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d3MH 현직 소방공무원입니다.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에세이집 &lt;당신이 더 귀하다&gt;를 썼습니다. ko Mon, 21 Apr 2025 17:08:08 GMT Kakao Brunch 현직 소방공무원입니다.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에세이집 &lt;당신이 더 귀하다&gt;를 썼습니다. //img1.daumcdn.net/thumb/C100x10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2axORcp2Gr742kJefYukwvSojHw.JPG /@@d3MH 100 100 목마른 길 /@@d3MH/552 모텔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주사기를 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나라도 드디어 갈 때까지 갔구나, 대놓고 팔뚝에 주사 바늘을 찔러 넣는 세상이 되었구나.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신고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지령 주소지로 이동했다. &ldquo;그런데, 주사기가 좀 커요.&rdquo; 신고자가 말했다. &ldquo;크다고요?&rdquo; &ldquo;네, 애기 팔뚝만 해요. &ldquo; &rdquo;팔뚝이 Wed, 16 Apr 2025 06:26:33 GMT 백경 /@@d3MH/552 빨대 /@@d3MH/550 연인이 타고 있던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갑자기 달려든 고라니 때문이었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해서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지만 추돌 당시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현장엔 사설 레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도 출동 지령받고 바로 나온 건데 저들이 먼저 도착할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나, 궁금했다. 예전에 레카 기사들이 경찰 무전을 도 Fri, 11 Apr 2025 23:25:40 GMT 백경 /@@d3MH/550 인간의 틈새 /@@d3MH/538 원룸 건물 외벽에 사다리를 세웠다. 대원 한 사람이 사다리 후면에서 세로대를 잡고 지지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등반을 했다. 다행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틀을 타 넘고 사라진 대원이 잠시 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안에 계십니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담배 냄새와 지린내가 훅 끼쳤다. 노인은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침대와 장롱 틈에 끼어 있었 Mon, 24 Mar 2025 22:41:40 GMT 백경 /@@d3MH/538 직원 사망 알림 /@@d3MH/536 뒷머리가 쭈뼛 솟는다. 딸깍. 문서를 클릭하고 죽은 직원의 이름을 확인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다. 아마 같이 근무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문서에는 질병이라던가 사고라던가 하는 사망원인이 명확하게 쓰여있지 않다. 근 10년을 소방서에서 일한 짬바로 미루어 짐작한다. 자살했구나. 사람들은 소방관의 순직률보다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조직은 곪은 Thu, 20 Mar 2025 22:03:01 GMT 백경 /@@d3MH/536 우리가 잘 아는 어떤 남자 /@@d3MH/534 늦은 저녁, 골목길에서 젊은 남자가 노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ldquo;이 땅이 할머니 꺼예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rdquo; &ldquo;내일 아침 장사하려면 물건을 내려야 하니까...&rdquo; &ldquo;그런데 왜 짜증을 내면서 말해요? 사람 기분 나쁘게!&rdquo; 골자는 그거였다. 내 기분을 나쁘게 했다. 그쪽 장사 준비야 내 알 바 아니고 감히 내 잘못을 물었다. 그것도 짜증을 내면 Mon, 17 Mar 2025 22:17:22 GMT 백경 /@@d3MH/534 다들 집에 이런 아버지 한 분쯤 계시죠? /@@d3MH/531 &ldquo;뭐 필요하냐.&rdquo; 아부지가 말씀하셨다. 용산 아이파크몰에 가구단지가 생겼단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ldquo;식탁이요.&rdquo; &ldquo;가자.&rdquo; 안 그래도 오래돼서 다리가 덜덜거리는 우리집 식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ldquo;점심밥은 제가 쏘겠습니다 아부지.&rdquo; 아이파크 몰 4층에 도착했다.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 매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태리어인지 프랑스어인지 읽히지<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otZXD1s-xowPuP8Q5UeXQxAMdwE.png" width="500" /> Sun, 16 Mar 2025 22:08:05 GMT 백경 /@@d3MH/531 사랑의 대가 /@@d3MH/526 실종자 수색을 나갔는데 현장이 눈에 익었다. 그때 그 노부부의 집이었다. 작년 여름인가 아내가 사라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나갔다. 아내는 수색 사흘 만에 집 근처 갈대밭에서 발견되었다. 목발을 짚고 걷다가 논둑 아래 비탈길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부패가 진행된 지 이미 오래여서 굳이 심폐소생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ldquo;엄마 돌아가시고 갑자기 아버지 치매 Sun, 09 Mar 2025 07:49:39 GMT 백경 /@@d3MH/526 원영적 소비 /@@d3MH/519 요즘 한 손에 잡히는 책은 보통 만 육천 원, 거기에 양장 커버가 더해지면 만 팔천 원을 받는다. 짜장면 두 그릇 혹은 치킨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는 돈이고, 조조할인으로 영화표를 끊으면 콜라에 팝콘까지 더해 백여 분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돈이다. 무엇보다도 이 돈이면 55매짜리 아이브 2025 시즌그리팅 칼라풀데이즈 포토카드를 2박스나 구매할 수 있다(럭<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XIN7p1FLaWQWml55Fc6ynn6wggU.JPG" width="500" /> Tue, 25 Feb 2025 22:32:10 GMT 백경 /@@d3MH/519 다른 하늘 아래 /@@d3MH/512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스카프의 양쪽을 잡고 펼친 상태에서 둘둘 말아 기다란 끈처럼 만들었다. 그걸 문고리에 연결한 뒤에 목을 맸다. 시간이 오래된 것 같았다. 목 위로는 핏기가 없었고 꿇어앉은 다리 아래로 시푸른 시반이 보였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사람은 스카프 한 장에도 목숨을 잃는다. 나는 아버지가 우는 걸 살 Wed, 12 Feb 2025 22:19:34 GMT 백경 /@@d3MH/512 나는 약발 안 듣는 진통제다 /@@d3MH/511 여자는 옷만 좀 입혀달라고 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허리와 어깨를 다쳤다고 했다. 다친 건 1년 가까이 되었는데 나일 먹으니 낫질 않는다고, 내가 얼마나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는 허리를 숙이지 못해 싱글 침대 위에 꼿꼿이 앉아있었다. 바지를 애벌레처럼 구겨 어린애들 옷 입히듯 양발에 끼운 뒤 허리춤까지 추켜올렸다. Wed, 12 Feb 2025 06:03:15 GMT 백경 /@@d3MH/511 정의와 혐오는 타협하지 않는다 /@@d3MH/509 혐오엔 쾌감이 있다. 약자를 짓밟는 순간의 쾌감, 생각이 다른 자를 매질하는 순간의 쾌감, 타인을 향한 혐오가 곧 나를 정의로 만든다는 착각에서 비롯한 쾌감. 쾌감에 중독된 사람들은 끝도 없이 미워할 이유를 찾는다. 세금 도둑놈. 병신. 이것도 이해를 못 하면 머리는 왜 달고 다니시나요. 쪽바리. 짱개. 간첩. 한남. 한녀. 애미 애비 없는(있어도 없는 Mon, 10 Feb 2025 22:07:05 GMT 백경 /@@d3MH/509 타인은 없다 /@@d3MH/508 아들이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지령서를 받으면 이맛살부터 찌푸렸다. 감기에 걸려서 뭐 어쩌라고. 그게 구급차를 부를 이유가 되는가? 구시렁댔지만 짬밥이 찬 뒤로는 좀 달라졌다. 염치없어 뵈는 지령에는 보통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생 아들을 엄마가 돌보고 있었다. 아들은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했다. 의사소통도 눈을 깜빡이거나 으으, 소리를 Sun, 09 Feb 2025 21:28:09 GMT 백경 /@@d3MH/508 유튜브 나온 눈엣가시 아들 /@@d3MH/506 유튜브 출연한 영상 보고 아부지가 우셨단다. &ldquo;쌍노무 새끼,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사냐. &ldquo; 엄마가 전한 아부지 말이다. 그래 봐야 자기 욕으로 되돌아오는 걸 알면서도 그리 말씀하셨으리라. 부모님 속을 꽤 썩였다. 가출하고 쌈박질하고 하는 일반적인 속썩임은 아니고 나름 변태적이었다고 자부한다. 중학교 때 잘하던 공부를 관두고 느닷없이 만화가가 되겠다<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JWQ5EW-3Enu9JCx7T7wvDwleR_Q.png" width="500" /> Sat, 08 Feb 2025 08:27:03 GMT 백경 /@@d3MH/506 결말이 뻔한 이야기 /@@d3MH/505 담을 넘을까 하다 멈칫했다. 장갑 낀 손으로 꼭대기를 잡고 흔들자 담이 뿌리째 뽑혀나갈 듯 휘청였다. &lsquo;안 되겠는데.&rsquo; 하는 수 없이 옆의 철문을 타 넘어가기로 했다. 조금 높았지만 육중한 몸무게를 못 이기고 담이 무너져 전쟁 폐허처럼 변하는 것보단 나았다. 올해는 꼭 살을 빼야겠다. 생각했다. 철문을 넘었다. 문을 붙잡고 늘어지듯 넘어온 탓에 문이 조 Tue, 04 Feb 2025 22:41:43 GMT 백경 /@@d3MH/505 어디가 아프세요 /@@d3MH/504 &ldquo;똥이 안 나온다고?&rdquo; &ldquo;네.&rdquo; &ldquo;정말?&rdquo; 방송을 듣고 하는 말이었다. 밤 열한 시 즈음되었을 것이다. 레이저 프린터가 피잉 소릴 내며 종이를 빨아들이더니 출동지령서를 책상 위에 퉤 뱉었다. 정말이었다. 여섯 글자. 똥이 안 나온다. 똥이 한 열흘쯤 안 나왔을 수도 있다. 똥은 나오라고 있는 것이지 뱃속에 묵히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똥은, 그러니까 Mon, 03 Feb 2025 21:25:32 GMT 백경 /@@d3MH/504 명절에 식구들 모이면 꼭 나오는 이야기 /@@d3MH/500 고속도로 들어가기 직전의 땅 수 만 평. 지금은 대형마트가 들어선 그곳. 그 땅만 팔지 않았으면, 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 땅만 팔지 않았으면 은행 이자나 받아먹으면서 편히 살았을 텐데. 근사한 카페나 하나 차려서 손님이 오건 말건 니나노였을 텐데. 작은 집에서 기름 냄새 풍기며 명절을 맞을 게 아니라 어디 해외에 근사한 풀빌라 얻어서 다 함께 위스<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BStOjjNtKzKE-76HTUHI13MJgx4.png" width="500" /> Tue, 28 Jan 2025 21:31:51 GMT 백경 /@@d3MH/500 사랑의 양자역학 /@@d3MH/497 자기가 소방서에서 밤새 일하면 나도 잠이 안 와. 술 많이 먹지 마. 내 속이 안 좋아. 스트레칭하면서 일하라고 했지? 덕분에 몸이 요새 얼마나 뻐근한 줄 알아? 신박한 잔소리라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한참 연극 무대를 준비할 때 교수님 카톡 프로필이 &lsquo;우리는 연결되어 있어요&rsquo;였던 걸 떠올리게 만드는 잔소리였다. 꿈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걸 믿나. 교 Sat, 25 Jan 2025 22:11:23 GMT 백경 /@@d3MH/497 내가 여기 살아있습니다 /@@d3MH/495 약이 떨어졌다. 책 나오고 정신없이 바빠서 정신과에 가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세 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 뒤론 잠이 오지 않았다. 세 시는 약속의 시간이다. 밤샘 근무 하는 날 꼭 그 시간 즈음 출동이 걸린다. 새벽잠이 없는 노인들이 일어나 화장실에 가다 넘어지는 시간. 술을 먹다 먹다 시간도 잊고 먹다 결국 자기 자신마저 잊고 도로 가장자리에 Tue, 21 Jan 2025 20:46:05 GMT 백경 /@@d3MH/495 구원 /@@d3MH/489 옆을 보니 내 머리가 있는 방향에 첫째 딸의 발이 있다. 자는 동안 몸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아니, 실은 한 바퀴 하고도 반을 더 돌아서 540도인지도 모른다. 몸부림치는 육체를 좇지 못하고 이부자리가 한구석에 도넛처럼 말려 있다. 아이는 온돌 바닥이 달래지 못한 한겨울의 숨을 맨몸으로 맞는 중이다. 나는 내 커다란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낸다. Mon, 13 Jan 2025 20:32:07 GMT 백경 /@@d3MH/489 행운 한 접시 /@@d3MH/487 계단에 누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였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겠다고. 현장은 얼마 전에 새로 지은 원룸 건물이었다. 공동현관에서 도어록 비밀 번호를 몰라 주저주저하고 있는데 젊은 여자가 유리문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자동으로 문이 열렸고, 여자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인 뒤 우릴 스쳐 지나갔다. 그냥 거기 사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먼지 Sun, 12 Jan 2025 21:16:46 GMT 백경 /@@d3MH/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