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 너에게 쓰는 편지
왜 나이 든 꼰대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만 만나면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백 명쯤 불러대고, 자신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어젠다를 천 개쯤 대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는 걸까. 알아서 뭐 하게. 알면 뭐가 달라져.
-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책에서 이 문장을 발견하고 혼자 피식, 웃었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잖아. 나도 그런 카지노 게임들을 참 많이 만났거든.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며 집중적으로 만났어. 자랑하듯 인맥을 과시하고 본인만 관심 있는 주제를 끊임없이 늘어놓지. 도대체 내 앞에서 왜 그런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공손하게 들었어. 그게 예의니까. 하지만 사실은 귀가 썩어버릴 것 같았어. 너도 혹시 그런 적 있어? 난 지금 떠오르는 얼굴이 몇 있는데, 얼른 고개를 흔들어 그들을 내 머리 밖으로 날려버려.
‘이런 카지노 게임은 되지 말자.’ 내가 이렇게 메모를 해놨더라. 나와 전혀 상관없는 카지노 게임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는 어떤 카지노 게임이 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어.
카지노 게임은 원래 자기 허물을 보지 못하는 법이잖아. 더 소름 돋는 건 이제는, 그때 그들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이해했다고 옹호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 말고 들어.
그들은 불쌍한 카지노 게임인 거야. 자식들은 어느 정도 커서 더 이상 부모와 살갑게 말을 섞지 않아. 젊은 시절 회사에 한 몸 바쳐 일하느라 배우자와의 관계도 소원해졌어. 이제 나이 들어서는 집에 가봤자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반겨주는 멍멍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야. 그래서 젊은 사람만 보면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거지. 본인의 ‘없어 보임’을 만회하려 잘 나가는 인맥들과 친분을 과시하고, 결국은 본인 주장만 펼칠 어젠다를 계속해서 던지는 거야.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에서는 카지노 게임들이 말하면 얌전히 들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거야.
그럴듯하지? 그래,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달리 용서는 안 돼.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나이 들어 젊은이들한테 그렇게 행동하면 그게 바로 요샛말로 ‘꼰대’인 거야.
난 정말 그런 카지노 게임이 되고 싶지 않거든. 바깥에서는 그나마 꽤 괜찮은 카지노 게임으로 포장할 자신이 있어. 방법은 아주 간단해. 말을 아끼면 되는 거야.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거야. 그럼에도 자꾸 말하고 싶을 땐 소크라테스의 ‘세 가지 절제의 체’를 떠올려.
- 첫 번째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진리인가?
- 두 번째 진리가 아니라면 좋은 내용인가?
- 세 번째 그 이야기를 상대방이 꼭 들을 필요가 있는가?
이렇게 말을 거르다 보면 꼭 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더라고.
사실 이건 ‘꼰대 되지 않는 법’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도 효과적이니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 이걸 다 아는데, 내 아이한테는 왜 ‘세 가지 절제의 체’가 작동하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