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대담해지는가 - 소년의 시간

2025-04-19T11:20:26Z

《사춘기(adolescence)》. 넷플릭스에서 새로 나온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았다. 한국어 제목은 《소년의 시간》. 13세 영국 소년 제이미는 동급생 소녀를 칼로 난자해 죽인 혐의를 받고 있다. 소년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지만(끝부분에서 살짝 유죄로 마음을 바꾼다), CCTV에 찍힌 장면을 보면 소년은 악마다. 형사와 상담사는 그의 부모가 정상인지, 사랑

사랑이 뭐길래 - 39산 소요산(2021년 10월)

2025-04-18T09:00:37Z

소요산은 동두천시에 있다. 1호선을 탔는데 소요산역까지 가지 않아서 동두천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차창 밖 거리에는 인적이 없고 상점은 거의 문을 닫아 을씨년스러웠다. 기사에게 동네가 참 삭막하다고 말했더니 이곳은 미군을 상대하는 사창가였고, 지금은 집값이 싸서 서울 집을 팔고 온 은퇴한 노인들이 산다고 했다. 그들의 빈 주머니를 위해서 술집에서는 막걸리

smithonian 3 - 형태와 패턴, 그리고 교육

2025-04-12T13:02:44Z

화가는 캔버스의 중심에 오브제를 배치하고 배경은 아무렇게나 그리는 것이 아니다. 주제가 되는 오브제를 그리고, 아름다운 패턴(pattern)을 고심하여 만들어 배경을 채운다. 오키프의 그림이 패턴만으로 이루어졌다고 가볍게 평가했지만, 고갱이 그린 패턴은 후배 화가들의 연구 대상이 될 만큼 뛰어나다. 열대 지방 여인들의 구릿빛 몸매, 이국적인 커다란 이파리와

오름도 산이지 - 38산 새별오름, 정물오름, 붉은 오름, 따라비오름, 영주산(2021년)

2025-04-11T14:08:04Z

제주에는 368개(아직도 정확하지는 않다)의 오름이 있다. 정상에 분화구가 있으면 오름이라 하고 없으면 산이라 부르지만, 이 또한 아닐 경우도 있다. 높이나 생김새가 다 그만그만하지만, 분위기가 달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오름길이 고속도로처럼 나 있고 주차장도 널찍한 유명 오름이 있는가 하면, 차를 세울 곳도 마땅하지 않고 들어가는 길이 좁은 오름도 있

스미소니안 2 - 붓놀림에 대하여

2025-04-08T08:33:11Z

버지니아의 날씨는 규모가 다르다. 비가 오면 천지가 다 잠길 것처럼 퍼붓고, 햇볕은 칼처럼 짱짱하게 쏟아졌다. 자연의 혜택을 흠뻑 받은 수목은 미국 사람들처럼 키가 크고 하늘을 향해 끝없이 가지를 뻗었다. 나는 이 나라 나무의 완벽한 직선을 보면서 고국의 구불구불 힘들게 자라는 소나무의 곡선을 떠올렸다. 테두리, 대상, 빛의 대비, 색가(color valu

행운은 세잎 클로바 - 37산 불갑산 (2021년 10월)

2025-04-05T09:55:44Z

그대를 만나기 위하여/이슬 맺힌 세월/눈물 속에 묻어두고/기다림이 깊어/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날/붉은 꽃으로 피어나리라 (나태주) 실핏줄 같이 가는 꽃잎이 왕관 모양으로 피어나는 꽃무릇. 가느다란 꽃대에 의지해 ‘기다림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날 붉은 꽃으로 피어났다’가 잎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지고 말아서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이루어

스미소니안에서 1 - talk about art in National Gallery of Ar

2025-04-05T15:13:48Z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안 미술관은 21개다. 그 당시 미술에 심취해 있었던 나는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어마어마한 명화가 걸린 미술관이 널려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거기다가 입장료도 내지 않으니 이 기회를 자주 이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스미소니안 홈페이지에 들어가 'talk about art in National Galle

예나 지금이나 - 36산 내연산

2025-04-02T08:00:29Z

“속이 깊은 산이지요” 내연산 삼지봉(710m)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작은 암자에는 스님 한 분이 부지런히 등산객을 맞이하며 내연산을 소개했다. ‘커피 잡수세요 무료’라는 팻말과 전기 주전자, 물, 커피가 툇마루 한편에 정답게 놓여있었다. 어느 날, 남자와 여자가 암자 앞 벤치에 앉아 “자기야 여기서 커피 한 잔 마시면 끝내주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완벽한 공동체는 아니지만

2025-03-29T03:49:01Z

워싱턴 디씨 근처 북 버지니아에는 나처럼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온 부인들이 많았다. 모두 회사에서 인정받고 미국의 수도로 파견 나온 남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들은 꼬리를 편 공작새처럼 자신을 드러냈다. 그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캐묻지 않으면 적당히 자신을 미화할 수도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들의 화려한 경력을 듣고 주눅이 들 지경이었다. 시간이 흐르

기쁜 우리 젊은 날 - 35산 손죽도 초도에서 (2021년 9월)

2025-03-24T23:25:45Z

고흥 풍남항에 새벽 4시가 좀 넘어 도착했다. 항구는 검푸른 어둠에 잠겨 적막했다.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에서 아침 식사를 펼쳐 놓고 먹으면서 우리는 섬에 가게 되었구나 하고 안도했다.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 섬 주민들은 뭍사람들을 꺼려 입도 금지를 하려 했고, 태풍 찬투가 바로 얼마 전에 무서운 기세로 몰아쳤기 때문이다. 해를 맞이하기 전의 바다는 태풍이

공동체는 옳다 - 조지타운 에피파니

2025-04-08T08:49:15Z

성당이냐,교회냐. 타향살이에 정을 붙이려면 공동체가 필요했다. 세례를 받고 냉담 중이었으니 성당에 갈 것인가, 규모가 큰 교회에 다닐 것인가, 하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밤, 꿈에 고귀한 여인이 나타나 “너는 성당밖에 갈 곳이 없어” 하고 말했다. 당신이 성모님이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그 분이 성모님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를 받은 것처럼 성당에

산의 길, 삶의 길 - 34산 뾰루봉 (2021년 9월)

2025-03-20T03:38:39Z

깊은 산에서 길을 잃어본 적 있는가? 인적도 없고, 벌레조차 숨죽이고 있는 정적이 흐르는 숲에서, 거인 같은 나무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오싹한 기분이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숨을 한번 크게 쉬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길은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로 한 줄기 빛이 새어드는 것처럼. 유명한 산에는 산행로가 분명하고 표지판도 친절하다. 그동안 전국 100

다시 미국 - 사춘기 아들들과 그 엄마의 미국 학교 적응기

2025-03-28T22:29:18Z

결혼하자마자, 유학 중인 남편을 따라가서 플로리다의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 만(bay)을 접하고 있는 그곳은 2~3개월 정도만 쾌적하고, 나머지 날들은 열대의 태양과 끈적한 습기로 숨이 막혔다. 20대의 나는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고 느린 미국 시골에서 견디기 힘들어서 3년 남짓 머무르면서 갓난아이를 데리고 자주 한국을 방문했다. 두 나라 어디선가 어중간하게

'그'를 그리며 - 33산 설악산 공룡능선 (2021년 7월)

2025-03-13T13:53:46Z

새벽 세 시에 숙소를 나섰다. 식욕이 없어도 든든하게 먹고 산행을 시작해야 했다. 무시무시한 공룡능선을 오르는 길이 아닌가. 아직 깜깜한 새벽에 랜턴을 켜고 마등령으로 올라가는 길은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거칠었다. 힘겨워하는 나에게 등산 고수 친구가 보폭을 좁게 지그재그로 올라가라고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몸에 연료가 부족해 힘이 점점 빠졌다. 잠시 쉬는

그 섬에 다녀왔을까 - 32산 거문도 섬산 (2021년 6월)

2025-04-01T14:26:27Z

버스는 자정에 출발했다. 불편하게 쪽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여수의 항구였다. 먹색 어둠을 뚫고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는 항구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배를 기다렸다. 쾌속선이 바다 위를 떠서 날아가는 동안 서서히 어둠이 사라졌다. 버스 정류장처럼 초도 정류장에 잠시 선 배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배는 다시 빠르게 바다 위를 질주했다. 멀미할 겨를도 없이

글쓰기는 어려워 - 31산 계양산 (2021년 5월)

2025-02-21T11:17:04Z

‘여행 작가 학교’에서 강좌를 듣고, 가까운 곳으로 실습 여행을 다녀왔다. ‘학교’에는 사진의 기술, 여행에세이 쓰는 법 같은 과정이 들어있었다. 마구잡이로 글을 써오던 나는 무엇보다도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글을 써오면 작가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엄격하게 평가했다. 그동안 책과 동영상 강의를 통해 기본적인 글쓰기 법은 안다고 생각했다. 그

이 땅에 태어나서 - 30산 함백산 (2021년 5월)

2025-02-14T14:21:36Z

어평재까지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어느새 산은 초록 잎으로 빽빽하게 차올라 터질 듯했고, 비가 많이 내려 넘치게 흐르는 계곡물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어평재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백두대간 중 화방재-만항재-함백산-중함백-은대봉-두문동재인 40구간을 시작했다. 900ｍ 이상 차를 타고 올라가서 시작하지만, 정상까지 1,

정조대왕을 그리며 - 주합루에서

2025-02-13T00:21:20Z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는 파르스름하게 얼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연못 한가운데 있는 섬에는 소나무가 혼자 청청하고 오래되고 웅장한 활엽수는 잎을 모조리 떨어뜨려 거대한 뼈대를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는 일반 관광객은 들어가지 못하는 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봉사단체 조끼를 입었다. 그리고 규장각의 한 건물인 주합루 앞에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을 그러모아 포대에 담았

개구리들은 잘 있을까 - 29산 월악산 국립공원 (2021년 5월)

2025-02-11T03:55:42Z

월악산 냇가에 두 마리 개구리가 살았다. 어느 날, 그들은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다른 세상이 있을까 이야기하다가 한번 가보기로 했다. 산은 가파르고 험했다. 월악산(月岳山)은 ‘산꼭대기 바윗덩어리에 달이 걸리는 산’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주봉은 영산(靈山)이라고 불렀다. 개구리들은 까마득하게 높은 신령스러운 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경사진 바윗길을 올라가

남양 성모 성지에서

2025-02-05T00:39:24Z

우리나라의 천주교인 순교자 이야기는 언제, 누가 들어도 애달프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조선 말 병인박해(1866) 때 이 지역에 박해를 피해 숨어있던 많은 천주교인은 남양도호부에 잡혀 와서 참수당하고 사형당했다. 김 필립보, 박마리아 부부, 정 필립보, 김홍서 토마, 네 분의 이름만 기록에 남았을 뿐 돌아가신 순교자의 이름은 물론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Claireyoonlee