가파른 산비탈의 허리를 잘라 길을 냈는데, 발아래로 까마득히 영강이 흐르고 길의 너비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조차 힘들다.
이 길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최영준(고려대) 명예교수에 의해서다. 최 교수는 저서 <영남대로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관한 글을 썼다.
“이 길에 한국의 모든 옛길 역사가 녹아 있다.”
이 한 문장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어마어마한 길이 되었다. 하마터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길이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길의 역사, 축대공법, 사연 등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조선시대 <여지도서에서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산이 거듭되고 첩첩이 산봉우리가 쌓여 천 개의 이빨같이 서로 제압하는 데다, 돌벼랑 사다리길로 통행에 조심해야 한다. 무릇 하늘이 만든 험한 곳이다.”
또 고려 말과 조선 초 문신이었던 권근(1352-1409)의 <견탄일기에서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었다.
낭떠러지를 따라 사다리길로 길을 열어서 사람과 말들이 겨우 통행한다. 위에는 험한 절벽이 둘러있고 아래에는 깊은 시내가 있어 길이 좁고 위험하며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떨고 무서워한다.
이 길을 처음 낸 사람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으로 알려져 있다.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전진하다가 홍수로 강물이 붇자, 문경새재 남쪽 길이 막혀 생사기로에 몰렸다. 이때 토끼 한 마리가 계곡 사이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벼랑을 잘라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즉 토천(兎遷)이라는 이름이 얻어진 유래가 적혀 있다.
고려 태조 10년(927) 9월에 견훤이 근품성(近品城:지금의 산양)을 빼앗고 경주로 육박하니 신라 경애왕은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청했다.
고려 태조가 보병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어 정기(精騎) 5천으로 진군을 시작,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이르니 더 나아갈 길이 없다.
가을비가 내리고 길은 없어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냇물은 홍수 져서 도도히 흐르고 앞에는 깎아지른 절벽이라, 진퇴양난이다.
그때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나 바위 절벽을 가로질러 가자, 즉시 군졸에게 명하여 ‘토끼가 가는데 말이 못 가겠는가. 길을 내라’했다.
이에 토끼가 지나간 길을 따라 길을 내서 험로를 통과했다 하여 지금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兎遷)라 부른다.
옛날에 서울을 오가는 길손들은 이 길을 관갑잔도(串岬棧道)라 하여 가장 위험한 길로 꼽았다.
절벽과도 같은 산허리를 따라 굽이굽이 6~7리(약 2km) 가량 이어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관갑천잔도’, ‘곶갑천잔도’, ‘토천잔도’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 문헌에 보면 관갑천, 토천을 쓸 때는 ‘옮길 천(遷)’ 자를 썼다. 잔도(棧道)는 나무 사다리 길을 말하며, 천도(遷道)는 바위가 있는 부분에서 바위를 깎아내어 길을 닦는 것을 말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현재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옛길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본다.
“옛길을 보면 선조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동래에서 한양까지 가장 빠른 길을 닦은 게 영남대로이고 옛길이다.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450㎞ 정도 되지만 영남대로는 직접 걸어본 결과 대략 360㎞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닦은 길과 자연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걷는 길의 차이는 거의 90㎞나 된다. 새삼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졌다.”
옛 선인들은 이 가파른 길을 망설이지 않고 걸었다. 한양으로 향하는 길 중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다. 경사가 심해서 발을 헛디디면 벼랑으로 떨어져 죽거나 다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목책으로 둘러쳐져 있어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그래도 위험하기는 하다. 가끔 위에서 돌이 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풍경화에도 등장한디. 조선 후기 문필가 권섭의 손자 권신흥이 그린 그림에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아래 그림은 <모경흥 기첩에 수록된 ‘문경십승’ 중 카지노 게임 사이트 맞은편 산에서 바라본 구간 전경 그림이다. 중앙부에 있는 건물은 지금은 없어진 진남정이고 왼편 하단의 건물은 봉생천이다.
문경은 도자기로도 유명한데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지역에서 나온 점토가 도자기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재료가 되었다고한다.
다음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관한 한시다.
꼬불꼬불 양 창자 같은 길이여
꾸불꾸불 오솔길 기이키도 하여라
봉우리마다 그 경치도 빼어나서
내 가는 길을 막아 더디게 하네
토천이 험하단 말 들은 지 오래거늘
이제 보니 그 생각이 어떠하였나
어둑한 계곡은 구름을 뚫고 들어섰고
위태로운 벼랑은 새와 함께 넘는다네
마치 이곳은 촉나라 검각(劒閣)인 듯
홀연히 위(魏) 나라산하라 탄식을 하네
깊은 연못 주의하는 두려움에
반 발자국도 헛디딜 수 없었다네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아 끝까지 걷지 못하고 초입부에서 사진만 찍고 되돌아 나왔다. 그러나 다음에 시간을 내서 꼭 한번 걷고 싶은 길로 기록해 두었다.
짚신으로 다져졌을 바윗돌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지 반들반들했다.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1,0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다지고 다져진 길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 길을 지나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성곽이 이어진다.
문경에는 우리가 둘러보지 못한 곳이 매우 많았다. 문경 역시 하루 코스로 끝낼 관광지가 아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제대로 보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수박 겉핥기가 아닌 좀 더 알찬 여행기를 쓰려면 시간을 더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